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총이 없어요. 대신..."
한 나라의 영화는 그 사회의 성격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많은 한국 감독 가운데 봉준호는 특히 한국사회에서 받은 영감을 끈질기게 스크린에 투영해온 아티스트다. ‘옥자와 ‘설국열차’ 같은 글로벌 프로젝트가 있었지만, 과거 그가 연출한 단편 ‘지리멸렬’(1994)이나 ‘백색인’(1994)을 보면 이러한 관심이 상당히 오래전 부터 시작됐다는 걸 알 수 있다. 지난해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은 이 자리에서 한국영화의 성격과 한국 사회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한국영화가 묘사하는 폭력의 특징이었다.
이 인터뷰에서 먼저 한국영화가 묘사하는 폭력의 특징 하나를 설명했다. 영화 속 인물들이 총을 쓰지는 않는데도, 총을 쓰는 영화들보다 더 무섭고 극단적인 느낌을 주는 이유다. 봉준호 감독은 “우리 사회에서는 총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영화 속 폭력배들은 칼을 쓴다”고 말했다.
“사시미, 스시 셰프가 쓰는 칼을 쓰지. 그게 더 무섭고 익스트림 하지. 가까이에서 서로 눈을 보고 칼로 푹 쑤시는 거니까. 거리가 더 가까워지거든. 총으로 빵 쏘는 거 보다 더, 그래서 오히려 더 무시무시하지. 그 칼의 소리, 칼이 몸을 삭 베는 소리라던가, 내 배를 사시미로 만든다고 생각해봐. 무섭잖아.”
이 영상에서 봉준호 감독은 한국영화가 극단적인 면을 갖고 있는 이유를 사회 분위기와 역사에서 찾았다.
“작은 나라에 수천만명이 살고 있는데, 워낙 역사의 굴곡이 되게 빠르고 많은 일들이, 사건들이...(일어났죠) 작년에도 큰 사건이 있었지만, 대통령이 바뀌게 되는. 정말 드라마틱한 역사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격렬한 히스토리를 갖고 있다보니까. 개인과 사회, 개인과 역사가 충돌하는 일 자체가 많죠. 그래서 서유럽이나, 오스트레일리아나 벨기에에서 나오는 영화와는 다를 수 밖에 없죠.”
“실제 사회 자체나 사람들의 감정이 익스트림 한 경우가 많죠. 사회 자체가 격렬하고, 여러가지 격동과 극단적인 일을 많이 겪으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의식하지 않아도.”
“그리고 그런 자극이 강한 영화를 관객들이 쉽게 받아들여요. 음식으로 치면 토핑이나 소스가 엄청 강력한 것도, 멕시칸 푸드에 막 한국 소스를 더 얹은 듯한 것도 쉽게 삼켜버리기 때문에....”
“한국은 워커홀릭의 나라에요. 동시에 사람들은 정말 많은 술을 마시죠. 매일밤, 매일 낮...정말 세게 마십니다. 모든 게 매우 극단적이에요.”
봉준호 감독은 현재 차기작 ‘패러사이트’를 준비 중이다.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장혜진, 최우식, 박소담이 출연하는 작품으로, 제작진은 “두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리는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가족의 모습 또한 봉준호 감독이 말한 한국 사회의 성격과 맞닿아 있을 듯 보인다.
*2018년 5월, 허프포스트코리아에서 정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