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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Aug 10. 2018

‘극장광고’에 대한 다섯 가지 탐문

참을 수 없는 10분의 경제학

*2012년 3월 씨네21에서 썼습니다. 


영화기자 K의 친구인 L은 방광이 작다. 맥주를 마시든 커피를 마시든 수시로 화장실을 찾는 그에게 극장은 상당히 난감한 장소다. 지난 2월, K와 L이 함께 <워 호스>를 보러갔던 그날. 두 사람은 상영시간 전, 화장실을 경유하고 객석에 앉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뭔가 불안했는지 L은 다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일어났다. K는 휴대폰 액정시계를 확인했다. 4시38분. 티켓에 적힌 상영시작 시간이 4시30분이었으니, 10분의 광고시간을 계산할 때 이제 약 2분 뒤면 영화가 시작할 것이다. 오프닝 크레딧은 못 보겠군. 잠시 뒤, L이 돌아와 말했다. 아직 시작 안 했네? 스크린에서는 여전히 광고가 상영 중이다. K는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4시44분이다. L과 함께 화장실을 가서, 나간 김에 나초까지 한 접시 사서 들어왔어도 됐을 시간이다. 순간 K는 궁금해졌다. 공지된 상영시간 이후의 광고시간은 대략 10분 정도로 알고 있었다. 혹시 극장광고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 점점 늘어나고 있었던 걸까? 처음에는 3분, 그다음에는 5분, 그리고 10분. 이런 식으로 극장광고에 나도 모르게 적응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극장광고’, 정확히 ‘스크린 광고’에 대한 K의 탐문은 그렇게 친구의 작은 방광에 의해 시작됐다.


첫번째 탐문. 왜 하필 극장광고는 10분인가?


K가 <워 호스>를 봤던 멀티플렉스의 관계자에게 전화를 했을 때만 해도, 그는 단지 극장광고 시간이 10분을 넘기고 있는가, 만을 확인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 관계자는 K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말했다. “절대 그럴 리 없어요! 내부 규정뿐만 아니라 시스템상 절대 10분을 넘길 수 없어요! 그중에서도 5분은 예고편이랑 에티켓 알림, 대피 안내에 관한 거예요. 진짜 상업광고는 5분밖에 안돼요.” K는 그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위성으로 받는 휴대폰 시계와 극장 내부에서 사용하는 시계의 시간차가 있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K는 ‘절대 10분을 넘길 수 없다’는 말의 단호함에서 ‘왜 하필 10분일까?’가 궁금해졌다. 극장 내부 직원들이 회의석상에서 5분이냐, 7분이냐를 놓고 이야기하다가 누군가가 ‘그냥 깔끔하게 10분으로 하자!’ 해서 10분이 정해졌을 리는 없을 것이다. 분명 ‘10분’이라는 답을 도출하기 위한 수많은 계산이 있었을 것이고, 그 계산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왜 10분인가란 질문은 극장광고가 어떻게 시작됐는가란 질문에서 시작해야 했다. K는 다른 멀티플렉스 관계자들을 접촉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K의 질문에 멀티플렉스 관계자들은 모두 곤혹스러워했다. 극장광고에 대해 관객이 불만을 갖고 있는 이상, 어떤 이야기를 해도 또 욕먹을 게 뻔한 상황이라고. 극장광고를 운영하는 배경 자체가 영업비밀이라고. 당장의 호기심이 먼저였던 K는 몇 가지 약속을 하고 말았다. 당신이 누군지 밝히지 않겠다. 당신이 어느 극장에서 일하는지도 밝히지 않겠다. 당신을 포함한 모든 취재원들을 멀티플렉스 관계자 A로 통칭해 표기하겠다. 그러니 일단 말해달라. 다음은 그 A와 나눈 대화다.  


K | 극장광고가 관객의 요구로 처음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주차문제로 늦게 입장하는 관객이 일종의 에티켓 타임을 요구하면서 생겨난 거라던데요?


