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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Jul 21. 2018

'공동경비구역 J.S.A'의 차갑고 아픈 비극

그런데 왜 이 영화는 남북한 병사의 우정으로만 기억되는가

최근 개봉한 <강철비>를 본 후 떠오른 질문이 있다. 남과 북의 관계를 소재로 한 영화들, 구체적으로 말해 6.25 같은 전쟁을 회고하는 영화가 아니라 남북대치상황을 토대로 상상한 한국영화 가운데 비극이 있었던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선뜻 떠오르지는 않았다. <쉬리>(1999)의 마지막은 비극이기는 했지만, 주인공 유중원(한석규)은 더 거대한 비극을 막기 위해 자신의 비극을 선택한 경우다. <이중간첩>(2003)의 비극 또한 크게 다른 느낌은 아니다. 장르적으로 보면 주인공 림병호(한석규)는 그렇게 죽는 게 어울리는 캐릭터다. 이들에 비하면 <의형제>(2010)와 <공조>(2017)는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기획된 영화다. 그리고 <베를린>(2013)처럼 다음 이야기를 기약하는 엔딩도 있었다. 남북관계를 소재로 한 대부분의 한국영화들은 사실상 장르영화이고, 그래서 이들이 선택한 엔딩 또한 장르적이다. 비극적인 엔딩이라고 해도 거기에서 한반도의 비극을 떠올리기보다는 주인공의 장르적인 최후나 파멸, 혹은 필연적인 희생을 보게 되는 것이다. <강철비>의 주인공 또한 마찬가지다. 그의 죽음은 더 큰 무언가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고, 그의 희생을 통해 영화는 해피엔딩을 맞는다. 그의 죽음에서 관객은 비극이 아닌 감동을 경험한다. 


물론 이건 대중영화로서 당연한 선택이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에서 흥미로운 기억은 1990년 후반 이후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한국영화의 태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 중 하나인 <공동경비구역 JSA>의 비극이다. 이 비극은 장르적으로 규정하기도 쉽지 않지만, 매우 차갑고 불편한 비극이다. 더 흥미로운 건, <공동경비구역 JSA>가 비극으로 기억하는 게 낯설게 느껴지는 영화라는 것이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지난 2000년에 개봉했고, 케이블 TV에서도 수차례 방영된 덕분에 반복 관람한 사람이 많은 작품이다. 하지만 대부분 이 영화의 비극보다는 남과 북의 병사들이 나누는 우정의 미담을 더 강렬하게 기억한다. 함께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닭싸움하고, 술을 마시며 서로를 형 동생으로 부르는 남자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4번 정도 보았던 나 또한 마찬가지다. 지난 2015년 개봉 15주년 기념으로 재개봉했을 때 극장을 찾아간 게 4번째였다. 그렇게 보고나서야 이 영화가 정말 차가운 비극의 영화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지금 주위에 과거 이 영화를 본 사람이 있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이 영화에 등장한 4명의 군인 가운데, 누가 제일 먼저 죽었는가. 그는 누구의 총에 맞아 죽었는가. 그리고 이 4명의 군인 중에서 유일하게 죽지 않은 사람은 누구인가? 


<공동경비구역 JSA>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돌아오지 않는 다리 북측 초소에서 발생한 북한 병사와 장교의 사망 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당시 남한 병사와 북한 병사 사이에 교전이 있었는데, 양쪽 병사들의 주장은 다르다. 남한 병사들은 북한 병사들이 자신들을 납치했다고 진술한다. 북한 병사들은 갑자기 남한 병사들이 초소로 침입했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들의 진술 이면에 가려진 진실은 사실 이들이 꽤 오랫동안 우정을 쌓아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총격전이 벌어진 걸까? 그날 밤의 사건을 드러내는 영화의 서사는 ‘방어기제’와 같은 정신분석학적 용어를 연상시킨다. 이수혁 병장(이병헌)과 남성식 일병(김태우)이 사건을 회고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다. 그들은 모두 그날의 일을 잊으려 애쓰는 동시에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기억으로 재조립한다. 그럼에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성식은 자살한다. 이후 소피(이영애)에 의해 밝혀지는 진실. 북측의 오경필 중사(송강호)와 정우진 전사(신하균), 그리고 남측의 이수혁과 남성식이 비밀리에 어울렸다는 사실이 북한군 장교에 의해 발각된다. 그들은 그 순간 서로 총을 겨누었다. 오경필의 중재로 동시에 총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김광석의 노래를 울리던 카세트 데크가 ‘찰칵’ 소리를 낸다. 그 소리에 북한군 장교는 다시 총을 빼려 하고, 그걸 본 남성식도 총을 빼서 그를 쏜다. 그걸 본 정우진이 총을 쏘자, 남성식은 그에게도 총을 쏜다. 그는 총질을 제어하지 못한다. 동생처럼 아꼈던 정우진은 그가 난사하는 총을 계속 맞는다. 여기까지도 비극이지만, 더 큰 비극은 이것이 사실 이수혁의 거짓말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정우진에게 먼저 총을 쏜 건, 이수혁 자신이었다. 그는 이 사실을 숨기려 했을 뿐만 아니라 잊으려 했을 것이다. 끝내 잊지 못하고 자신이 저지른 일을 떠올린 이수혁 역시 죄책감에 자살하고 만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이수혁의 사망 후 바로 4명의 군인이 함께 찍힌 사진을 보여주며 끝난다. 이 사진은 그들의 아름다운 우정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장면으로 기억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방금 전 이수혁의 죽음에서는 어떤 장르적인 파멸이나, 장렬한 희생, 그로인한 감동 같은 걸 느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형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 결국 우린 적이야.” 이수혁의 극중 대사처럼 <공동경비구역 JSA>가 보여주는 건, 남과 북이 서로에게 품고 있는 두려움과 공포다. 그리고 그런 공포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더 무서운 결론이다. 돌이켜보면 이 비극의 정서는 당시 박찬욱 감독의 다음 작품이었던 <복수는 나의 것>과도 통한다. 극 중 동진(송강호)의 딸만 죽지 않았다면, 류(신하균)와 영미(배두나)는 동진에게 돈을 받고 아이를 건강한 상태로 돌려주면서 그들이 말한 “착한 유괴”를 완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JSA의 남북한 군인들 또한 먼저 총을 쏘지 않을 정도로 조금만 더 용감했다면, 얌전히 본진으로 돌아와 제대 후에는 그날 밤을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간직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영화의 인물들 모두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비극에 휘말리면서 모두 파괴되고 만다. 


이토록 가혹한 비극이었는데도 <공동경비구역 JSA>의 비극이 잘 기억되지 않는 건, 나를 포함한 관객들 모두 이수혁과 같은 심정이었기 때문일 거다. 너무 차갑고 아픈 비극이라 관객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들의 아름다운 우정만 기억하고 싶었던 걸 수도 있겠다. 혹시 그렇게 바래진 기억 덕분에 이후 <의형제>나 <공조> <베를린> 그리고 <강철비> 같은 남북한 남자들의 콤비플레이가 가능했던 걸까? 흐름으로만 보자면 한국영화 속 남북의 우정이 서로를 믿지 못한 남북한 군인들의 공포에서 시작된 셈이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도 남북관계를 다룬 그 어떤 영화보다 더 강렬하게 기억되는 이유다. 


*2018년 1월,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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