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애적 사회
“당신이 ‘무모’하고 ‘자신만만’하고 ‘사회적 신분 상승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남근(男根) 자기애’ 성향이다. 또 당신이 세상의 어떤 집단이나 사람들보다 훨씬 특별하다고 생각되는 집단에 속해 있다면, 그 집단은 ‘집단적 자기애’ 성향이다.
당신이 이끄는 집단의 구성원들에 대한 배려보다 과대망상적인 자존심의 유지가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더 큰 원동력이라면, 당신은 ‘자기애 성향의 지도자’이다. 부가 힘을 상징하는 등 피상적인 상징물을 우선시하는 문화의 구성원이고 오로지 그러한 상징물을 우선시하는 문화의 구성원이고 오로지 그러한 상징물을 얻으려고 다투는 일에만 골몰하는 사람이라면 ‘문화적 자기애’를 부추기는 사람이다. 대기업의 지도자이고 오로지 한 가지 –수익 창출-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기업 자기애’ 성향이다. 집단적 자부심이 너무 높아서든 낮아서든 기업이 자사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현실을 무시하고 과대망상을 바탕으로 행동한다면, 그 기업은 ‘조직적 자기애’ 성향이다. 진단을 잘못해도 인정하지 않는 의사라면, ‘의학적 자기애’ 성향이다. (…) 상대와 진정으로 친밀한 관계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성적 자기애’ 성향이다. (…)
겉으로는 자신이 정말 영적인 사람이라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종교를 믿고, 종교의 관행을 따르지만, 믿음을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길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영성과 ‘우주’와의 관계를 확인한다는 등 하면서, 신성하고 무조건적인 사람 앞에서 겸허해지고 진정한 종교를 체험하기보다는 내면의 헛헛함과 부족함을 보상받으려 하는 사람이라면, ‘영적인 자기애’ 성향이다. (…)
건강한 정상인이 갑자기 유명해져서 페이스북 친구가 천 명을 넘어가고 자녀들을 데리고 고급 음식점에 가서 음식 사진을 찍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후천성 상황적 자기애’ 성향이다.
마치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혼잣말하고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자신이 대화의 주제가 되도록 은근히 유도한다면, 그리고 얼핏 보기에 겸손을 떠는 말을 하지만 결국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칭찬을 하도록 유도하거나 횡설수설 끊임없이 주절거리는 사람이라면 ‘대화 중심형 자기애’ 성향이다. 남에게 베풀고, 중요한 정치적 명분이나 자선 단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배려와 공감에 대해 자주 얘기하고, 일반적으로 자기애 성향이라고 간주하는 성향과 정반대인 성향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은 ‘공동체적 자기애’ 성향이다.”
(크리스틴 돔백, 《자기애적 사회에 관하여》, 홍지수 옮김, 사이행성, 2017) p.40
크리스틴 돔백은 자기애를 더 이상 개인의 병리적 성격 특성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애를 개인이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에 자신을 동일시하는가의 문제, 다시 말해 자아가 기댈 대상을 어디에 두는가의 문제로 확장한다. 남근 자기애, 집단적 자기애, 기업·조직적 자기애, 영적 자기애, 공동체적 자기애 등으로 세분화된 개념들은 정신의학적 진단 범주라기보다, 현대 사회에서 자기애가 권력, 성공, 도덕성, 영성, 공동선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위장되고 합리화되는지를 드러내는 사회심리학적 은유에 가깝다.
이 분류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자기애는 반드시 오만하거나 공격적인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때로는 헌신, 도덕, 연대, 영성, 공동체라는 외피를 두르고 등장한다. 문제는 그 행위의 외형이 아니라 그 동기에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 자기 존엄의 과대망상적 유지가 행동의 주된 원동력이 될 때, 그 순간 자기애는 개인을 넘어 집단과 조직, 나아가 문화의 차원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자기애는 현실 검증을 약화시키고, 비판을 공격으로 인식하게 만들며, 실패와 한계를 인정하지 못하게 한다.
돔백의 논의는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진단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누가 자기애적인가?”를 가려내려는 사회의 조급함을 비판한다. 그는 자기애를 어떤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회가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자아의 형태로 바라본다. 이 관점에서 보면 자기애는 개인의 결함이기보다, 성취·성공·도덕적 우월성을 끊임없이 증명하도록 강요하는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정서적 구조물에 가깝다. 결국 자기애의 문제는 개인의 성격을 넘어서, 우리가 어떤 가치를 숭배하고 어떤 인간상을 이상으로 삼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