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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정훈 Sep 02. 2021

퍼스트맨 - 꿈꾸다. 견디다.

전작에서 그러셨던 것처럼, 감독님께서는 음악을 매우 유려하게 사용할 줄 안다. 이 영화에서도 음악의 힘은 놀랍다. 최근 2년간 본 영화에서 음악의 힘이 엄청났던 영화를 꼽자면 베이비 드라이버 혹은 덩케르크쪽인데, 이 영화는 덩케르크의 느낌에 더 가깝다. 시종일관 음악으로 우리의 혼을 빼놓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밀당으로 그리고 마지막에 터트리는 장대함으로, 우리를 납득시킨다. 훌륭하다. 


생각해보면 이 영화에 라이언 고슬링처럼 잘 어울리는 배우가 또 있었을까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라라랜드의 성공에 힘입어 감독과 배우가 다시 뭉쳤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틀렸다. 라이언 고슬링의 눈빛, 그 특유의 무기력함과 슬픔이 담겨 있는 그 눈빛을 보게 되면, 이 영화에는 그 이상의 캐스팅은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그는 심지어 연기를 잘하는 배우다. 여주인공인 클레어 포이의 눈빛도 그렇다. 이 영화 내내 우리를 압도한다. 그 눈빛과 연기를 보자면, 짊어지기 힘든 짐을 짊어진 남편의 아내는 어떻게 견뎌내는지 생생하게 느껴진다. 드라마(더 크라운)에서는 영국여왕으로 나오셔서, 영국식 억양을 하시는 모습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영화에선 완벽하게 미국식 영어를 구사하신다. 노력이 느껴진다. 훌륭하다.


이토록 이 영화는 훌륭하다. 감독의 역량도, 배우들의 연기도, 음악도, 심지어 제작은 스티븐 스필버그다. 과학적인 완성도나 화면 구성의 성취도도 이루 말할 수 없겠지. 이 영화는 훌륭하다. 


근데 왜일까. 이 훌륭한 영화를 보면서 왜 가슴 속이 답답하고 아렸을까. 왜일까. 



이 영화는 꿈을 꾸고 해내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꿈을 꾸고 그 꿈을 견디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마와 싸우던 딸을 잃어도, 닐은 견딘다. 우주개발의 꿈을 함께 꾸던 동료가 죽어도, 닐은 견뎌낸다. 이제서야 마음을 털어놓은 친구가 불에 타죽은 순간에도, 그리고 그 불에 탄 로켓과 똑같이 생긴 로켓에 자신이 탑승하는 순간에도, 닐은 견뎌냈다. 견뎌낸 닐에게 달착륙은 보상이 아니었다. 그저 목표를 항상 바라보고 견뎌낸 자가 그 목표를 완수해낸 것 뿐이었다. 버즈 올드린과 다르게, 달착륙이후 은둔해버린 닐의 마음은 그런 것이었을테다. 꿈을 이루는 것이 '행복'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닐은 그렇게 본인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꿈을 이루든 이루지 못하든, 행복하거나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다르다는 것. 행복을 위해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 난 닐 암스트롱이 그런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견디기만 해내는 삶 속에선 어떤 것도 가져갈 수 없다. 결국 우린 행복하기 위해 견뎌내야 하고, 행복하기 위해서 꿈꿔야 한다. 인생의 소중한 명제들이, 그리고 그 것들에 대한 순서가 머릿 속에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딸의 유품을 크레이터로 던져버리며 묵직한 먹먹함을 던져주고, 지구로 귀환해 아내랑 마주하는 엔딩장면이 너무너무너무 좋았다. 인류는 위대한 도약을 했지만, 왜인지 난 가슴 한 구석이 아련했다. 좋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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