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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쁨 Jul 15. 2022

No big deal

'난임'에 집중하지말고, 현생에 집중하기

작년 말과 올해 초에 거쳐 두번의 인공수정을 실패로 끝낸 우리 부부는 원장님의 권유로 시험관을 도전하게 되었다. 큰 감흥은 없었다.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우울에 빠질만한 이유는 충분했다. 

정부에서 난임부부에게 지원을 해준다고 해도, 우리는 예외였다. 평범한 맞벌이 부부라고 생각되었던 우리는 나라의 지원대상에서 벗어났기에 모든 비용을 우리가 부담해야 했다. 간절함 앞에서 돈이 무슨 대수랴,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행복의 척도에서 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지독한 현실주의자에게는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예측할 수 없는 수준의 비용지출 뿐 아니라, 온갖 호르몬 주사제와 약들을 시간에 맞춰 투여하는 일도 당연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특히나 회사를 다니는 직장 여성들이 시간에 맞춰 질정제를 화장실에서 투여하고, 약을 아침 저녁으로 챙겨먹고, 밤에는 빨리 퇴근해서 정해진 시간에 주사를 맞는 루틴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일. 제 아무리 다정한 나의 남편도 늘 나를 안쓰러워하고 한편으론 미안해했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여자의 몫이었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누구나 금방 활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우울이 대수랴. 젊고 예쁘게 가꿔온 나의 몸에 배꼽 주변으로 파란 멍이 가득한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불현듯 짜증이 나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리라. 하지만 나는 그럴수록 현실적으로 생각하기로 결단했다. 갑작스레 맞이한 시험관 부부로써의 이중생활을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내 앞에 펼쳐지는 대로, 시간이 흘러가는대로 해보기로 했다. 시험관 준비를 하는 여자로써의 일상에 집중하지 않고 그냥 알람이 울리면 약을 먹고, 질정을 투여하고, 주사를 맞되 업무에 바빠서 조금 늦으면 약을 1~2시간 늦게 먹기도 했다. 그리고 이식을 하기 전날까지 필라테스를 열심히 다녔다. 채취 후 몸의 변화가 어떨지 맘카페를 뒤적거리기 보단, 필라테스에 가서 50분 운동을 더 강도있게 하며 땀 흘리는 것. 그렇게 살아보기로 했다.







No big deal. 별 일 아냐. 이 여정을 통해 맞이하는 끝이 기쁨이건, 슬픔이건 그런 것을 지금 생각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병원에서 오라는 날 가고, 하라는 대로 하되, 내 현생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많은 직장여성이 난임 극복과정에서 필수적인 잦은 병원 방문일정 때문에 1차적으로 힘들어 하게 되는 데 비해, 나의 직장은 병원과 집의 가운데에 위치해 있기도 하고, 또 재택근무가 잦았기 때문에 슬쩍 병원에 다녀오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아 매번 휴가를 사용하지 않고 다녀올 수 있었다는 점은 남들과 다른 점일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병원 진료실 앞에서 노트북을 켜고 전화를 받는 등의 낯선 이중생활을 경험하며 고군분투한 것도 사실이다. 


자칫 잘못하면 우울함의 늪에 빠질 수 있는 이 시험관의 여정에서 오히려 직장생활을 유지함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생각할 시간이 없게 몸을 바삐 움직여야 함도 그렇고, 또 '임신해야하는 여성'이 아닌 '직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팀원'으로써의 나의 정체성이 또 자존감을 높여주는데 한 몫을 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팀 선배와 점심을 먹으러 나가서 대화를 나누다가 선배가 그런 말을 했다. 

"매니저님은 대단한거야. 이 일 그렇게 매니저님처럼 몇년 안배우고 이 정도로 하는 사람 나 거의 못봤어. 매니저님이 좀 똑똑한 것 같애."

내가 시험관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이 남자 선배의 말은 그 날의 나를 활력이 넘치게 만들었다. '아, 아이를 쉽게 갖지 못하는 실패한 여성이라는 생각에 나를 가둘 것이 아니구나. 나는 이 곳에서는 또 이렇게 필요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나를 제법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만들었다. 이것은 남편의 위로, 양가 부모님의 격려보다 더 큰 refresh 였다. 


물론 직장생활이 어떻게 아름답기만 할까. 나도 경제적 자유와 독립을 이루고 회사를 당장 때려치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난임의 늪에 빠진 우리에게는 도움이 되는 쪽이 더 많다. 우리에게 난임부부로써의 정체성만 부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내 문제가 어려울 수록, 문제에 집중하지 않고 문제를 제외한 현생에 집중하는 것. 이번에 알게된 이 지혜를 통해 앞으로 살면서 만나게 될 다양한 크고 작은 고통을 마주할 작은 솔루션을 하나 알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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