A | 꼭 그것 때문에 만들어졌다기보다는 복합적이죠. 아시겠지만 옛날에도 극장광고가 없던 건 아니에요. 예식장이나 안경점 광고는 있었잖아요. 그때는 지금 같은 광고를 받으려고 해도 받을 수가 없었어요. 지금도 그렇기는 한데, 그때는 광고매체 중에서도 가장 끝에 있던 게 극장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멀티플렉스가 생기고, 극장이 많아지고 커지면서 광고주들이 눈을 뜨기 시작한 거죠. 2000년대 초반이라고 보면 되는데, 그때만 해도 TV에서 하던 광고를 그대로 트는 수준이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광고가 많았던 것도 아니에요. 극장광고는 필름으로 제작할 수밖에 없잖아요? 필름으로 또 떠야 하는데, 굳이 그 돈을 쓸 만큼의 메리트는 없었던 거죠. 광고 단가 대비 효과가 안 맞는 거야. 그런데 2003년인가, 2004년인가, 디지털 상영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비용도 싸지고 제작도 용이해졌죠. 그러면서 극장용 광고라는 것도 만들어지기 시작한 거죠. 에티켓 타임에 대한 관객의 요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극장광고가 시작했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K | 그런데 왜 10분이에요?


A | 처음부터 10분은 아니었어요. 처음에 아무런 개념이 없었을 때는 5분도 있었을 테고, 15분이었을 수도 있어요. 디지털 시스템 때문에 극장광고가 많아지기는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수익원이 될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2005년, 2006년이 되면서 관객 수는 줄고 티켓 가격은 그대로인데 시설투자는 늘다보니 극장 전체 수익성이 줄기 시작한 거예요. 그때부터 수익창구를 다양하게 늘려보자 했던 거고, 광고를 영업하는 팀도 만들어졌죠. 그런데 영업을 하려면 데이터가 필요하잖아요? 집객(손님모으기)은 어느 정도 되고, 그에 따른 효과는 어느 정도일지를 광고주한테 보여줘야 하니까 여러 테스트를 해보기 시작했어요. 5분도 해보고, 8분도 해보면서 관객 반응을 체크하고 수익을 계산하고, 교통 정체, 주차 지연, 화장실, 구내매점 등 다양한 상황을 체크해서 나온 임계치가 10분이 된 거죠.  


K | 10분을 넘는 경우가 전혀 없나요?


A | 간혹 있을 수 있어요. 1, 2분 정도? 기존에 세팅된 광고들이 있는데, 갑자기 공익광고나 정책성 광고들이 끼어드는 경우가 있어요. 또 요즘은 종종 긴 광고들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보통은 급하게 들어오는 광고가 있으면 예고편을 빼요. 


K | 극장광고가 정말 돈이 되기는 하나요? 


A | 멀티플렉스 체인마다 사정이 조금 다르기는 할 거예요. 직접 광고영업을 하는 곳도 있지만 영사시스템을 제공·관리받는 조건으로 아예 외주에 맡기는 곳도 있거든요. 직접 영업을 하는 멀티플렉스라고 가정하면 보통 한해 흑자규모가 그해의 광고수익과 비슷해요. 그러니까 티켓 매출이 70% 정도고 나머지가 매점 매출, 스크린 광고 매출, 옥외 래핑광고나 PDP 광고 매출, 그리고 위탁 수수료 매출인데, 그중 스크린 광고와 옥외광고 수익이 한해 흑자량과 비슷한 거죠. 사실 일반적인 경영론과는 맞지 않는 게 있어요. 매출을 올리려면 매출구조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티켓 가격을 올리는 게 맞잖아요? 하지만 극장 마음대로 올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또 그때 가격을 올렸으면 시장의 파이가 줄어들 수도 있는 문제고. 무엇으로 보전할 것이냐를 고민하다가 나온 결론이 광고였던 거죠.



두 번째 탐문. 극장이 극장광고로 받는 광고비는 얼마나 될까? 


