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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Jul 21. 2018

영화 '남부군'에서 볼 수 있는 정지영 감독의 리듬

[한국영화 걸작선]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1990)

<부러진 화살>에 이어 <남영동 1985>가 개봉했던 그때, 이 영화를 둘러싼 대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말은 ‘돌직구’였다.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를 에두르지 않고 보여주는 스타일이라는 건데, 여기에는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의 영화는 관객에게 돌직구를 던지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여기서 ‘돌직구’라는 건 이 영화가 어떤 형식도 거부했다는 의미일까? 이 영화가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고문실에서 보내며 관객에게 고문 자체를 체험시키는 것 때문에 영화의 형식마저 ‘돌직구’로 뭉뚱그린 건 아닐까? 


이런 질문을 갖게 된 건,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정지영 감독의 1990년 작인 <남부군>을 다시 봤을 때였다. 어린 시절 TV로 이 영화를 봤던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장면은 박민자(최진실)와 이태(안성기)가 낙엽을 쓸어모아 덮고 있는 장면이었다. 총상을 치료 중인 이태에게 민자가 말한다. “점점 추워지는데요. 몸을 따뜻하게 해야 상처가 빨리 아무는데… 절 안으세요.” 당시의 나에게 영화 속 그들의 상황이 어떤 맥락에 있는지는 둘째였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이 장면에서 악당의 추적을 피해 다니는 액션영화 속 남녀주인공의 ‘케미’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본 <남부군>에서 내가 기억했던 민자와 이태의 로맨스는 그나마 관객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려는 일종의 배려에 지나지 않았다. 

<남부군>의 주인공은 ‘조선 중앙통신사’의 종군기자였던 이태다. 그는 “두려움과 호기심이 엇갈리는 새로운 삶과의 만남”이란 태도로 빨치산이 되어 산에 들어간다. 다양한 사람들이 이태가 이끄는 소대로 들어오고, 이태는 그들과 함께 전투에 참여한다. 많은 사람이 죽고, 또 많은 사람이 버려진다. <남부군>은 그렇게 산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 이태가 결국 혼자 남을 때까지의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남부군>은 전투와 이동, 굶주림의 상황을 수시로 교차시킨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반복되는 동안 산의 풍경과 빨치산의 생활도 모습을 달리한다. 잠시의 휴식, 갑작스러운 이동, 또 잠시의 평안함, 다시 갑작스러운 전투와 도주. 추위는 굶주림과 함께, 봄의 따뜻한 햇볕은 전염병과 함께 찾아온다. 그 과정에 민자와 이태의 로맨스가 있고, 전쟁 중에서 시를 읽는 김영(최민수)의 고뇌가 있고, 마을주민을 강간한 죄로 자살을 강요받은 빨치산의 비열한 표정이 있으며 골수 빨치산인 여자 김희숙(이혜영)과 이태의 사이에 놓인 묘한 연정의 관계가 있다. 에피소드는 파편적으로 나열되지만, <남부군>의 그러한 불규칙한 리듬은 오히려 이들의 고통을 끝까지 체험하도록 만든다. 어떤 순간에는 일말의 기대를 갖고, 다시 그 기대가 무너지기도 하고, 긴장의 순간에 호흡을 멈추기도 했다가 어느 순간에는 웃기도 하는 희한한 리듬이었다. 과거 정지영 감독이 「키노」와 했던 인터뷰에 따르면, 빨치산이 토벌군을 후퇴시키는 장면에서 극장 안의 고등학생들이 박수를 쳤다고 한다. 감독의 의도이든, 아니든 간에 그 또한 이 영화의 불규칙한 리듬이 가져온 효과일 것이다.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이 전쟁의 한복판에 놓여있는 경험이었을 테니까. 

무엇보다 <남부군>은 극단적인 허탈감을 체험시키는 영화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낙오하고, 또 누군가는 탈출하면서 이태는 결국 혼자 남아 눈밭을 헤맨다. 죽음을 결심하고 턱밑에 갖다 댄 소총의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이태의 눈에 빨치산들이 쓰는 표식이 들어온다. 동지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지만 이태가 다시 눈밭을 헤쳐 그곳에 갔을 때, 보이는 건 시체뿐이었다. 아마도 한국영화사상 가장 춥고 고통스러운 겨울이었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울지 않고, 소리 지르지 않았던 이 남자도 그제야 괴성을 지른다. 영화를 보는 동안 꾹꾹 눌렀던 한숨을 터트린 것도 그 순간이었다. 집요하고 징글징글하다 못해 이가 갈리는 상황까지 관객을 끌어다 놓는 영화의 박력이라니. 나도 모르게 157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하얗게 불태운 것 같았다. 

<남부군>을 다시 보던 그때, 나는 영화 속의 지리산과 <남영동 1985>의 고문실이 매우 흡사한 느낌의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남영동 1985> 또한 고문의 고통을 진이 빠지도록 체험시킨다. 고문을 시작한 이두한(이경영)은 김종태(박원상)에게 할 말이 있으면 발가락을 움직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가 발가락을 움직인다고 해도 이두한은 고문을 멈추지 않는다. 김종태는 고문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굴복하지만, 그럼에도 고문은 계속된다. 고문의 클라이맥스에서 결국 모든 걸 내려놓았을 때, 이두한은 말한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고문이 언제 끝날지 누구도 모르는 영화 속 상황은 지리산을 헤매는 <남부군> 속 빨치산의 운명과 똑 닮아 있었다. 


당시 인터뷰에서 정지영 감독은 자신이 “마음에서부터 문제를 똑바로 보기를 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예술가들이 상징성을 통해 메시지를 녹여내는 걸 더 예술로 평가하잖아. 그런데 나는 그게 성에 안 차요. 약간 피해 가는 것 같으니까.” ‘돌직구’라는 표현 또한 피해 가는 게 싫은 그의 태도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하지만 <남영동 1985>와 <남부군>뿐만 아니라, <부러진 화살>이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나 <하얀전쟁>이나 그의 대표작들은 어차피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하는 사람의 어디서 끝날지 모르는 여정을 그렸다는 점이 더 중요해 보인다. 은유나 비유를 덜어냄으로써 그들의 여정은 더 많은 질문과 감정을 채워넣도록 만드는 압도적인 박력을 가진다. 그것이 ‘돌직구’란 말에 숨겨진 정지영 감독의 형식이다. 그의 영화가 지닌 리듬이고, 매혹이다. 


*2014년 5월,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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