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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칠 Oct 28. 2022

왜 이렇게 입을 게 없지


무채색의 어두운 옷을 자주 입었다. (무심코 ’즐겨’라고 썼다가 수정했다. 엄연히 말해 즐기진 않았으니까.) 피부가 까만 편이라서 조금만 밝은 옷을 걸쳐도 그것이 지나치게 도드라지는 듯해 신경쓰였다. 물론 빨가벗고 다니지 않는 이상 옷을 이유로 누군가가 나를 주목할 일은 없을 테다. 특출나게 잘 입지도 못 입지도 않으니까. 그치만 집을 나서기 전에 마주치는 전신거울 속 나 자신이 보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다닐 수는 없었다.


아무렇게나 다닐 수는 없었다. 이제는 같은 이유로 무채색의 어두운 옷을 피한다. 눈에 띄는 핑크색 양말, 독특한 드로잉이 디테일로 들어간 신발, 진한 초록색 반바지, 쨍한 주황색 티셔츠, 파스텔톤의 다양한 색이 뒤섞인 반팔 셔츠. 지난 여름에 산 것들이다. 하나같이 밝고 알록달록하다. ‘남들은 클래식으로 넘어가는 삼십 대에 이제서야?’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래도 이정도 컬러 플레이는 괜찮지 않나. 차림새라도 생기가 돌아야지.


점심으로 짬뽕을 먹었다. 앞치마를 걷어 회사 동료들에게 상의를 내보이며 물었다.


“저 셔츠 샀는데 어때요?”

“예쁘네요.”

“귀엽지 않나요?”

“귀엽네요.”


‘귀엽다'는 ‘예쁘다'보다 레어한 느낌을 준다. 옷에 관해선 ‘예쁘다'라는 표현의 용례가 매우 넓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엽다'는 ‘멋지다'보다 덜 부담스럽다. ‘멋지다'는 어딘가 좀 본격적이다. ‘귀엽다’는 패션에 있어 절제된 자랑의 표현이다. 어쨌거나 무채색-맨에서 알록달록-맨으로의 변신이라는,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작은 변화를 은근히 알리고 싶었다. 사무실에서 양치를 하는데 셔츠에 튄 짬뽕 국물이 보였다. 마음이 약간 쓰렸다.


데일리룩 코디는 새로운 재미다. 나만 아는 재미고 나만 아는 변화지만 아무렴 어때. 내가 이런 재미를 느끼게 됐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자연스레 스티브 잡스와 마크 주커버그가 떠오른다. 매일 같은 옷만 입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들. 그들은 옷을 쇼핑하고 고르는 데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는 것은 물론 일종의 브랜딩 효과까지 누렸다. #데일리룩 피드를 따라 무한대로 전시되는 각양각색의 코디들이 무색하다. 그러나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그들만큼 성공하고 싶진 않다. 그냥 오늘 뭐 입지? 궁리하는 걸로 충분히 즐거운 인생이다.


과감한 컬러 플레이를 이어가는 와중 결국 선을 넘고 말았다. 회사의 상징색과 똑같은 색의 티셔츠를 입고 출근해버린 것이다. 당연히 의도와 무관했다. 인지하고 있었다면 굳이 입었을까? 아마 들었다가도 내려놨을 것이다. 아니, 구입조차 하지 않았을 테다. 놀림감이 될 걸 알면서도 빼지 않고 담대하면서 굳고 의연하게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니까. 회사에 도착해 자리로 가는 길에 동료들의 웃음소리를 듣고서야 알았다. 그들은 내게 물었다. “그런 애사심은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 거예요? 깔깔깔!”


애사심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개인의 부귀와 영달이 아닌 순수한 애정. 회사 입장에서는 더없이 큰 행운이다. 나는 회사가 성공할 가능성은 애사심을 가진 직원이 얼마나 많은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확신한다. 집단에 충성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시대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이렇게 말하는 게 조금 조심스럽지만 그들은 회사를 박차고 나가는 이유조차 그 회사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결국 ‘내 것’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허무함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일할 거면 차라리 내 사업을 하겠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딱 하루치의 의욕을 갖고 매일 아침 집을 나설 수 있는 것 같다. 업무를 하나씩 부러뜨릴 때마다 보너스 같은 성취감과 약간의 재미까지 누린다. 그건 꽤나 중독적인데, 심지어 가끔 ‘내가 이 회사에 애정을 갖고 있긴 하구나’ 생각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어쨌거나 호감을 들키는 건 부끄러운 일이고, 그것으로 놀림 받는 것보다 수치스러운 일은 또 없으므로 이 티셔츠는 휴일에만 입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평일은 지루하게 반복되지만 동료들의 옷차림은 매번 달라진다. 그것을 구경하는 게 재미있다. 퇴근 뒤 약속이 있는 날과 없는 날이 한눈에 보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늘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듯 평균치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 어제의 옷차림과 오늘의 옷차림과 내일의 옷차림이 일정한 맥락을 공유하는 사람도 있지만, 스타일이라는 게 있는지 도무지 예측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다. 온몸에 회사 상징색을 두르고 온 분을 보며 그 담대함에 속으로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물론 ‘깔깔깔’하는 웃음은 덤이다.


