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으로
엄마.
살다 보니 내가 엄마가 되는 날이 오다니.
조리원에서 나온 후, 작디작은 생명체와 함께 집에 돌아와 고군분투를 시작했을 때, 난 정말 몰랐다.
엄마라는 직업이 이토록 난이도 상, 매뉴얼 없음, 24시간 풀타임인 줄은.
아이가 울 때마다 “어디가 불편한가?”, “배고파?”, “혹시 나랑 말이 안 통해서 그래?” 하며 눈치게임을 해야 했다. 너무 미안했고, 솔직히 말하면 내가 이렇게까지 모를 수 있나? 싶어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학교에서는 왜 이런 걸 안 가르쳐줬는지, 가정과 사회를 향한 억울함이 폭발 직전이었다.
결국 새벽마다 ‘육아 검색 마스터’가 되어 핸드폰과 책을 끌어안고 공부했다.
조금이라도 나은 인간, 아니, 정말로 나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좋은 엄마.
근데 도대체 어떤 엄마가 좋은 엄마일까?
나도 되고 싶었다. 아주 간절하게.
그땐 호르몬이 파도처럼 몰려오던 시기라, 툭하면 눈물이 났다.
아기를 키워본 사람들은 알 거다. 그 시절 거울은 피해야 할 공포의 물건이다.
거울 속 나는 방금이라도 혼자 소나기를 맞고 온 여자마냥 떡이 져 있었고, 눈 밑엔 다크서클이 광물처럼 내려앉아 있었으며, 얼굴엔 ‘색조’는커녕 ‘생기’조차 실종 상태. 이런 와중에 내가 우주고 세상인 아이 앞에서는 억지로라도 웃었다.
그 생활이 계속되자 내 안에 뭔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육아 괴물’.
이 괴물은 주로 남편 앞에 등장했고… 지금도 가끔 나타난다.
(미안하기도 하지만, 미안하지 않아. 여보.)
시간이 조금 흐르고, 아이가 자라면서 하루의 루틴이 생겼다.
그리고 그제야 숨 좀 쉬는 소리가 나왔다.
‘나’라는 이름은 사라졌지만, ‘누구 엄마’라는 이름이 익숙해졌고, 그 이름이 점점 자랑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때 “아, 나도 이제 좀 엄마답다.”라는 생각이 처음 들던 순간이었다.
엄마가 되고 나서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길거리의 아이들이 다 귀하게 보이고,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걸은 선배 엄마들에게 자동으로 허리를 숙이게 됐다.
나뭇잎 하나, 꽃잎 하나까지도 가장 예쁜 것들로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예쁨과 사랑만 받았겠구나.”
아이가 좀 더 자랐을 때, 나는 어린이집 대신 내 품을 선택했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같이 걷고, 같이 웃고, 같이 놀던 그 시간이 지금도 선명하다.
지금은 유치원에 다니고, 나에게는 하루에 딱 5시간의 ‘자유 시간’이 생겼다.
그 시간은 말 그대로 귀한 시간. 최대한 행복하게 보내고 나면, 다시 아이에게 돌아가 온 마음을 쏟는다.
지금도 나는 매일 고민한다.
나는 어떤 엄마일까? 좋은 엄마란 뭘까?
아직도 정답은 모르겠다.
그저, 이 세상의 수많은 엄마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으리라 믿으며,
이 글을 빌려 모든 엄마들에게 존경의 박수와 따뜻한 칭찬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