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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정훈 Oct 25. 2021

나무냄새.

내가 어렸을 적, 아버지는 목재소를 운영하셨다. 내가 10살 남짓할 때 목재소를 그만두셨으니, 내 유년기와 나무는 꽤나 밀접했던 것 같다. 집에서 대략 300~400미터 떨어진 곳에 아버지의 목재소가 있었는데, 어린 나이임에도 걸어서 가기 충분한 거리였다. 그시절을 떠올리면 그 목재소의 나무냄새가 늘 진하게 풍겨오는 느낌이 든다. 항상 목재소에 들어서면, 흙바닥같은 곳 위에 각목들이 두께별로 쌓여있었고, 뒤쪽에는 합판들이 벽에 주욱 기대어 세워져있었다. 나무들이 쌓여있는 사이사이 길을 지나면 아주 작은 사무실이 있었는데, 그 사무실은 오로지 나무로만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그 사무실의 벽의 질감, 합판이 쭈욱 이어져 붙어있던 그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리고 그 사무실 모서리 위쪽에는 작은 아날로그 TV가 한 대 놓여져 있었는데, 흑백 TV였다. 집에 있는 TV는 컬러였는데, 사무실에 있는 TV는 흑백이어서 그 사무실에 있는 시간은 어린 나에겐 꽤나 지루했었다. 그 흑백의 화면으로 토요일 낮에 하던 외화시리즈 '타잔'을 봤던 기억들이 난다. 하지만 그런 시기는 길지 않았고, 아버지의 목재소 사업은 이내 망했다. 망했던 이유는 나도 잘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 사업의 실패로 우리 가족은 꽤나 긴 시간동안 힘든 시기들을 겪었다. 그 힘든 시기를 지나는 와중에, 그 목재소에 대한 이야기와, 집 근처 목재소 자리를 지나가는 일은 왜인지 모르게 금기시되었다. 나야 아무 생각없던 어렸던 시절이라 상관없었지만,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그 공간은 꽤나 쓰린 기억으로 남으셨을테다. 그래서인지 나이를 먹고 한참 지난 뒤였음에도, 아버지에게 취미로 '목공'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가 핀잔을 들었다. 목공같은 것 배우지 말라고. 별로 쓸모도 없다고. 이런 저런 것들을 배우는걸 전혀 반대하거나 뭐라고 하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처음으로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셨던 취미활동이었다. 그게 얼추 6~7년전이니, 그 뒤로는 목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그냥 잊고 살았다. 굳이 취미를 하면서까지 아버지의 핀잔섞인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2017년에 결혼할 때, 와이프가 본인의 SNS에 결혼을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나를 설명하는 글을 올렸다. 다른 워딩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그 당시 날 소개하면서 호기심이 많고, '글을 쓰는 목수'가 꿈인 사람이라고 적었다. 그 소개를 보는 순간, 왜인지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실 목공의 'ㅁ'도 모르는 내가, 공공연하게 그런 비전을 와이프에게 말해왔었을 줄이야. 아버지의 부정적인 반응때문에 까먹은 줄 알았지만, 나는 아마도 내심 계속 목공이란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고, 미뤄오다가 이제서야 목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배우고 싶어서 간 것도 아니고, 와이프와 집에서 멀리까지 아기를 안고 산책을 나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목공방에 우연히 들어가서 우연히 수업을 신청했다. 아마 와이프가 옆에서 부추기지 않았다면 나는 그저 '와.. 나무냄새' 하면서 지나가고 말았을거다. 와이프가 손잡고 그 공방으로 날 끌고들어가줘서 고마웠다.


그렇게 목공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이제 고작 2번 나갔음에도, 아주 재밌다. 첫번째 시간에는 각목을 대패질하고, 칼금만 3시간동안 그렸다. 어제 있었던 두번째 시간에는 내가 그었던 칼금라인에 맞춰 톱질을 했다. 3시간 가까이 톱질만 했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빨리 갔다. 나무냄새가 나는 그 공간이 낯설면서도 친숙했고, 어릴 적 그 공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목공을 배우는 일은 상상했던 것보다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이상하게도 편안했다. 마주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분야를 배우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흥미롭고 재밌는 것들도 많았다. 


고작 2회차 배웠지만, 목공이라는 건, 재료가 되는 '나무'에 대해 굉장히 '예의바른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저 나무를 자른다고 생각하지만, 나무도 결에 따라서 자르는 것과 켜는 것이 다르다. 잘 자르고 잘 켜기 위해선 나무의 결을 잘 지켜봐야 한다. 쓸데없는 생채기가 나지 않게 끌을 매번 날카롭게 다듬어야 하고, 정확한 방향으로 일정하게 톱질을 해야 나무에 흉한 자국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톱질을 할 수 있다. 나무는 재료지만,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아서 계속 변형하고 뒤틀린다. 그런 것들을 방지하기 위해 재료의 양 끝에 부목을 대서 결합하기도 한다. 목공은 단순히 나무를 자르고 못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이해하고 예의바르게 나무를 대해주는 행위였다. 그렇게 새롭게 알게된 사실들이 흥미로웠다. 


꾸준히 배우면서 나무라는 친구와 좀 더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근차근 천천히 기초부터 배워나가보려고 한다. 지치지 않고 쭉 배우고 싶다. 더불어 좋은 결과물도 만들어낼 수 있으면 더할나위없이 좋겠다. 


나무가 끊어지지 않게 톱질을 하는게 관건이다. 저렇게 자르고 나면 나무가 흐느적 움직이는게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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