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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한모험가 Sep 14. 2021

오래된 작은 마을, 윈난 白沙古镇

우울증에 걸린 호텔 관리인과의 만남


윈난성의 리장이라는 고성에 가보고 싶었다. 아주 예전에 갔다 최근 다시 그곳을 찾은 사람들의 여행기를 보니 본래의 모습을 많이 잃었다고들 했다. 그래도 오늘의 리장은 내 삶에서 마주한 가장 오래된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므로 주저 없이 비행기표를 샀다.


여행경로 : 上海 상하이 -> 昆明 쿤밍 -> 大理 다리 -> 丽江 리장 ->白沙古镇 바이샤 구전 -> 香格里拉 샹그리라 -> 昆明 쿤밍 -> 上海 상하이


조금 아쉬운 일이지만..

리장이 아름다운 고성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자 외지에서 들어온 상인들은 그곳 토박이들이 조금씩 밀어내고, 그들이 떠난 자리를 대신 차지한듯하다.  그러나 많은 젊은 이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아 상가를 열고 카페를 열고 클럽을 열어 리장은 밤에도 낮 만큼이나 빛이났다.


리장을 보기 위해 떠난 윈난 여행이었지만 정말 좋았던 곳은 리장이 아니라 다른 곳이었다.


샹그리라(香格里拉)와 바이샤 구전(白沙古镇)

우선 바이샤 구전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바이샤 구전은 리장 고성과 13-4km 정도 떨어져 있다. 리장 고성 숙소의 매니저 말로는 거기 가봤자 그다지 볼 것도 놀 곳도 없으니 당일치기로 둘러보고 오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하룻밤 자고 올 것이다. 아침 그곳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숙소를 예약했다.


어플속 숙소는 사진상으로 썩 괜찮아 보였다. 심지어 가격은 주변 시세 대비 상당히 저렴했다(143元).

찜찜한 것이 있다면, 이런 괜찮은 숙소에 후기가 하나 없다. 단하나조차도…

왜.. 어찌하여.. 인가?


음..

어쩐다..


그래도 하룻밤 정도는 찜찜한 마음은 잠시 접어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룻밤 머물러 보기로 결정!


버스가 바이샤 구전 앞 버스정류장에 덜커덩하고 투박하게 멈췄다.


해가 뜨겁다. 고덕 지도로 방향을 잡아 더듬더듬 방향을 잡아 걷다보니 숙소가 있다는 위치쯤이다. 두리번 두리번 같은자리를 맴돌고 있자니 동네 아저씨로 보이는 분이 어디 온 거냐고 묻는다.


"요오기..." 그가 핸드폰에 있는 숙소 이름이 볼수 있도록 핸드폰을 그의 눈앞에 바짝 가져다 대었다.


눈썹이 갈매기의 큰 날개짓 모양새로 그려지는 남자의 얼굴앞으로 손가락이 날아 들었다. 그 손가락이 가르킨 것은 바로 앞의 집이었다.


“이 집!”

“감사합니다”

이런 집을 바로 코 앞에 두고 헤매고 있었다니.

활짝 열려있는 대문 안쪽으로 나무로 만든 낮고 귀여운 울타리 문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색바랜 분홍 철선을 구부려 만든 고리를 빼내고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저기요! 사람 있어요?!”

조용한 마당.. 인기척이라고는 마당 귀퉁이에 목줄을 맨 백구의 기지개뿐이다.


잠시 기다리고 서있자니 건물 안쪽 어디선가 덩치 큰 중년 남자가 떨떠름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


“누구쇼?”

“방 예약을 했는데, 여기가 이 호텔이 맞나요?”

“맞긴 하는데, 난 예약내용을 들은 적이 없는데…. 어디서 예약했소?”

“씨트립요”

“… 우리는 그곳에서 예약받지 않아요. 당신은 여기 있을 수 없어요!”


이게 무슨 말똥에 밥 비비는 소리인가? 유령 호텔을 예약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주소를 잘못 찾았다는 것인가?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그에게 이곳이 내가 예약한 숙소가 아닌 게 맞는지 다시 물었다. 그는 참 성가시게도 군다는 듯한 표정으로 힐끗 한번 쳐다보더니 맞기는 한데 이곳은 그곳이 아니라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아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지..?

