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젊은 연예인의 마음에 대하여
연예인 나연은 서른 살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방송국에서 일했다. 외모는 단정했고 말투는 조심스럽지만, 유머가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대개 그녀를 “착하고 섬세한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문제는 언제나, 가까워진 뒤에 시작되었다.
연애의 초반은 언제나 눈부셨다.
나연은 상대의 말투와 표정, 사소한 취향까지 기억해 냈다. 그는 커피에 설탕을 넣지 않는다는 것, 비 오는 날에는 괜히 말수가 줄어든다는 것까지도. 그녀는 종종 웃으며 말했다.
“이상해요. 당신은 처음부터 남다른 사람 같아요.”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그렇게 느꼈다. 사랑은 그녀에게 늘 전부였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마음에 균열이 생겼다.
답장이 조금 늦어졌고, 약속이 한 번 미뤄졌다. 그 사소한 틈 사이로 하나의 생각이 스며들었다.
‘이 사람도 결국 나를 버릴 거야.’
그날 밤, 그녀는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메시지는 연속으로 이어졌다.
“무슨 일 있어?”
“나한테 화난 거야?”
“혹시 내가 뭘 잘못했어?”
답장이 오지 않자, 불안은 방향을 바꾸었다. 불안은 언제나 분노로 변장했다.
“역시 다 똑같아.”
“사람 믿는 내가 바보지.”
다음 날, 상대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연락했을 때, 나연은 이미 마음속에서 그를 멀리 밀어내고 있었다.
“괜찮아. 이제 상관없어.”
그 말은 이별 선언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붙잡아 달라는 절규에 가까웠다. 떠나지 말라는 말 대신, 먼저 등을 돌리는 방식이었다.
나연은 자신이 왜 이렇게 극단적으로 변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던 사람이, 오늘은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사랑과 증오는 그녀 안에서 너무 가까이, 너무 얇은 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조용했다. 부모는 맞벌이였고, 집은 늘 정돈되어 있었다. 폭력도 없었고, 큰 사고도 없었다. 다만 나연이 울 때마다,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 정도로 울 일 아니야.”
“너는 너무 예민해!.”
그 말들은 시간이 지나 이렇게 번역되었다.
‘내 감정은 과하다.’
‘나의 감정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렇게 나연은 자랐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데 능숙해졌고, 동시에 누군가 자신을 온전히 안아주길 갈망하는 사람이 되었다.
성인이 된 그녀의 삶에 연애는 중심이 되었다. 누군가 곁에 있을 때만 자신이 이 세상에 제대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혼자가 되면 설명할 수 없는 공허가 밀려왔다. 그 공허를 견디기 위해 그녀는 때때로 술을 과하게 마셨다. 죽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이 감정이 잠시라도 멈추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치료실에서 나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너무 사랑하거나, 너무 미워해요. 중간이 없어요.”
치료자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말했다.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 길었겠네요.”
그 말 앞에서 나연은 처음으로 울었다. 누군가 그녀의 감정을 고치려 하지 않고, 이해하려 했기 때문이다. 치료가 이어지면서 나연은 조금씩 배워갔다.
불안이 올라올 때 곧바로 행동하지 않는 법,
사랑이 흔들린다고 해서 곧 버려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혼자 있어도 자신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연은 여전히 감정이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안다. 감정은 지나간다는 것, 그리고 감정이 지나간 뒤에도 자신은 남아있다는 것을.
경계선 성격장애는 사랑이 과한 병이 아니다.
그것은 버려짐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 사랑을 통해 스스로를 붙들어 보려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