광고수익과 흑자규모가 비슷하다는 말에 K는 사사로운 질문들을 떠올렸다. 도대체 광고비가 얼마나 되는 걸까? 어떻게 영업을 하기에 수익보전이 되는 걸까. 마음 한쪽에서는 이걸 물어본다고 해서 답을 해줄까 싶은 걱정이 들었다. 조금 다르게 물어보기로 했다.   


K | 만약에 누군가가 자기 여자친구한테 프러포즈를 하기 위해 극장광고를 한다고 했을 때, 그러니까 늘 가던 극장에 데려가서 프러포즈 광고를 보게 하는 거죠. 이게 가능할까요?


A | 어떤 프리미엄 상영관은 해준대요. 다른 관객은 없고, 둘만 있을 때 영사실에서 틀어주는 거죠. 그런데 일반 상영관에서 그렇게 한다? 글쎄요. 일단 되게 창피할 거 같아요. 일반 극장광고는 특정 지점에서 특정 시간대에 특정 상영관을 지정해서 받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여러 상영관을 엮어서 패키징으로 영업하거든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프러포즈하는 광고가 비슷한 시간대나 혹은 다른 날에 또 다른 지점에서 상영되는 거죠. 프러포즈받는 입장에서 보면 싫어할 것 같은데….


K | 패키징은 어떤 식으로 하는 건데요?


A | 관객이 많이 드는 지역 몇 군데와 관객이 적은 곳 몇개를 묶는 거죠. 그러면서 단가를 좀 낮추기도 하고. 좌석 수에 따라서도 패키징을 하죠. 상영 시작 전 광고와 이후 광고를 묶기도 하고요. 


K | 그럼 흥행작에 따라서 단가가 달라지기도 하나요?


A | 그건 어렵죠. 흥행을 예측할 수는 없잖아요. 매주 바뀌기도 하고. 


K | 아예 단순화해서, 영화가 8시에 시작한다고 하면 8시 이후의 광고 하나 단가는 어느 정도로 봐야 할까요? 


A | 천차만별이라고 봐야 할 텐데. 극장광고라는 게 패키징으로 영업하기도 하지만 장기계약이 많아요. 일반적으로 30초를 한 계좌로 보는데, 그렇게 계약하다보니 이 계좌의 단가가 얼마냐라는 건 크게 의미가 없는 거죠.

 

K | 그래도 어느 정도 합의된 가격이 있어야 ‘네고’라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요?


A | 회사마다 다를 텐데, 그냥 일하는 사람들이 대충 머릿속에 두고 있는 가격이라고 해야 하나? 그 정도 수준은 1억원에서 1억5천만원 정도? 그러니까 상영 시작 시간 이후에 돌리는 광고인데, 한달간 전국 스크린에서 돌린다고 했을 때의 단가가 그 정도예요. 비싸다고 볼 수 있는 건 아니죠. 


K | 성수기에는 단가가 올라가겠네요?


A | 그렇죠. 그런데 말씀드렸듯이, 대부분 턴키광고라… 그래도 일단 광고량이 많아지기는 하죠. 그렇다고 광고시간이 길어지는 건 아니에요. 예고편을 줄이죠. 예고편 대 상업광고 비율이 비수기 때 6 대 4라면 성수기 때는 3 대 7 정도 돼요.



세 번째 탐문. 극장 관람료에는 광고 보는 시간도 포함될까?


K는 구글에서 ‘극장광고’를 검색했다. 극장광고의 효과에 대한 분석, 광고대행업체에 극장광고 견적을 물어보는 게시물 틈에 극장광고에 대한 불만을 적은 블로그 페이지들이 보였다. 일부 부지런한 관객은 직접 멀티플렉스 고객센터에 불만을 제기하고 그에 대해 받은 답변을 올려놓기도 했다. 같은 멀티플렉스에서 나온 답변들은 시기와 상관없이 비슷했다.