신경 쓴 티가 조금이라도 난다면 ‘귀엽다’, ‘예쁘다’, ‘멋지다’라며 후하게 칭찬하려고 노력한다. 하루를 순조롭게 나는 데 그런 말 한 마디가 꽤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힘주고 싶었던 문장을 콕 집어 감탄해주면 글쓰기가 즐거워지듯이, 힘주고 싶었던 아이템에 눈길을 보내오면 손을 씻다가도 괜스레 거울에 한번 더 비춰보게 되는 것이다. 상대의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그가 내보이고 싶었던 무언가를 센스있게 툭 건드려 주는 법을 데일리룩을 관찰하며 배우고 있다.


옷을 핑계 삼아 동료들을 궁금해 한다. 옷차림이 만들어 낸 이미지가 있고, 그 이미지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속내가 있기 때문이다. 주말에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라오는 동료들의 옷차림은 평일에 내가 보던 그들의 옷차림과 다른데, 어쩐지 학창시절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갈 때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은 친구의 모습에 낯섦을 느꼈던 순간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 낯섦의 정도가 우리 사이의 거리겠지. 그러고 보니 궁금해지는 것이다. 저들도 주말에는 회사 상징색을 스스럼없이 입을까?






야망백수

몇 년 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옷은 입을만큼 입었다!’ 공과금도 내야하고 연말정산도 해야하는 복잡한 인생, 옷 입는 것 까지 신경쓰는 건 무리다 싶었죠.


뭔가를 고민하고 결정하는 데 소요되는 의지력은 한정된 자원이라고 합니다. 제가 무지 티셔츠 10장, 청바지 반바지 각 두벌, 크록스 한 컬레로 1년을 보내는 건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인 셈이죠.  아직까지 사회 언저리에 붙어서 벌어먹고 사는 걸 보니 저의 리소스 분배 전략은 어느정도 유효했던 것 같습니다. 옷까지 고민했다면 아마 저는 진즉에 나가떨어졌겠지요. 회사도 제 간소한 복장이 생산성을 위한 노력이란 걸 알아줘야할텐데요.


흠. 그나저나 출근룩을 고르면서 포인트까지 고민하시다니, 아매오님은 30대에도 혈기왕성하시군요. 부럽습니다. 나중에 만나면 그날 아매오님의 착장 유심히 보고 평 남기겠습니다. “귀여워”



파주

음… 그러고 보니 출근할 때 옷에 신경 쓴 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네요. 평일 아침마다 간신히 침대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고 부쩍 얇아진 모발에 주의를 기울이며 머리를 말리고, 그러던 중에 흥미가 솟는 유튜브 영상에 잠시 시간을 뺏기고… 출근을 준비하며 어영부영 하다 보면 옷은 그냥 눈에 보이는 거, 무난한 거를 걸치고 후다닥 나가는 경우가 많은 거 같습니다. 이게 다 일상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저의 모자란 체력과 정신력 때문이겠죠…? 아매오님처럼 새로 산 셔츠를 두고 ‘귀엽다’고 말해주는 동료가 있었다면 혹시 모를 일이지만요.



마감도비

직장 동료가 무슨 옷을 입고 출근했는지 궁금해 할 수 있다는 게 참 부럽습니다. 출근룩은 사내 문화의 바로미터라고 생각해요. 타인의 개성을 존중한다는 점에서요.


주위 얘기를 들어보면 출근룩이 완전히 자유로운 곳이 있는가 하면 정장을 차려 입어야 하는 곳도 있더라구요. 현재 제 상황은 (상대적이겠지만) 중간보다는 조금 더 딱딱한 분위기에요. 가이드라인은 ‘목 늘어진 티셔츠만 입고 오지 마라’지만 구성원들이 대개 캐주얼 정장을 챙겨 입습니다. 미팅이 많은 업무 특성도 있겠지만 뭣보다 회사가 고령화된 게……. 때문에 제 옷장에는 출근할 때 입지 못하는 옷들이 한 가득입니다.


제가 회사에서 들어본 복장에 관한 말은 “오늘 다른 회사 면접 보러 가니?”와 “마감도비야, 오늘따라 좀 늙수그레해 보인다(무탠다드 유아인 셋업 입고 간 날)”가 전부입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후자는 좀 논리적인 평가였을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요즘 제 고민은 회사에 샌들을 신고 가도 될까 인데요. 조만간 소소한 반항을 해볼까 합니다. 때로는 사내 문화를 뚫고 가는 사람도 필요한 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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