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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작아진 나

상대적 박탈감에 대하여

by 마음 자서전


은퇴는 단순한 직무의 종료가 아니라 삶의 정체성에 깊은 변화를 가져오는 사건이다. 은퇴 노인은 오랜 기간 지켜온 사회적 역할과 일상의 리듬을 잃으며, ‘상대적 박탈감’을 겪게 된다. 이는 절대적인 결핍이 아니라,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생겨나는 심리적 결핍이다. 비슷한 시기의 친구가 자녀에게 아파트를 사줬다거나, 활발히 활동하는 또래를 보며 자신이 뒤처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경제적 요인은 상대적 박탈감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낸다. 고정된 수입, 줄어든 소비 능력은 사회의 소비 중심 흐름과 대비되며 자존감을 낮춘다. 동시에 직장에서의 사회적 지위를 잃고, 더 이상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고 느낄 때 정체성의 상실과 고립감은 더욱 커진다.


신체적 노화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예전만큼 걷기 힘들고 병원을 자주 가게 되며, 건강한 노년을 보내는 또래와 자신을 비교하게 된다. 더불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문화, 스마트폰이나 유튜브와 같은 디지털 매체에 적응하기 어려운 현실도 소외감을 키운다. 은퇴 후 늘어난 여가 시간은 오히려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으며, 사회 참여 기회의 부족은 무력감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박탈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비교의 틀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타인과의 비교 대신 과거의 나와 대화하며, ‘의미’ 중심의 삶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자녀가 건강하게 자란 것, 배우자와의 세월, 친구와의 술자리 같은 작은 감사의 기억들이 자긍심을 회복시키는 자원이 될 수 있다.


사회적으로도 은퇴 노인이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역할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정책과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지역사회의 멘토 역할, 세대 간 교류, 노년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공유하는 문화는 이들의 존재 가치를 회복시킨다. 박탈감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존엄과 의미를 다시 찾는 새로운 출발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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