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덩이 May 15. 2023

워라밸이 괴로운 직장인

'회사 일을 열심히 해야한다는 가스라이팅'이란 가스라이팅에 당하지 말자

작년에 이직한 직장에서 내가 겪고 있는, 남들은 공감이 어려울 수도 있는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현재 내가 다니는 직장은 소위 말하는 '워라밸'이 최상인 직장이다.

일 자체가 많지도 않고, 일 처리를 위해 엄청나게 높은 수준의 능력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물론 객관적인 업무 난이도가 낮은 것보다 이전 직장에서 내가 빡세게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 경험 덕분에 현재 업무가 쉽게 느껴지는 면도 없지는 않다.


또한 나를 평가하는 팀장님, 실장님은 인성이 정말 좋은 분들이라 실수를 해도 부정적 피드백은 잘 주지 않고,

항상 격려하고 이해하는 태도로 팀원들을 대하신다.

이러한 분위기이기 때문에 경쟁적인 분위기 없이 팀원들끼리도 사이가 너무 좋고..

참 여러모로 좋은 조직이다.


많은 업무량과 높은 수준의 업무 능력을 요구하였던 이전 직장에서 이직해온 나로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처음 3개월은 좋았던 것 같다.

반드시 경쟁적이고 치열한 분위기가 아니라도 크게 문제없이 잘 흘러가는 회사를 보면서 지금까지 치열했던 나의 이전 회사 생활에 대한 약간의 현타도 왔던 것 같다.


심지어 이전 직장보다 조건도 더 좋았기 때문에 복이라고 생각하면서

회사 다니면서 미술도 배우고,

독서랑 글쓰기랑 영어도 더 열심히 하면서 나를 위한 생활에 더 집중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약 10개월정도 지난 지금, 여유로운 나는 여유가 없던 이전보다 더 행복하지가 않다.




여유로운 회사 분위기 덕분에 가족들과도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여행도 자주가고, 독서와 글쓰기 등 더 많은 여가 시간을 즐길 수 있었지만

언제나 마음 한켠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감정이 들었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고,

실제로 객관적으로 나의 상황에서 나쁜 점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묘한 우울감과 공허감을 애써 부정했던 것 같다.

사실 이러한 감정의 원인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가 안갔던 것 같다.


그러다 최근 3년간의 치열한 수험생활을 끝낸 친구의 합격 소식을 듣고

내가 느낀 감정에서 내가 왜 행복하지 않았는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나는 나의 30대를 생산적인 활동에 바치면서 치열하게 살고 있지 않는 것이 두렵고, 행복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의 과거를 돌아보았을 때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언제인지 돌아보면

내가 치열하게 노력하여 나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냈던 순간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적당하게 일하며 여가 생활을 즐기는 삶에서는 앞으로는 이러한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경험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사실이 나를 답답하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생각이 들다가도 "회사에서 치열하게 일해야 한다"는 '월급노예'를 만들기 위한 사회의 가스라이팅에 내가 당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실제로 최근 미디어에서 "회사에서 일을 열심히 해서 자아실현하자!"라는 메시지보다는

"회사에서 일을 열심히 하라는 사회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서 자기계발을 통해 자아실현하자!"라는 메시지가 주류로 보인다.


친구들을 만났을 때에도 "일이 너무 편해서 힘들어"라는 사람은 없고(이렇게 얘기했다가는 배때지가 불렀다고 욕만 먹을거다.), "일이 너무 많아서 너무 괴롭다"는 얘기가 많다.


나 또한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 "아냐, 워라밸이 최고지~"라고 자위를 해왔던 것 같지만,

이러한 자기기만의 결과 우울감과 공허감이 쌓여왔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연하게 읽은 칙센트 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통해

내가 지금 우울하고 공허한 이유는 "몰입의 대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칙센트 미하이는 삶의 질을 가장 높일 수 있는 것은 "몰입 상태"이고,

심리학적 실험, 일의 역사 등 다양한 근거를 통해 "사람들은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일을 더 좋아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일에 몰입할 수 있게되면 워라밸이 필요없고, 삶 자체가 일이되고 일 자체가 삶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몰입 상태는 개인의 능력이 높고 + 업무 난이도가 높다는 조건이 충족된 상태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쉽게 경험하기 어렵다.

고용주인 회사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역량 수준이 어느정도이고, 그것을 개발하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적정한 업무 난이도의 회사 업무를 하면서 몰입을 경험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고 말한다.

나의 경우에도 현재의 낮은 업무 난이도가 내가 업무에 몰입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역사적으로 일을 천시해온 의식이 일을 몰입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내 스스로 "일을 열심히 해야해"라고 가스라이팅 당한줄 알았는데,

"회사 일을 열심히 해야한다고 말하는 것은 가스라이팅이야"라는 말에 가스라이팅 당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나의 번뇌 또한 결국 내 스스로에 대한 성찰 및 세상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부족해서 나왔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칙센트 미하이는 회사에서 몰입을 경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여가에서 몰입을 경험할 것을 추천한다.

하지만 여가 또한 '수동적 여가'로는 절대로 몰입을 경험할 수 없고,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적극적 여가'로만 몰입을 경험할 수 있는데, 몰입의 상태는 능력치가 높아진 경우에만 경험이 가능하기 때문에 (심지어 돈도 되지 않는) 여가에 몰입을 경험하기 위해 많은 노력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현대사회 직장인들은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자아실현을 하지 못하는 '월급노예'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직장인이라도 운이 좋게 업무 난이도와 본인의 능력이 일치하여 업무를 하면서 몰입을 경험하고,

본인 스스로도 일에서 느끼는 몰입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직장인도 충분히 그 누구보다 회사를 다니면서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도 이전 직장이 사람이 맞지 않아 힘들었지만,

높은 과제 난이도와 그걸 정면으로 도전하여 이루어낸 경험은 돌아보면 나에게 뿌듯하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또한 일에서 몰입을 유지하지 않고, 취미 활동 등을 통해 몰입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

내가 아는 지인도 직장을 다니면서 무용을 배우면서 많은 노력을 들였고,

이제는 공연도 하는 단계까지 도달하여 이 분야에서 몰입을 경험하며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고 있다.



세상엔 역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행복한지에 대한 정해진 답이 없다.

다만, 일이든 취미이든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은

단순하게 맛있는 것을 먹거나 누워서 TV를 보는 휴식이 주는 즐거움과는 삶의 질을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높여준다는 것은 사실이다.


나도 당분간 내가 무엇에 몰입할 수 있을지를 더 탐색해보고 고민해볼 예정이다.



작가의 이전글 외모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