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기억
나는 매년 치매검사를 받는다. 혹시라도 기억이 나빠져 위험한 일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젊었을 때는 전화번호도 잘 외웠다. 당시에는 전화번호부라는 작은 수첩을 늘 가지고 다녔지만, 자주 쓰는 다섯 개, 여섯 개의 번호쯤은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내의 전화번호조차 가끔 가물거린다. 기억의 세월은 이처럼 덧없고 무상하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기억의 흐려짐을 조금이나마 붙잡으려는 방법으로 기억술(mnemonics)을 말한다. 기억술은 단순 암기 대신, 연상·시각화·조직화를 활용하여 기억을 더 쉽게 저장하고 떠올리는 기술이다. 고대 그리스의 연설가들은 위치 기억법(Method of Loci)을 사용하여 집이나 길에 연설문을 배치해 기억했고, 현대 심리학자들은 청킹(chunking), 이미지화, 이야기법 같은 다양한 방법을 연구했다.
기억술의 핵심은 인출 연습이다. 공부하는 학생이 책을 무한히 읽기보다, 배운 내용을 스스로 떠올리고 시험처럼 적어 보는 것이 훨씬 오래 기억되는 것처럼, 나 또한 내 삶의 좋은 기억들을 자꾸 불러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기억은 저장만 해서는 희미해지고, 꺼내 쓸 때마다 더 선명해진다.
2016년 6월 16일, <기억>이란 에세이에 이렇게 적어 두었다.
“인생에서 남는 건 돈도 명예도 아니고 기억이다. 기억은 자꾸 희미해진다. 좋은 기억을 만들어보자. 좋은 기억이 삶을 유익하게 한다.”
그렇다. 인생은 결국 기억의 총합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라도 의식적으로 좋은 기억을 만들고, 그것을 꺼내 보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기억술은 단지 공부를 위한 기술이 아니라, 내 삶을 더 따뜻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