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론》,《국화와 칼》로 읽는 영화 <플랜 75>

by 마음 자서전

“노인은 나라 재정을 압박하고 그 피해는 청년이 받는다. 일본인은 국가를 위해 죽는 걸 긍지로 여겨 왔다.

나의 행동으로 나라의 미래가 밝아지기를 바란다.”

영화 <플랜 75>는 날카로운 총성 뒤에 들려오는 한 청년의 비정한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화면의 초점을 흐릿하게 지워버린 아웃포커싱 연출 너머의 총성. ‘밝은 미래’를 확신하는 청년의 외침과 달리 화면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습니다. 이 지독한 시각적·청각적 대비는 국가의 대의(大義)라는 이름 아래 개인의 생명이 얼마나 속절없이 지워지고 있는지를 폭로합니다.

이는 일본 사회 특유의 ‘와(和, 화)’ 정신이 집단적 광기로 변질되었을 때의 공포를 여과 없이 보여줍니다.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본인은 어떤 사람이 기리(義理)를 갚을 수 없는 경우 그 사람이 파산했다고 여긴다”

최근 일본에서 《노후파산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영화 속 노인들은 경제적 빈곤 이전에, 사회로부터 입은 은혜인 ‘온(恩)’을 더 이상 갚을 길 없는 ‘정신적 파산자’로 취급받습니다. 국가가 제안하는 안락사는 그들에게 죽음을 권유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기리를 갚지 못하는 부채감에서 벗어나 삶을 매듭짓게 하는 잔인한 ‘케지메(けじめ, 매듭)’의 기회로 포장됩니다.

즉, 국가에 대한 마지막 ‘온가에시(恩返し, 보은)’로서 죽음을 택하라는 강요인 셈입니다.

이러한 ‘사회의 조화’를 위해 개인이 스스로 사라져 주는 것이 미덕이라 믿는 세상 속에서, 주인공 미치(는 성실한 노동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애씁니다. 그러나 그녀가 마주한 현실은 철저한 배제였습니다.

공원 벤치에 박힌 딱딱한 칸막이는 노인들에게 “누울 자리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라는 도시의 비정한 거부입니다. 낮에는 노인이 쉴 자리를 막아 세우던 그 공원이, 밤이 되면 천막을 치고 따뜻한 식사를 배급하며 야간 접수처라는 이름으로 죽음을 유인합니다. 당장의 허기를 채워주는 그 ‘친절한 밥상’은 실상은 노인들의 빈곤을 담보로 죽음을 거래하는 비열한 미끼입니다.

미치가 잘라낸 손톱을 정성껏 화분 흙 속에 묻는 행위는, 국가에 의해 '파산자'로 규정된 노인이 스스로에게 바치는 가장 고결한 의식이자 예고된 결말처럼 보입니다. 자신의 일부를 흙으로 돌려보내 식물의 생명으로 환원시키려는 그 손길입니다. 효율성만을 따지는 차가운 맬서스의 《인구론》에 대항하는 정적인 저항입니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맬서스의 공식 앞에서, 국가는 인구를 강제로 줄여 식량(자본)의 균형을 맞추려는 거대한 기계가 되었습니다.

미치의 일터가 주간의 호텔 청소에서 야간의 도로 위로 옮겨간 것은 단순한 이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회가 노년의 얼굴을 어둠 속으로 지워버리는 과정이며, 따뜻한 실내에서 차가운 변두리로 밀려난 한 개인의 몰락을 상징합니다. 특히 가슴 아픈 미장센이 있습니다. 미치가 어둠 속에서 가슴에 두른 붉은 경광등입니다. 차들을 향해 조심하라고 내뿜는 그 빛은, 역설적으로 미치가 세상을 향해 보내는 마지막 구조 신호(SOS)처럼 보였습니다.

“나 여기 살아있다”는 절박한 비명처럼, 질주하는 차들의 불빛 사이에서 위태롭게 깜빡이던

그 붉은 점은 사회가 노년의 노동을 얼마나 위태로운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지를 증명합니다.


조화를 중시하는 일본인의 ‘와(和)’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는 이방인 마리아를 통해 극명히 대비됩니다.

마리아의 공동체는 5살 딸의 병원비를 위해 지인들이 기꺼이 성금을 모으지만, 일본 사회는 돈 10만 엔을 쥐여주며 죽음으로 내몹니다. 표면적인 관계를 위해 기계적으로 응대하는 ‘맞장구 미인(あいづち美人)’들의 태도는 세련되어 보이지만, 그 미소 뒤에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지독한 무심함이 숨어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민폐’를 치우듯 유품을 정리하며 사회의 바깥으로 밀려난 존재들, 즉 ‘니혼진 하즈레(日本人外, 일본인 같지 않은 자)’들을 외면합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들의 물건을 정성껏 닦으며 기도합니다. 이는 죽음을 행정으로 처리하는 국가에 맞서, 인간에 대한 진정한 ‘애도’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영화는 다시 소리와 빛으로 돌아와 마침표를 찍습니다. 도입부에서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둠과 잔인한 총성으로 열렸던 아웃포커싱은, 엔딩에 이르러 세상을 온통 금빛으로 물들인 황혼과 미치의 나직한 콧노래로 문은 닫힙니다. 육성으로 부르는 허밍은, 비정함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길어 올린 가장 뜨겁고도 인간적인 생존 선언같았습니다.

주인공의 이름 ‘미치(ミチ)’가 일본어로 ‘길(道)’을 뜻하듯, 그녀는 이제 국가가 정해준 죽음의 행로가 아닌, 비로소 자신이 주인인 진짜 삶의 길 위에 선 것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묻게 됩니다.

우리가 그토록 지키려 하는 ‘사회적 조화’ 안에 정작 ‘사람’의 자리는 남아 있는 것인지요, 아니면 우리는 모두 기리를 갚지 못해 폐기되어야 할 ‘파산자’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