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는 도망이 아니라,
상처 이후에 형성된 삶의 전략

《맨체스터 바이 더 씨》와 회피성 성격장애

by 마음 자서전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주인공 리 챈들러는 회피적인 인물로 보인다. 그는 말을 아끼고, 관계가 깊어질 기미가 보이면 한 발짝 물러선다.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는 끝까지 묻는다. 리는 원래 회피적인 사람이었는가, 아니면 너무 큰 충격 이후 회피적으로 ‘변해버린’ 사람인가.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회피성 성격장애는 흔히 소극적이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의 문제로 오해되지만, 실제 정의는 정반대의 지점을 가리킨다.


Aaron T. Beck은 《성격장애의 인지치료》에서 회피성 성격장애를 이렇게 설명한다.

“회피성 성격장애 진단을 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며 자신의 지적⋅직업적 잠재력을 발휘하고 싶어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받거나 거절당하는 것과 성공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이 구사하는 방략은(의존적인 사람과 정반대로) 대인관계에서 물러서는 것, 즉 다른 사람들과 연루되는 일을 일단 회피하려는 것이다.”

(Aaron T. Beck 외 4인 공저, 《성격장애의 인지치료》, 민병배 외 공역, 학지사, 2008, p.73)


이 문장은 리 챈들러라는 인물을 정확히 관통한다. 그는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 형의 죽음 이후 조카 패트릭과 함께 살아보려 애쓰고, 패트릭의 여자친구 샌디의 엄마가 보이는 조심스러운 호감 앞에서도 무감각하지 않다. 문제는 욕구의 부재가 아니라, 상처와 실패에 대한 극단적인 공포다. 그 공포가 관계를 시작하기도 전에 리를 물러서게 만든다.


이 공포의 근원에는 주택 화재와 세 자녀의 죽음이라는 압도적인 사건이 있다. 사소한 부주의로 발생한 화재는 한 가족을 무너뜨렸고, 리는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음에도 스스로에게 평생의 유죄 판결을 내리고 괴로워한다. 이 사건은 그의 삶에서 ‘관계’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바꾼다. 더 이상 관계는 위로와 성장의 공간이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이 발생하는 장소가 된다.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이는 핵심 신념(core belief)의 변화다.


“가까워질수록, 더 크게 잃는다.”


사건 이후 리의 결혼은 유지될 수 없었다. 아내 랜디는 같은 상실을 겪었지만, 애도의 방향은 달랐다. 그녀는 고통 속에서도 다시 삶을 이어가려 했고, 리에게 그 움직임은 또 다른 재난처럼 느껴졌다. 이혼은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트라우마를 감당하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에 일어났다. 이 지점에서 리의 회피는 성격적 결함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 된다.


형 조의 죽음과 그가 남긴 유언으로, 패트릭의 후견인 지정은 리에게 또 하나의 시험이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 자녀를 잃은 리가 패트릭의 후견인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조카를 사랑하고 책임감도 느끼지만, 보호자가 되는 역할은 아이들의 죽음이라는 기억을 하는 자리라 생각했다. 결국, 리는 후견인이 되지 않기로 결정한다. 이 선택은 도피가 아니라, 자신의 붕괴될 수 있음을 예측하는 사람의 후퇴다. Beck이 말한 것처럼, 회피성 성격의 핵심은 무능이 아니라 “성공하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리는 실패할 수 가능성이 있는 관계에 자신을 던지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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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회피성 성향이 가장 섬세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있다. 패트릭의 여자 친구, 샌디의 엄마가 리에게 호감을 보이지만, 리가 그녀의 마음을 거절하는 장면이다. 그녀는 다정하고 성숙하며, 이유를 캐묻지 않는다. 리는 호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Beck의 표현대로 상처받을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방략이다. 회피성 성향이 있는 사람은 관계를 가볍게 여겨서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너무 진지하게 여기기에 물러선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회피성 성격장애를 병리적으로 규정하는 장면을 볼 수 없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회피는 타고난 성격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너무 큰 충격 이후 형성된 적응의 결과라고. 리의 침묵과 후퇴는 인간관계를 거부한 결과가 아니라, 관계를 원했기에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던 사람의 흔적이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회피성 성격장애를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사람을 싫어하는 성격이 아니라, 사람을 너무 원했기 때문에 상처받지 않으려 선택한 삶의 전략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전략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