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민감화, 탈자동화, 탈동일시
예전에는 화를 잘 냈다.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손짓발짓하고 물건을 부수기도 했다. 그래야 직성이 풀렸다. 화를 내면 내가 내 성에 못 이겨 씩씩거렸다. 내가 자랐던 어린 시절에는 그런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 5살 때 625전쟁으로 피난을 가면서 어린 나이에 볼 것 못 볼 것을 모두 보았다. 먹을 게 없어서, 남에게 물건을 빼앗겼고 힘들게 고생하였다. 커서 생각하니 사람들이 악(惡)만 남았다고 하는 말이 무언지 알 것 같다.
전쟁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피난길에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도 피난 중이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라는 말도 유행했다. 예절은 피난 보따리 속에 넣어두었다. 마음속에는 예절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예절을 찾기 어렵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이다. 그런 시대에 자랐다.
피난길에서 고생하며 지낸 것보다 더 힘들게 한 것은 따로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3학년 때에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5학년 때 돌아가셨다. 3학년 이후론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아버지는 상점을 하셨다. 잡화상점이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슈퍼마켓이었다. 당시에는 인근 동네에서 제법 규모가 컸다. 채소, 생선, 생활 잡화를 모두 팔았다. 일정시대에는 쌀 배급, 소금 배급, 담배배급이 있었다. 배급제였기 때문에 배급소는 동네에 하나밖에 없다. 물자가 귀한 시절이라 물건만 있으면 팔렸다. 종업원들을 집에서 재우고 살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아버지도 심리적 상처를 입으셨나보다. 사업을 등한시하셨다.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종업원들과 어울리는 날이 많았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젊어서는 화를 잘 냈다. 애정결핍이다.
은퇴한 후에 우울증이 왔다.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서울에 있던 딸이 평택으로 이사를 왔다. 아빠가 외로울 것 같아서이다. 손자를 돌봐주고 놀았다. 놀이터도 가고, 시장도 가고, 도서관도 갔다. 줄곧 같이 다녔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주었다. 책을 읽어주고, 나도 책을 빌려왔다.
우울증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심리학 개론》을 읽었다. 생전 처음으로 심리학을 읽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심리학에 빠져들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심리학개론》을 필사하다시피 했다. 그러다 《심리학개론》을 샀다. 이후 심리학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다. 읽어도 잘 모르겠다. 또 알았다고 해도 금방 잊어버린다. 나이가 들어 기억력도 떨어지고, 생소한 것을 내 몸에서 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나이에는 머리에 넣기보다는 배운 걸 직접 응용할 때 내 것이 될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심리학책을 읽어서인지, 요즘은 화를 안 낸다. 화를 안 내는 게 회피인지, 억압인지, 억제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화를 안 낸다. 화를 내야 할 때 화를 안 내게 되니까, 불편할 때가 있다. 작은 화를 낼 때는 불편한 마음이 잠시 머물다가 사라지지만, 크게 화를 내야 할 때에 화를 못 내면 불편한 마음이 오래간다. 어떤 때는 화를 내게 만든 사람과 서먹서먹해진다. 더 심할 때는 그 사람과 멀어지기도 한다.
사진을 찍을 때, 먼 곳은 조리개를 좁히고 가까운 곳은 조리개를 넓힌다. 조명의 밝기에 따라서도 조리개가 열리고 좁히고 한다. 우리의 눈에도 조리개가 있다. 잘 안 보일 때는 눈을 찡그리면 조리개가 좁혀진다. 어두운 곳에서는 조리개를 열고 밝은 데서는 조리개를 좁힌다. 나는 마음의 조리개, 감정의 조리개를 잘 여닫지를 못하는 사람 같았다. 사람들에게 알맞은 감정 조리개로 사진을 찍을 줄 몰랐다. 기술이 부족한 건지, 사진기가 나쁜 건지 날씨가 안 좋은 건지, 도통?
감정을 회피하는 건지, 억제하는 건지, 모르겠다.
고등학생 때는 유머도 많아서 학우들을 웃기게도 많이 했는데 유머도 사라졌다. 이제는 공부로 글쓰기로 승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승화보다 승복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생긴다.
상담대학원 생활에서 나의 ‘억제‘라는 방어기제를 더 성숙한 방어기제인 승화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190318 , 190320, 251230
자각의 심신치유 기제
탈민감화de-sensitization : 자각을 통해 점차 과도한 정서적 반응 없이도 통증 감각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탈민감화’가 일어난다. 그리고 이완상태와 불안은 양립할 수 없으므로 상호억제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탈자동화deautomatization : 순수하고 비선택적인 주의는 무의식적으로 자동화된 습관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돕는데, 이를 ‘탈자동화’라고 한다.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 : ‘바라보는 나’가 분리됨으로써 과거에 ‘나’로 동일시하여 착각했던 ‘일상의 나’를 집착없이 하나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를 ‘탈동일시’라고 한다.
자각을 통한 심신치유 경험의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