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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삼각형과 바람직한 노인상

노인혐오

by 마음 자서전

어제 평택에서 서울로 오는 전철 경로석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노인이 자리에 앉자마자 구두를 벗었다, 그때, 발냄새가 퍼지면서 주변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무더운 날, 답답함에 한 행동이었겠지만, 승객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누군가는 자리를 옮기고, 누군가는 코를 가렸다.


몇 달 전의 일이다. 노인복지센터에서 문화강좌를 들을 일이 있었다. 그런데 몇몇 할아버지에게서 냄새가 난다. 말할 때에도 입냄새가 난다. 위생 문제로 인해 옆자리에 앉기를 꺼려지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노인은 젊을 때와 다르게 자주 샤워를 하고 옷도 자주 갈아입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에게는 불쾌감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 불쾌감은 종종 개인을 넘어서 ‘노인은 불결하다’는 집단적 인식으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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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스턴버그는 증오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혐오감, 분노/두려움, 비인간화의 세 요소가 맞물려 형성된다고 말한다. 노인혐오 또한 이 구조를 따른다. 첫째, 혐오감이다. 냄새, 느린 걸음, 어눌한 말투는 도시의 빠른 리듬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불편함을 주고, 이는 감정적 거리두기로 이어진다. 둘째, 분노와 두려움이다. “복지는 왜 노인들이 다 가져가느냐”는 생각처럼, 노인을 사회적 자원을 차지하는 존재로 인식하게 되면 막연한 분노와 두려움이 생긴다. 셋째, 비인간화다. 이런 감정들이 누적되면, 노인은 더 이상 존중받아야 할 개인이 아니라 피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 즉 군집으로 전락한다.


물론, 불쾌한 행동 자체를 정당화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개인의 습관이 전체 노인 세대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는 것은 문제다. 증오의 삼각구조는 감정적 피로와 사회적 위기의식, 타인에 대한 무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증오를 정당화하는 방식이다. 이를 인식해야만 우리는 그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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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존중한다는 것은 무조건 이해하라는 뜻이 아니다. 개별적 상황과 맥락을 상상하고, 감정을 일반화하지 않는 태도를 뜻한다. 우리가 품는 냉소와 혐오는 결국 우리 자신의 미래를 향한 시선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노인이 존중받을 수 있을까? 단지 조용하고 깔끔한 사람만이 존경의 대상은 아니다. 삶을 성찰하고, 세대 간의 차이를 이해하려 노력하며, 사회와의 연결을 잃지 않는 노인. 자랑이 아닌 지혜로 경험을 전하고, 몸은 느려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따뜻한 배려를 품은 이가 바람직한 노인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존중은 일방적 요구가 아니다. 노인 스스로도 존중받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가장 기본은 자기 관리다. 청결한 외모와 몸가짐은 타인에 대한 배려의 표현이며, 공공장소에서의 작은 태도 변화가 세대 간의 벽을 낮춘다. 또한, 젊은 세대와의 소통에서는 훈계보다는 경청이 중요하다. 지나온 세월의 지혜는 상대가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울림을 가진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태도가 세대를 잇는 다리가 된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노인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 어떤 노인의 모습이 존경받을 수 있을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존경은 강요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려와 품위, 경청과 책임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좋은 노인은 곧 ‘좋은 어른’이며, 그런 어른은 어떤 시대든 꼭 필요한 존재다. 노인을 향한 사회의 시선이 바뀔 때, 우리는 건강한 노년과 건강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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