맞기는 한데 아니다라니….

맞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그럼 내가 예약한 이곳은 어디인지 아냐고 했더니 자신은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이곳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씨트립에 있는 바이샤 구전의 숙소중 하나를 예약한 것이다.


씨트립은 이미 아주 유명한 여행 관련 각종 교통편 및 숙소 관광지 입장권등을 예약할 수 있는 앱이다.

씨트립에 소개된 숙소를 예약하고 왔는데, 이름과 주소는 맞지만 씨트립에서 받은 예약은 자신은 모르는 일이니 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환불을 받아야 하나?! 환불을 어떻게 받냐고 물었다.(이날 바이샤 구전에서 자고 올 요량으로 취소 불가 숙소를 예약했었다.) 그 질문의 대답도 역시나 나는 모르쇠로 돌아왔다.


이런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자니 슬슬 인내심의 한계가 오는 것만 같다. 숨을 한 번 크게 고르고, 이곳이 씨트립 상의 호텔 이름과 주소가 맞음에도 이곳에 투숙할 수 없는 것이라면 씨트립상에서 이 숙소는 내려져야 하는 것이 맞고, 씨트립에 연락해서 내 예약을 취소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그랬다. 애시당초 그럴 생각이 있던 사람이라면 우리 대화가 배를 타고 산등성이까지 오지는 않았겠지..


그는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으로 나는 여기 사장이 아니니 그럴 책임이 없다라고 말했다.


OMG. 세상에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지?

잠시 동안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뇌를 풀가동하느라 두통이 오려고 했다. 오케이. 그럼 당신 사장은 어딨죠 하고 물으니 사장은 이곳에 없다고 한다. 아주 머-얼리 멀리 있단다.

그 말인 즉 ‘너는 알 필요도 없고 난 말해주지도 않을 거야’라는 것이 느껴졌다.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왔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난감했다. 여행 중에 발생하는 우연성을 나름대로 즐기는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상황을 즐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숙박이 안된다면 환불을 받아야 하고, 외국인 숙박이 가능하고 어느 정도 마음에 드는 숙소에서 자려면 이곳의 두배가 넘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이런 $£¥¥^+#

.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자.


우선 예약한 웹페이지를 살펴보았다. 내 예약 내역에 숙소 담당자에게 연결하는 핸드폰 번호가 하나 눈에 띈다. 번호연결!!! 이 남자의 핸드폰이 울리지 않는 것을 보니 그의 전화는 아닌 모양이다.


잠시 뒤 수화기 너머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 나는 씨트립으로 너의 숙소를 예약한 사람이다. 너의 숙소에 도착했는데 투숙할 수 없다고 한다. 어떻게 된 일이냐. 너무 황당하고 열이 받은 상태라 와다다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먼저 뱉어냈다.


수화기 너머의 여자가 내 말을 다 이해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남자를 바꿔달라고 했다. 곁눈질로 나를 보던 남자에게 핸드폰을 건네자 그는 살짝 당황한 듯했다. 수화기를 건네받은 그는 ”당신은 누구요?” 하고 수화기 너머로 대뜸 물었다. 그다음은 “알았다””알았다”는 말만 수 차례 하고 나서야 그는 전화를 끊었다.


약간은 체념한 표정의 그는 나에게 예약을 취소할 건지 물었다. 아니. 나는 취소할 생각이 없다. 나는! 여기에 묵겠어요!라고 답하자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갔다.


그가 다시 물었다. “하루.. 하루가 머무르게 맞소?”

나는 대답했다. "아니요. 하루가 아니라 이틀간 이곳에 머무를 겁니다!"


이곳에 머물겠다고 한 것이 그를 좀 많이 놀라게 한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몇 분 전에 우리는 마당에서 엄청나게 언성을 높여가며 말싸움을 벌였기 때문이다. 환불만 가능하다면 내가 당장 문을 걷어차고 나가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이곳이 좋았다. 넓은 마당과 단정하고 가지런한 기와, 세월이 어린 나무기둥, 마당 중앙의 아담한 정자. 이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았다. 비록 이 기분을 한껏 만끽하기도 전에 무척이나 황당하고 불쾌한 상황에 맞닿드려야 했지만..