“저희 극장에서는 티켓에 적힌 시작 시간 전 15분 정도의 광고와 영화 상영시간 시작 뒤에 뒤늦게 입장하시는 고객님들을 위해 시작 시간 뒤 8~10분 정도의 광고와 예고편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시작 시간보다 약간 먼저 입장하실 경우 20분가량 되는 긴 광고와 예고편들을 관람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고객님의 소중한 시간에 불편을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 말씀 전합니다. (중략) 현재 대한민국의 극장요금은 지난 6년여간 지속적인 물가상승에도 불구하고 제자리걸음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며 이러한 여건하에서 상영요금만으로는 극장을 운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여건을 타개하고자 다양한 마케팅이 요구되고 있으며 스크린 광고도 그중 일부분이므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꽤 긴 답변이지만 답변을 받은 관객은 답변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극장이 힘들다고 치자. 그런데 어쨌든 지금 내가 내는 가격이 정가 아닌가. 돈을 내고 영화를 보는 건데, 왜 내가 광고까지 봐줘야 하나. 뒤늦게 입장하는 관객은 그들 사정 아닌가. 난 정시 입장했는데, 왜 피해를 받아야 하나.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다’라는 말로는 납득할 수 없는 또 다른 입장. K는 이에 대한 극장쪽의 입장이 궁금했다. 


K | 정가를 내고 왜 또 광고를 봐야 하나요?


A | 일하고 계신 잡지도 광고받잖아요? 신문, 잡지들이 구독료도 받고 광고받는 거랑 비슷한 성격으로 봐야죠.


K |제가 일하는 잡지의 정가는 3천원(현재 4천원)이에요. 하지만 실질적 가격은 ‘3천원+광고 보는 시간’이겠죠. 이 잡지 역시 10년간 가격을 올리지 않은 상황이니 광고가 매우 중요한 수익원이고요. 그렇다면 지금 관객이 지불하는 극장 관람료도 주말이면 ‘9천원+광고 보는 시간 10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A | 그러면 1만6천원 내고 광고를 안 보게 하는 게 나을까요? 


K | 뭐가 더 낫냐라는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극장가격을 합리적으로 따져보자는 거예요. 9천원으로 장사가 안되니까 광고를 받는 거고, 그러니까 9천원+광고 보는 시간 10분인 거죠. 관객 없이는 광고도 받을 수 없잖아요.


A | 10분은 아니죠. 예고편, 대피 안내, 에티켓 안내는 빼야죠.


K | 알았어요. 그러면 9천원+광고 보는 시간 5분. 


A | 이건 다른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볼게요. 제가 개인적으로 그렇다,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에요. 


K | 관객은 극장광고에 불만을 가지는 게 아니에요. TV에서 못 보는 재밌는 광고도 많아요. 하지만 상영시간을 공지해놓고 그 이후에 광고를 하니까 불만인 거죠. 


A | 조사를 해보면 영화 시작 전까지의 착석률이 80%가 안돼요. 아무래도 광고영업에 문제가 되죠. 극장 입장에서는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면서도 쾌적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장치로 관객이 10분을 감내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K | 무엇보다 극장광고는 신문이나 잡지, TV광고처럼 보고 싶지 않으면 안 보는 광고가 아니라는 게 불만의 가장 큰 이유예요.  


A | 그래서 극장도 불만을 줄여야 하는 입장이니까 고민을 많이 해요. 4D 광고도 만들고, 이왕이면 재밌는 광고들을 받으려고 하죠. 국민당 1년 영화관람 횟수가 3번 정도잖아요? 영화를 자주 보는 사람들은 극장광고에 불만을 갖지만 1년에 한두번 보는 분들은 재밌다고 하세요. 하지만 극장을 자주 찾는 관객에게 극장이 적극적으로 이해를 구하는 건 필요하죠. 멀티플렉스들이 지금 문화체육관광부랑 협의해 티켓에 “상영 전 10분의 광고가 있다”는 걸 알리는 문구를 조정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아직 어떤 문구가 정해진 건 아닌데, 극장으로서는 광고를 받아야 할 상황이니까 조금 더 이해를 구하는 차원에서 노력을 하는 거죠.


