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나는 호구였다!
직원이 태도가 불량하지만 않다면 일을 게으르게 하는게 보여도 그냥 묵인했다. 근거없이 일이 많다고 주장해도 일정을 원하는대로 조정해주었다. 기다려주고 맞춰주는 것이 배려라고 착각했다. 어느 날 그가 '나는 이 회사 입사 후 성장한 적이 없다'라는 말했고, 나는 그 날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충격을 받았다. 그리곤 내가 푸시를 하고 리드하기 시작하자 곧바로 퇴사해버렸다. 나는 그저 월급 잘 주는 호구 대표였다.
한번은 헤드헌터를 통해 병원에 입사한 적이 있다. 그는 나를 채용을 하면서 연봉은 적게 하고, 대신 병원의 지분을 주겠다고 했다. 헤드헌팅으로 계약이 되면 연봉의 9%를 수수료로 줘야 하니 우리에게 득이 안되는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자는 명분이었다. 의료인이 아니면 병원은 지분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불법이다. 연봉대신 지분제로 바꾼것도 수수료를 줄이겠다는 얄팍한 속셈인데, 그 거짓된 제안을 모두 수긍했다. 몇 달 간 나는 지분소유자(?)인 나를 증명하기 위해 일을 해댔고, 그는 만족스러워했다. 하지만 얼마 후 의사와 사무장이 병원 소유권 문제로 민사소송을 하며, 진흙탕 싸움이 커져갔다. 어쩔 수 없이 퇴사하게 됬지만 지분에 대한 댓가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 때 나는 지분이라는 유혹에 호구잡혀 열정페이하는 직원이었다.
애덤 그랜트 교수는 사람은 기버Giver, 테이커Taker 그리고 매처 Matcher로 3가지로 분류된다고 했다. 기버는 퍼주는 사람, 테이커는 빼앗는 사람, 매처는 기브앤테이크를 하는 사람이다. 기버와 테이커가 각각 10%를 차지하지만, 나머지 매처가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상위 10%부자들은 모두 기버에 속한다. 반면 하위 10%의 가난한 사람들도 기버에 속한다고 한다. 똑같은 기버인데 왜 누구는 상위 10% 누구는 하위 10%가 되는 걸까. 여기서 나는 호구와 호인의 차이를 본다. 기버할 대상자를 구분해내지 않고, 그저 주기만 하면 호구가 된다. 받은 만큼만 갚은 매처나 받기만 하는 테이커를 걸러내야 한다. 걸러내고 주어야 진짜 기버이다.
자기가 커피를 살때는 아메리카노를 마셔도, 남이 산다면 블론드 바닐라 더블 샷 마키아또 프라푸치노를 마시는 사람이 있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람이 있었다. 앞 뒤없이 무리하게 도와줘 놓고는 생색을 내거나 몰라준다고 상처받는 사람이 있었다. 이익이 있을때는 선행을 베풀다가 없겠다 싶으면 돌변하는 사람이 있었다. 부페를 가면 무리하게 음식을 많이 담고, 많이 남겼던 사람이 스쳐간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주었 것들은 베푼 것이 아니라 그저 멍청하게 빼앗긴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절대 뺏기지 않는 삶을 살겠다는 건 아니다. 상위 10%에 있는 사람으로 가기 위해 아낌없는 기버의 삶을 살 것이다. 비슷한 평균 수준이 아니라 더 뛰어넘게 베풀고 싶다. 지금보다 더 기다리고(시간 기버), 밥을 사고(돈 기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관심을 두고(마음 기버) 기꺼이 나의 것을 내어놓겠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주는 기버가 되진 않겠다. 더 냉정하게 관찰하고, 시간을 내어 구분해 낼 것이다. 뒷통수 치는 사건들로 인해 체득한 본능적으로 사람 냄새를 구분하는 감각으로 말이다. 그래도 상대가 받기만 하려고 할 때, 분명히 자신의 이익만 보는 사람임이 느껴져도, 나는 매처처럼 행동하지 않고, 몇 번의 기회를, 더 너그럽게, 조금만 더 기다릴 것 같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