하지만 가격조차도 이렇게 착한데 이 남자 때문에 이곳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나 역시 집주인이 환대하지 않는 집에는 머물고 싶지 않지만 그가 호텔의 주인도 아니고, 매니저의 접대 태도 때문에 숙소룰 바꾸기에는 여러보로 아쉬울 것 같았다.


남자는 외국인 주숙 등기를 위한 서류를 챙기고 난 후, 건물 이층 내가 머물 방으로 안내했다.

중국은 외국인이 투숙하면 외국인 주숙 등기를 해야 한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처리해야 할 서류는 간소화되었지만, 기재가 잘못되면 아주 피곤한 일이 발생한다고 했다.


그는 외국인인 나를 투숙조차 못하게 함으로써 발생하지 않을지도 모를 골칫거리를 제거하려 했던 것 같다. 그렇다 해도 현지 중국인 투숙자 역시도 한사람이 없었다. 후기가 하나도 없던 이유가 납득되던 순간이었다.


그렇다. 이 넓은 호텔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일하는 직원 한 사람(그)과 투숙 예정인 객 한 사람(나).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이곳에 대해 이것 저것 물어볼 유일한 사람은 그였고, 그러다 보니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


대화를 나누어 보니 처음 만났을  느꼈던 것처럼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우울증으로 의욕이 바닥을 치고 있는 중년의 남성이었다.


그는 이야기를 시작하면 삼십 분 한 시간.. 어떤 때는 두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받아만 준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사람 같았다.


 발로 찾아오는 손님도 거부하는 우울증 걸린  숙소 매니저는 실은 무척이나 외로웠던 모양이다. 잠시지만 그와 나눈 대화는 꽤나 인상적이었다.  다른 중국인의 시각이라고 해야 할까?! 언젠가 와 나눈 대화를 기록해볼까 한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나,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더 나누어 보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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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에게 한 질문들중 가장 기억에 남는것..

1) 당신은 여행을 왜 하는 것인가?

2) 민주주의가 정말 훌륭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나?


가방끈이 짧아 외국인 주숙등기하는것도 쉽지않다는 그의 말과는 달리  테이블 맞은 편에 나를 앉혀놓고 던진 질문들은 무척이나 철학적이었다.


나도 그의 질문을 당신에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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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은 나무 계단을 올라간 이층의 끝방이다. 이 집의 외형뿐만 아니라 이 구식 방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겨울날 따스한 해가 스미우는 창이있었고, 어느 시절엔가는 꽤나 고급스러웠을지도 모를 2인용 소파가 보였다. 소파 앞에는 낡고 작은 나무 테이블과 티비가 있다. 방에는 수납공간도 따로 작은 창고처럼 되어 있어서 짐가방이 있다면 안쪽에 놓아두어도 좋을 듯했다.


생각보다 더 괜찮다.

이제사 마음에 평온이 찾아드는 느낌이다. 침대에 털썩 몸을 뉘었다. 이불에서 빨래가 햇빛이 바짝 말랐을  나는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고개를 돌려 세팅된 침구를 보니 깨끗하고 보송보송했다.

우울증 걸린  남자는 비록 오는 손님은 최대한 막으려고 했으나 숙소 관리는 아주 훌륭하게 하고 있었던 듯하다. 기대 이상으로 괜찮은 방때문에 왠지 득템  느낌마저 들었다.  


짧은 순간 남자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 대고 싶던 짜증과 한대 후려치고 싶던 분노로 가득 찼던 마음이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고.. 관대해지고 있었다.


그래.. 이왕 여기 있기로 결정했으니, 체크아웃하는 순간까지  남자와의 사이가 최소한은 나빠지지 않도록 해야겠다.


아… 방에서는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설산에서 불어 내리는 겨울 바람소리와 이집 마당에서 저집 마당으로 날아드는 새들의 지저귐이 린다. ㄹㅇ ASMR .. 당신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이 소리들..



그렇게 들려오던 바람소리에 비해…

그날 밤의 방은 무척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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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시기 : 2021.01.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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