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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Aug 14. 2018

난민에게 하늘을 나는 능력이 생긴다면?

그런 상상을 한 영화가 있다.

영화 ‘주피터스 문’은 유럽의 난민문제를 신화적인 상상력과 과감한 연출로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은 나락에 빠진 의사 스턴(메랍 니니트체)와 시리아 난민 소년 아리안(솜버 예거)이다. 헝가리 난민 수용소에서 몰래 난민을 빼주며 돈을 벌던 스턴은 어느날 아리안을 만난다. 그런데 총에 맞은 아리안은 그 순간 공중에 몸을 띄우는 신기한 능력을 보여준다. 아리안 자신도 자신의 갑작스러운 능력에 놀란 것 같다. 그보다 더 놀란 스턴은 그 순간 아리안을 이용해 돈을 벌 궁리를 한다. 아리안 또한 아무런 의지가 없는 건 아니다. 그는 국경에서 헤어진 아버지를 찾고자 한다. 하지만 난민을 추적하는 경찰들도 이들의 뒤를 쫓는 중이다.


‘주피터스 문’에서 눈길을 끄는 건, 먼저 시각적인 아름다움이다. 영화를 연출한 코르넬 문드럭초 감독은 아리안이 비행하는 장면을 사실적인 동시에 꿈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찍어놓았다. 롱테이크로 담아낸 인물과 자동차의 추격전, 이물감 없이 공중을 비행하는 장면등은 알폰소 쿠아론이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보여준 테크닉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피터스 문’은 SF영화나 슈퍼히어로영화와 같은 상상력으로 유럽이 처한 난민문제의 현실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다. 다소 과한 종교적 색채와 여러 현실적인 문제를 건드리려는 욕심이 지나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영화가 구현한 마법같은 장면은 경험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다음은 '주피터스 문'의 개봉에 맞춰 연출자인 코르넬 문드럭초 감독과 서면으로 나눈 대화다. 


- 당신과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하늘을 나는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곳은 ‘꿈’밖에 없을 것 같다. 혹시 당신도 평소 꿈 속에서 하늘을 자주 날아다니는 편인가? 그게 아니라면 어떤 꿈을 주로 꾸나?


= 나는 아주 단순한 꿈을 꾼다. 낯선 동네의 거리를 돌아다니고, 집과 사람들을 바라보며 행복을 느끼는 긍정적인 꿈이거나, 할머니가 나가서 친구들과 놀지 못하게 하셔서 방에 갇혀 있는 것 같은 실망스러운 꿈이다. 할머니가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꿈을 꿀 뿐, 무시무시한 것이 날아다니는 꿈은 꾸지 않는다.


- ‘주피터스 문’은 세르비아 국경에서 헝가리로 향하는 시리아 난민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주며 시작한다. 감독인 당신이 난민 문제를 대하고 있는 태도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유럽으로 들어온 시리아 난민과 그들을 대하는 헝가리의 현실적인 태도에 대해 영화를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시나리오 작업은 위기가 유럽에서 정점에 다다르기 전에 끝났다는 점이 꽤 흥미롭다. 표지에 우리는 ‘미래의 어느 때’라고 적었다. 결국 그 미래가 우리에게 이미 찾아왔다.

- 난민에 대한 이야기에 하늘을 나는 초능력을 가진 소년의 이야기가 더해진 이유 혹은 계기가 있었다면?


= 나는 늘 신화와 다른 세계의 존재에 관심이 많았다. 성경이든 그리스 신화든, 심지어 슈퍼히어로든 상관없었다. 나는 이 영화에서 우리가 천사 같은 슈퍼히어로의 얼굴을 보길 원했다.


- 초능력을 가진 난민 소년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가장 먼저 떠오를 수 있는 건 할리우드 슈퍼히어로와 같은 장르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주피터스 문‘은 끊임없이 ‘신’과 ‘기적’에 대한 은유를 보여주는 영화다. 각본을 쓰는 과정에서 좀 더 장르적인 이야기를 만들어야 겠다는 유혹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 나는 유럽의 작가주의 감독이다. 슈퍼히어로 장르는 게임처럼 나를 짜릿하게 한다. 반면 나는 그 장르를 진심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기 때문에, 나는 순수한 장르 영화에는 흥미가 없다. 나는 여러 장르를 섞어 뭔가 다른 것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DJ에 더 가깝다.


- 영화에서 아리안의 공중부양을 본 사람들은 그가 천사이거나, 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영화는 아리안이 어쩌다가 공중부양을 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는다. 그가 원래부터 그런 능력이 있었는지, 아니면 국경수비대에 쫓기던 도중 총을 맞은 후부터 이런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 설명을 처음부터 배제한 이유가 있었다면 무엇이었나?


= 나는 신성성 때문에 아무도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신과 같은 대답을 찾고 있었다. 인과관계를 자세히 설명해서 배경을 압도하고 싶지 않았다.

