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몸과 마음을 잠식할 때

<사람과 고기>

by 마음 자서전


영화 〈사람과 고기〉는 노인 빈곤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지만, 그 방식은 조용하다. 이 영화는 통계와 설명 대신 시장의 공기, 반복되는 노동의 동작, 늙은 손과 굽은 허리를 오래 응시한다. 화면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은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에 이르게 된다. 이 영화 속 노인들이 겪는 가난은 단지 ‘돈이 없는 상태’에 그치는가, 아니면 몸과 마음 전체를 잠식하는 조건인가.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65세 이상 노인의 약 40%가 중위소득의 절반 이하로 살아간다. 이 숫자는 단순한 경제 지표가 아니다. 그것은 노년의 삶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를 드러내는 경고다. 영화 속 인물들이 폐지를 줍고, 시장에서 고기를 나르며 하루를 버텨내는 모습은 이 통계가 결코 추상적인 수치가 아님을 증명한다. 가난은 표가 아니라 얼굴로, 숫자가 아니라 몸으로 나타난다.

노인 빈곤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영역은 영양이다. 가난한 노인들의 식사는 대체로 단조롭고 불균형하다. 단백질 섭취는 부족하고, 신선한 채소와 과일은 쉽게 포기되는 사치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배경은 고기가 넘쳐나는 시장이다. 그러나 노인들의 식탁은 비어 있다. 이 역설은 영화의 제목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고기는 풍부하지만, 사람은 결핍 상태에 놓여 있다.


영양부족은 곧바로 육체적 건강 문제로 이어진다. 근육량 감소, 면역력 저하, 만성질환의 악화는 노년층에서 빠르게 진행된다. 병원에 갈 돈이 부족하고, 약을 꾸준히 먹기 어려운 상황에서 건강은 개인의 의지로 관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영화 속 노인들의 느린 걸음과 반복되는 고된 노동은 생계를 위해 몸을 쓰지만, 그 과정에서 몸이 더 빠르게 소모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다운로드 (1).jpeg

이 지점에서 한승태 르포작가의 《고기로 태어나서》(시대의 창, 2019, p.168)에 나오는 문장이 떠오른다.

“만약 지구가 관(棺)만큼 좁았다면 인간도 이성을 뽐낼 기회를 얻지 못했을 거다.

양돈장에서 모돈(母豚)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임신사와 분만사를 오갈 때뿐이고, 그 왕복 시간은 20분이 채 되지 않는다. 1년에 두 번의 회전율을 기준으로 하면, 이들이 걷는 시간은 1년에 고작 40분이다. 이들은 생명이 아니라 효율로 관리되고, 존재가 아니라 회전율로 계산된다. 그렇게 길러진 고기를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소비한다."


이 문장은 〈사람과 고기〉속 노인들의 삶과 겹쳐진다. 존엄보다 생존이 우선되는 조건, 삶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 되는 존재. 가난은 사람을 굶기기 전에 먼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좁히고, 생각할 여유를 빼앗는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시간과 자유는 점점 압축되고, 삶은 최소한의 단위로 쪼개진다.

그렇게 사람은 서서히 ‘살아가는 존재’에서 ‘버텨야 하는 대상’으로 바뀐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정신 건강이다. 빈곤은 단지 물질의 결핍이 아니라 사회적 고립과 무가치감으로 이어진다. 쓸모없어졌다는 감각,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다는 느낌은 노인의 마음을 조용히 무너뜨린다. 영화는 이 고통을 직접 말하지 않는다. 대신 말수가 줄어든 얼굴, 멈춘 시선, 반복되는 하루를 통해 보여준다. 그 침묵 속에는 오래된 외로움이 켜켜이 쌓여 있다.


이 모든 조건은 결국 자살 문제와 맞닿아 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매우 높은 사회이며, 특히 노인층의 자살률은 다른 연령대보다 훨씬 높다. 노년의 자살은 충동적 선택이라기보다, 오랜 결핍과 고립이 누적된 결과에 가깝다. 경제적 어려움, 건강 악화, 사회적 단절이 겹치면서 삶을 이어갈 이유가 조금씩 사라진다. 영화 속 인물들이 버티듯 살아가는 하루는, 동시에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위태로운 균형 위에 놓여 있다.

common.jpeg

〈사람과 고기〉는 비극을 과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잔인하다. 이 영화는 “불쌍하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왜 이렇게 많은 노인이 늙어서까지 일해야 하는가. 왜 물가는 오르는데 노인의 삶을 지탱하는 안전망은 이렇게 얇은가. 왜 고기는 넘쳐나는데, 사람의 존엄은 이렇게 부족한가.


다만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의 무게에 비해 캐스팅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노인 빈곤이라는 주제는 무엇보다 익명성과 보편성이 필요하다. 누구라도 그 자리에 설 수 있고, 어느 날 갑자기 그 얼굴이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박근형은 너무 잘 알려진 얼굴이다. 그의 등장은 인물의 삶보다 배우의 이력이 먼저 떠오르게 만들고, 관객은 현실의 노인을 보기보다 연기된 노년을 의식하게 된다.

장웅의 캐스팅 역시 신체 이미지 차원에서 주제와 완전히 조응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면 예수정의 절제된 연기는 과장이나 연민 없이, 존엄을 간신히 붙들고 살아가는 노년의 얼굴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사람과 고기〉는 가난이 어떻게 몸을 마르고 병들게 하고, 마음을 고립시키며, 끝내 삶의 의지를 갉아먹는지를 조용히 증언한다. 이 영화가 남기는 질문은 분명하다. 가난은 돈에서 끝나지 않고, 몸을 지나 마음에까지 이른다. 그리고 그 끝에는 침묵과 단절, 그리고 너무 자주 죽음이 놓여 있다.

이제 그 질문에 답해야 할 차례는, 영화를 본 우리 사회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