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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정훈 Sep 02. 2021

던 월 - '연대'의 의미.

엘카피탄. 아이폰이나 맥을 쓰는 유저들한테는 익숙한 이름이라는데, 미국의 요세미티 국립공원에는  엘카피탄이라는 거대한 화강암 바윗덩이가 있다. 바윗덩이하면 그냥 뭔가 흔들바위 느낌인데, 세계에서 가장 큰 바위산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이 엄청난 바위산은 역시나 그 명성에 걸맞게 수많은 클라이머들의 도전을 받아왔고, 그 발자취에 따라 또 수많은 클라이밍 루트가 있다.  그 루트 중에서, 그 누구도 정복하지 못했던 코스가 있었는데, 그 코스의 이름이 바로 던월, 바로 여명의 벽이다. 그리고 던월은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렇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던월을 정복하기 위해 도전하고, 마침내 성공해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토미 칼드웰이라는 세계 최고의 클라이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다큐멘터리다. 어려서부터 허약했던 토미는, 우연한 기회에 아마추어 클라이밍 대회에 참여를 했다가 덜컥 우승을 해버리게 되었고, 그 다음날 프로 대회에 참여해서 또 우승을 해버리고 말았던 천재적인 클라이머다. 클라이밍을 하며 사랑을 했고, 정세가 불안한 나라에서 클라이밍에 도전하다가  반군 포로로 잡히기도 했다. 그리고 그 반군에게서 탈출하면서 반군을 절벽 아래로 밀어버렸던 일 때문에 계속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함께 클라이밍 하는 연인과 결혼하며 그 트라우마를 극복해낸다. 굉장히 여기까진 멋지고 로맨틱한 영화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중반에 접어들면서부터 그 극적인 분위기는 확 바뀐다. 평생을 함께 할거 같던 연인은 바람이 났고, 결국 영원할 것 같던 결혼생활은 파경을 맞이한다.  그리고 토미는 그 충격을 극복하려고 던월을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삶의 순간순간 겪는 그 무지막지한 정신적인 고통들을 토미는 클라이밍으로 극복해내고자 했던 것이다. 앞서 드라마틱하고 영화같던 분위기는, 그 시점부터 굉장히 처절해지는데, 보는 중간중간 불편했다. 토미의 그 정신적 고통이 전해져오는 느낌이랄까. 

던월 정복은 혼자 해낼 수 없는 프로젝트였고, 결국 클라이밍 경력이 많지 않은 케빈이라는 동료가 함께 하면서, 던월 정복을 위한 그 기나긴 프로젝트가 비로소 시작된다. 영화 제목은 던월이지만, 정작 던월은 중반이 되어서야 나온다는 사실. 그래서 보다가 조금 지쳤던 것도 사실이다. 어쨌거나 던월에 대한 수 많은 시도와 학습을 통해, 둘은 최적의 루트를 그려내고, 결국 도전한다. 그리고 이 영화의 진짜는 바로 여기서부터다. 

거대한 바위산은 하루만에 정복되는 곳이 아니었다. 절벽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자며, 며칠 밤낮을 도전해야 한다. 그 던월 역시 30개의 코스로 나눠져 있는데, 그 코스를 하루에 한개도 정복 못할 때도 있고, 여러 개를 정복할 때도 있다. 거의 한 달 가까운 시간을 절벽에서 먹고 자며 도전해야하는 것이다. 특히나 그 중 15번 코스는 두 사람 모두 한 번도 성공해내지 못한 극강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코스였다. 잡을 것이 없는 화강암 절벽에, 손가락 위치 조금도, 발끝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바로 떨어져버리는 무시무시한 코스. 수도 없는 도전 끝에 토니는 그 코스를 결국 정복해내고 만다. 그리고 괴물같은 코스를 정복해낸 토니는 케빈보다 훨씬 앞서 나가게 된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토니는 깨닫는다. 혼자만의 성공은, 성공이 아니었고, 성공은 함께일 때 의미있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게 된 순간  토니는 케빈이 계속 실패하고 있는 그 15번코스로 돌아 간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영화는 단순히 '도전과 성공 또는 실패'의 이야기가 아니라, '함께 하는 연대'의 이야기가 된다.  이 영화가 반짝반짝 빛나고, 울컥해지는 시점이다. 

결국 그 둘은 함께 성공할 수 있었을까? 사실 그 시점이 되서는 함께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던월 정복'은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중요한건 이거다. 결국 우리가 느끼는 기쁨도, 슬픔도, 성취감도. 실패감도, 행복도 모두 혼자가 아니라 연대하고 함께 할 때 의미가 있다는 거다. 

그래서 난 이영화를 보면서 영화 '퍼스트맨'이 떠올랐다. 친구같던 동료들이 모두 죽고, 목숨보다 이뻐했던 딸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 어려움을 모두 극복하고, 견뎌내고, 기어이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낸 인류 최초의 인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달분화구를 바라보는 암스트롱의 눈빛은 누구보다 공허했다. 그 눈에는 성취감도 없었고 슬픔도 없었다. 해냈지만 아무 것도 해내지 못한 불쌍한 누군가가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달랐다. 어려운 15번 코스 앞에서, 그 코스를 성공하든 하지 못했든, 그 둘이 서로를 바라보는 뜨거운 눈빛 속에, 이 영화의 모든 내용이 담겨져 있다. 그렇게 두 영화는 대비된다. 그리고 명확하게 우리에게 알려준다. 아무도 없었던 성공은 성공했으나 성공이 아니었고, 함께 해낸 것은 그게 성공이든 실패든 충분히 의미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너무 좋은 영화였다. 지루한 토요일 오후에, 남자 둘만 주구장창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혼자 보면서 울컥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예상치 못했던 카운터 한 방이었다. 뭐 거창한 이유 없이, 당신이 넷플릭스를 구독한다면, 아무 이유 묻지도 말고, 재지도 말고, 그냥 무조건 한 번 보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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