K | 그냥 한번 던져볼게요. 영화 티켓을 보면 영화 상영시간 전에만 환불이 가능하다고 쓰여 있잖아요. 일반적으로 환불 가능시간은 티켓에 적힌 상영시작 시간 전을 말하는 건데, 사실상 영화는 광고시간 10분 뒤에 시작해요. 그렇다면 광고시간 동안 환불이 가능할까요? 말하자면 극장 관객의 재핑은 가능할까, 란 호기심이에요.  


A | 티켓 취소 정책은 악용의 소지가 많아서 원칙적으로는 티켓 환불은 영화 상영시작 시간을 넘기면 불가능해요.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고객이 원하는데, 안 해줄 수도 없어요. 경우에 따라 알아서 대처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광고시간이 최대 10분을 넘기지 않는 건 맞는데, 시기별로 지역별로 차이가 있거든요. 광고시간까지 포함시키면서 예매취소 가능시간을 정하기는 매우 힘들 것 같아요.

네 번째 탐문.  관객이 이렇게 많은데 왜 극장사업은 어려운가?


극장광고라도 없으면 극장이 극장이 될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입장이라고 K는 생각했다. K에게는 마지막 질문이 생겼다. 지금의 멀티플렉스는 왜 극장광고가 없으면 경영이 어려울 정도로 힘든 걸까. 티켓 가격의 문제 이전에 멀티플렉스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는 건 아닌가. K는 순진하게 물었다. 극장이 왜 힘든가요? A는 “관객 입장에서는 힘들든 말든 상관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알 필요가 없죠. 알아도 이해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요.” 그래도 K는 다시 물어봤다.  


K | 극장사업이 어려운 이유가 뭐예요?


A | 연말에 다음 연도 경영목표를 짜는 걸 보면 이게 뭔가 싶어요. 일반 제조업은 생산량 정하고 그에 따라 마케팅 비용이 얼마고 이런 게 쭉 나오는데, 극장은 생산량을 아무도 몰라요. 극장이 콘텐츠를 컨트롤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영화들이 언제 나온다는 걸 안다고 쳐도 관객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무도 모르죠. 그래서 항상 투자가 조심스럽죠. 어려우니까 극장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언제든 망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어야 해요. 그러다보니 더더욱 일정량의 수익을 요구할 수밖에 없죠. 광고로 수익이 난다고 하지만 그 수익을 남기기 위해서 다른 부분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 밖에서는 모를 수밖에 없어요. 


K | 한 사이트를 운영할 때 들어가는 비용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A | 일단 인건비가 제일 크죠. 그다음이 메인터너스 비용이고. 장비와 시설을 유지·보수하는 비용이에요. 보통 하나의 장비에서 손익을 뽑으려면 적게는 10년에서 많게는 20년이 걸려요. 하지만 그사이에 장비들은 새로 나오고, 또 그런 걸 쫓아가지 않으면 경쟁이 안되죠. 그런데 한해를 통틀어 객석점유율은 25% 정도밖에 안돼요. 성수기 며칠에 반짝 하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투자를 하는 건데, 확실한 건 없죠. <아바타> 때 3D 장비가 늘어났잖아요. 그 당시 3D를 많이 들여놓은 극장은 관객을 다 쓸어갔을 거예요. 하지만 그다음에 흥행했던 3D영화가 몇편이나 됐나요? 어려울 줄 알고 투자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K | 그런데도 체인은 더 늘어나잖아요. 그렇게 힘든데 왜 늘리나요?