- 영화에서 주인공 ‘아리안’을 연기한 배우 솜버 예거는 헝가리의 신인배우로 알고 있다. 신인 배우를 캐스팅했을 때는, 주인공의 얼굴이 관객에게 낯설기를 바랬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그렇다면 혹시 실제 시리아 난민 중에서 주인공을 맡을 배우를 찾으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 우리는 오랫동안 진짜 난민을 찾았지만, 관료주의적 장애물이 잇달아 발생해서 배우를 캐스팅하는 게 낫겠다고 결론내렸다. 그때 훌륭한 배우인 솜버 예거를 만났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즉시 알 수 있었다.

- ‘주피터스 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아무래도 원신 원컷으로 찍어낸 롱테이크 장면들, 그리고 아리안의 비행장면이다. 특히 아리안의 비행장면은 어떻게 촬영했을지 궁금했다. 크레인만으로는 찍을 수 없는 장면처럼 보였다. 드론을 활용한다고 해도 찍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 전부 실제로 찍었다. ‘비행’ 장면은 밧줄과 크레인을 이용했다. 카메라도 기계에 달았다. 그린 스크린이나 드론은 쓰지 않았다. 이 모든 장면들을 기록하기란 지극히 어려웠지만, 그 결과 비디오게임이 아닌 실제 비행이 담겼다.


- 영화를 보면서 실제 촬영현장이 가장 궁금했던 장면은 스턴과 아리안이 어느 아파트에 살고 있는 환자를 찾아갔을때다. 이때의 비행장면은 이전과 이후의 장면과 다르다. 아리안은 이 장면에서 공중을 부양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중력이 작동하는 방향까지 바꾼다. 그래서 아파트 내의 모든 집기와 가구, 물건들이 아리안의 동작에 따라 움직인다. CG로만 만들 수 있는 장면은 아닌 것 같았다.


= 테크노크레인 두 개가 들어있는 로테이팅 룸을 썼다. 이런 씬들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고, 나는 그게 참 좋았다. 제대로 될 때마다 굉장히 뿌듯했다.

- 스턴의 아파트에 있던 아리안이 집에 쳐들어 온 라슬로를 피해 아파트 밖으로 나가 천천히 내려오는 장면이 있다. 이때 아파트 각 층에 있는 집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리안의 시선에서 보면 그들의 삶은 매우 안락해 보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이 장면에서 감독인 당신이 의도한 바가 있다면?


= 나는 강의 같은 스토리텔링에서 벗어나 동화 같은 걸 만들고 싶었다. 아리안의 존재는 삶의 슬픔을 일깨워주는 메시지를 보내지만, 그 메시지는 모든 것의 시작, 즉 어린 시절로 우리를 데려가 주는 마법 속에 숨어 있다.

- 이 영화에서 관객이 주목하는 건, 초능력을 가진 아리안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면서 실제 드라마틱한 변화를 경험하는 건, 부패한 의사 스턴이다. 스턴의 변화를 통해 감독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바가 있었다면 무엇이었나?


= 희망이 있다, 우리 자신과 세계를 바꾼다는 생각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였다.


- 원신 원컷으로 찍어낸 롱테이크 장면들, 그리고 아리안의 비행장면들은 영화 속의 공간을 새로운 감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이러한 연출을 하기위해 참조한 레퍼런스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과 알폰소 쿠아론의 영화들이 떠올랐다.


= 1960년대부터 롱 샷을 써온 환상적인 헝가리 감독들인 미클로시 얀초, 벨라 타르의 영향을 주로 받았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는 내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사람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 최근 헝가리는 최근 난민을 돕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불법 이민자를 지원하는 개인 혹은 단체에 대해 최대 1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발표했다. ‘주피터스 문’은 이 법안이 나오기 이전에 제작됐지만, 영화 속 상황은 과거로 보이지 않는다. 헝가리 정부의 이러한 난민억제 정책에 당신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 내가 보기에 그들의 행동 뒤의 유일한 이유는 순수한 포퓰리즘이다. 다른 건 전혀 없다.


- 당신의 전작 중 한 편인 ‘화이트 갓‘의 개들과 ‘주피터스 문’의 아리안은 어느 정도 통하는 부분이 있어보인다. 한 사회에서 핍박받는 존재들이 어떤 계기에 의해 새로운 힘을 갖게 되면서 벌어진 이야기라는 점에서 말이다. 또한 난민문제와 동물문제 모두 실제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난민 문제외에 당신이 현재 헝가리나 유럽, 혹은 지구에서 발생한 문제들 가운데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는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어쩌면 그런 관심이 차기작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내가 가까운 미래에 집중하고 싶은 것들은 다음과 같다. 인간이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적 가치란 무엇인가? 사랑은 왜 재평가 받는가? 나는 이러한 질문들을 둘러싼 연극과 영화 프로젝트들을 기획 중이다. 이에 대한 답들을 우리 안에서 끌어내려 한다.


*2018년 8월 '허프포스트코리아'에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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