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 여든이다. 거울 속의 나는 이제 백발이 성성하고, 얼굴에도 세월의 자국이 또렷하지만, 그래도 아직 제법 봐줄 만한 얼굴이라 스스로 생각한다. 살아온 날들을 부끄럽지 않게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돈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만큼만 쓴다. 욕심은 줄었고, 허세는 내려놓았다. 더 이상 물건이나 명예가 나를 규정하지 않는다. 나는 오래전부터 책을 가까이했고, 요즘엔 읽는 것보다 쓰는 시간이 많아졌다.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종이와 펜만 한 게 없다. 때로는 손주들에게, 때로는 자녀들에게 편지를 써서 부친다. 마음을 담아 쓴 글을 읽고 웃었으면 좋겠다. 혹은 울어도 좋다. 그것도 삶이니까.
나는 지금 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들을 정리하고 있다. 내 남은 재산도 그렇다. 죽은 뒤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을 때 나누는 것이 더 낫다. 그래야 서로의 얼굴을 보며 마음을 나눌 수 있다. 내 자식들에게 큰 재산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작지 않은 의미가 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내가 그들을 믿는다는 표시로 전하고 싶다.
또 하나, 나는 이미 건강보험공단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제출했다. 큰 병에 걸려 의식이 없고 회복 가능성이 없다면, 인위적인 생명 연장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존엄이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오히려, 죽음을 인정하며 사는 것이 더 정직한 삶일지도 모른다.
죽은 뒤에도 마지막으로 내 몸이 쓸모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시신을 의과대학에 기증하기로 했다. 내가 떠난 뒤, 내 몸이 젊은 의사들의 손에서 다시 쓰일 수 있다면, 그 또한 가치 있는 마지막 역할이라 믿는다. 삶의 끝에서조차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는 그걸 기쁘게 받아들인다.
나는 아직 살아 있고, 이 시간에도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 있다. 남은 날이 길든 짧든, 이 모든 것이 고맙다. 더 바랄 게 없다. 삶이 주는 마지막 선물을, 나는 천천히 열어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