A | 그런 말들이 많은데, 상당히 1차원적이에요. 옛날에는 중심가에만 극장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에요. 멀티플렉스 시대가 되면서 상권을 쫓아갈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됐어요. 그런데 이 상권의 이동속도가 점점 빨라져요. 아파트 개발 속도랑 비슷하지 않을까? 평균 5년 정도? 한 상권이 피크를 치는 게 5년 정도예요. 그러면 5년 뒤에 극장 문 닫고 다른 곳에 가서 극장을 세우면 되느냐? 그게 안되죠. 극장 설립에 관한 의사결정은 보통 그 건물이 들어서기 3, 4년 전에 해요.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인데, 투자를 하느냐 마느냐 고민해야 해요. 극장은 시설을 개조하는 게 아니라 건물이 들어설 때부터 빌트인으로 설계가 되는 거니까. 이때 보통 임대계약을 15년 정도 하거든요? 흔히 극장이 초기투자비용의 손익을 맞추는 평균기간을 7년으로 잡아요. 그래서 극장을 만들었는데, 잘돼서 5년이 지나고 나면? 문을 닫고 싶어도 이미 임대계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안되는 거죠. 전체 수익을 위해서는 또 다른 상권을 찾아서 또 만들 수밖에 없어요. 멀티플렉스는 그렇게 투자를 해야만 굴러갈 수 있는 구조에 있어요. 적자가 나면? 그래서 투자할 돈이 없으면? 그냥 사라져야죠.


K | 결국 극장광고는 멀티플렉스가 버틸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인가요?


A | 꼭 극장광고라고 말할 수는 없겠죠. 사업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극장광고뿐만 아니라 극장 전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거니까. 현상유지를 하려고 회사도 다니고 나머지 시간에 아르바이트 3개 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면 극장광고는 아르바이트 중 하나로 보면 돼요. 그런데 아르바이트 하나를 하지 말라고 해보세요. 나갈 돈은 많은데, 들어오는 돈이 조금이면 파산이죠. 깔끔해요. 극장이 파산하면 관객이 얻을 건 뭔가요? 극장이 없으면 돈 나올 데가 없으니까, 투자사도 없는 거고 영화 만들 돈이 없으니 제작사도 없는 거죠. 안 그런 산업이 없지만 영화계는 서로 너무 깊게 맞물려 있어요.


마지막 탐문. 멀티플렉스는 모두 불나방이다?


K가 “극장광고 시간은 왜 하필 10분인가”라고 묻자 멀티플렉스는 “우리는 모두 불나방”이라고 답했다. 관객과 제작자, 감독들이 멀티플렉스에게 느끼는 여러 불만들, 그러니까 극장광고뿐만 아니라 교차상영을 한다거나, 흥행이 저조한 작품은 아침 시간으로 내몬다거나, 적정한 상영횟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문제들에 대해 지적하면 결국 멀티플렉스는 “우리는 불나방”이라고 답할 것이다. 누가 그러라고 했나? 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멀티플렉스가 불나방이 된 덕분에 생겨난 장점들에 말문이 막혔다. 그럼에도 K는 진짜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극장광고를 안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그러자 A는 “현재로서는 문화를 바꾸는 일”이라고 말했다. 


“극장 관람료를 올리면 어떻게 될까요? 한해 총관객 수가 1억5천명 정도라면 그중에서 1억명이 반발할 거예요. 아니면 상영시간 전에 관객을 모으기 위해 외국처럼 선착순 입장제를 한다? 그것도 불가능하죠. 관객에게 혼선을 주면서 그 혼선에도 얻을 게 있다는 계산이 나와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나오는 게 없어요. 지금까지 만들어진 문화 안에서 효율성을 찾을 수밖에 없죠. 가격이든 입장제도든 룰을 건드리는 문제인 이상 현실성이 없다고 봐야 해요.” 


이 또한 ‘멀티플렉스는 힘들기 때문에 극장광고를 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질문이 질문을 낳고, 하나의 원인이 또 다른 원인을 궁금케 했다. 극장과 관객의 관계에서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는 요원해 보였다.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양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을 것이다. K는 L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편집장한테 기획안을 괜히 냈어. 이건 정말 너무 피곤한 문제야. 너는 그냥 자주 싸는 게 더 속이 편할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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