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과 색채 사이의 우정

우정은 갈라지고, 예술은 남았다

by 마음 자서전


국회도서관의 깊은 정적 속에서, 나는 두 사람의 삶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활자들은 먼 시간을 건너와, 우정과 상처, 오해와 침묵의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에밀 졸라와 폴 세잔. 이름만으로도 이미 서로를 설명하는, 그러나 끝내 서로에게 다다르지 못한 두 영혼이었다.


세잔은 졸라보다 한 살 많았다. 엑스의 학교에서, 어린 졸라가 이유 없는 폭력 앞에 서 있을 때 세잔은 늘 한 발 먼저 나섰다. 말없이 가로막아 서는 그 모습은, 친구라는 말보다 더 단단한 보호였다. 그 시절, 세잔은 강했고 졸라는 의지할 곳이 있었다.


그러나 졸라의 집안에는 일찍부터 균열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아버지는 엑스에서 댐을 쌓다가 폐렴으로 쓰러졌다. 남겨진 것은 빚과 편견, 그리고 차가운 시선뿐이었다. 지역민들은 그를 외지인으로 기억했고, 졸라는 어린 나이에 경제적 결핍과 정신적 고립을 함께 견뎌야 했다. 훗날, 시간이 모든 것을 다독인 뒤에야 사람들은 그의 공로를 인정했고, 도로 위에 아버지의 이름을 새겼다. 그러나 그 이름은, 이미 오래된 상처 위에 놓인 늦은 화해였다.

세잔의 집은 정반대였다. 아버지의 모자 사업은 성공했고, 은행은 돈을 불려 주었다. 그러나 풍요는 자유와 함께 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들의 삶을 계획했고, 진로를 정했다. 그림이 아닌 법학, 넉넉하지 않은 용돈, 보이지 않는 감시. 그 통제는 사랑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세잔의 마음을 서서히 조여 왔다. 그는 부유했지만 숨이 막혔다.


세월이 흐르자, 두 사람의 운명은 엇갈리기 시작했다. 졸라는 소설로 세상에 이름을 남겼고, 원고지 위에서 부를 얻었다. 그의 삶에는 여유가 깃들었고, 말은 점점 단단해졌다. 그는 그림을 사랑했고, 화가들의 작품을 평하며 예술을 옹호하는 글을 썼다. 친구 세잔에게도 조언을 건넸지만, 그 말들은 캔버스 앞에 선 세잔에게 닿지 못했다.


세잔의 그림은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했다. 세상은 그의 색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는 점점 더 깊은 우울 속으로 가라앉았다. 초상화 속 인물들은 숨을 멈춘 듯했고, 화면에는 유독 푸른색이 맴돌았다. 살아 있는 사람을 그렸지만, 그는 마치 사물처럼 대상을 바라보았다. 훗날 정신분석가들은 그것을 분석했지만, 그 푸른 색조는 아마도 말로 옮길 수 없는 고독의 언어였을 것이다.


결정적인 균열은 졸라의 소설에서 생겨났다. 『작품』 속 한 인물이 세잔을 떠올리게 한다는 비난을 쏟았고, 세잔의 마음속 자격지심은 불씨처럼 타올랐다. 이해받지 못한다는 감각, 친구에게조차 벗겨진 존재가 되었다는 두려움. 그 순간, 오랜 우정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침묵 속에서 굳어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잔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야 자유를 얻었다. 막대한 유산은 억압이 아닌 해방이 되었고, 그는 비로소 그림 앞에 온전히 설 수 있었다. 더 이상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속에서, 그의 캔버스는 점점 깊이를 얻었다. 늦게 찾아온 각광은 조용했지만 확실했다.


두 사람은 끝내 같은 지점에서 만나지 못했다. 한 사람은 문장으로 시대를 흔들었고, 다른 한 사람은 색으로 시간을 견뎠다. 어린 시절 서로를 지켜 주던 우정은 오해와 침묵 속에서 멀어졌지만, 그 삶들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로 남았다. 엑스의 햇빛 아래서 시작된 두 개의 길은 그렇게, 끝내 다른 빛을 품은 채 각자의 예술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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