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되었다는 사실이 불현듯 나를 덮쳐온 이후 불안증세가 다시 심하게 나타났다. 엄마가 쓰러지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타났던 불안증세와 공황증상이었다.
한동안 괜찮아졌었는데 다시금 불안이 심해졌고 약을 먹어도 그때뿐이었다.
고립되었다는 것. 막연한 사회와의 단절을 의미한다기보다 나 자신이 정말 지워지는 무서움이었다.
회사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것. 당장 내가 내일 출근을 하지 않으면 나를 찾을 사람이 있다는 것.
이 사회(회사)로부터 임무를 부여받고 실행하고 그에 따른 보상이 지급되고 그렇게 한 명의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사라졌다.
당장 엄마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엄마의 혈압과 당을 재고 인슐린주사를 놓고 밥을 차리고 재활병원에 통원을 가고.. 그 단조로우면서도 바쁜 일상이 나를, 내 존재를 지워갔다.
그럴수록 불안해져 왔고 나쁜 생각만 머릿속에서 가득했다. 한시도 앉아있지 못하고 왔다 갔다 좁은 집 안을 뱅뱅 돌다가 이대로는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 살기 위해서.. 내가 여기 존재한다고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집에서 엄마를 보고 있는 내가 여기에 있다고, 보이진 않지만 여기서 살아가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미 우울증과 불안증 약은 복용 중이었기에 심리상담을 하기로 했다.
정부지원 사업을 알아보고 진단서를 제출한 후 집 근처 심리상담센터를 예약했다.
그리고 첫 상담.
그때의 나는 내 감정의 댐이 온갖 감정으로 넘쳐서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첫날 상담 한 후 저 댐 아래 누군가 작은 구멍을 하나 내준 것 같았다.
파도처럼 넘실 대던 댐에 구멍이 나서 쫄쫄쫄 감정의 찌꺼기들이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물론 그 구멍은 너무 작아서 당장 넘실대던 물들이 전부 빠지진 못하지만 그래도 시원함은 있었다.
상담사선생님의 너무 뻔하지만 위로되는 말
"힘드셨겠어요"
그 한마디에 눈물이 쏟아지고 감정이 동요될 정도로 나는 참고 있었구나.. 엄마를 돌보면서 나는 그대로 방치 중이었구나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살기 위해 심리 상담을 계속 진행했다.
불안을 낮출 수 있는 행동적인 솔루션도 제시받았기에 그대로 실행해보기도 했고 상담하면서 눈물 한바탕 쏟고 나오기도 했다.
팽팽하게 끊어지기 전까지 잡아당기던 고무줄을 놔버린 것처럼 마음의 긴장도가 풀려갔다.
그리고 여기에 내가 있다고 내가 이렇게 고생하고 있다고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 지워져 가던 내 존재를 붙들 수 있는 것 같았다.
상담은 꽤나 만족스러웠고 살기 위해 선택했던 상담이 적어도 내가 최악의 선택을 하진 않도록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