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딜리아니>
영화 〈모딜리아니〉는 한 예술가의 천재성과 몰락을 나열하지 않는다. 대신 이 영화는 한 인간이 어떻게 사랑을 갈망하고, 동시에 그 사랑을 유지할 능력은 끝내 갖지 못했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예술만큼이나 중요한 주제가 놓여 있다. 바로 관계다. 특히 그의 부인 잔느 에뷔테른과의 관계는, 모디(모딜리아니)의 심리 구조를 가장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이다.
모디의 아버지는 실패한 사업으로 어머니가 출산하는 침대에 있는 물건을 제외한 모든 재산을 빼앗긴다. 유대계 이탈리아인으로 프랑스에서 화가로 성장하기에 경제적, 정서적으로 좋은 편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잔느는 중산층의 가정이지만 잔느의 아버지는 딸의 결혼에 부정적이었다. 당시에 유대계는 인정받지 못하는 풍토가 있었다. 거기에 화가로서 경제적으로 자립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디는 누구에게도 받을 수 없었던 사랑을 잔느에게 받는다.
모디는 그녀를 사랑하고,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는 잔느의 시선 속에서 예술가로서, 남자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 자신의 존재가 승인되길 바랐다.
영화 속에서 소년(내면아이)은 “Jeanne’s waiting”이라고 말한다.
이는 애정의 호출이 아니다. 무너지는 자아를 붙잡아 두는 마지막 기준점과 같다.
그의 성격 구조는 취약한 자기애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는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믿고 싶었다. 그 믿음은 내부에서 자라난 확신이 아니다. 외부의 시선에 의해 유지되는 불안정한 자아다. 잔느의 사랑은 그에게 거의 유일하게 주어진 ‘무조건적 승인’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그는 그녀의 사랑에 더 깊이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기록에 따르면 모디는 생애 동안 네 명의 여성과 사귀었다.
세 번째 연인이었던 간호사 ‘시모네 티루’와의 관계에서는 아들이 태어났다. 아들은 종교인이 되어 아버지의 정체를 숨겼다.
모디는 정서적 불안이 있다. 그는 친밀함을 원했지만, 그 친밀함이 지속되면, 책임과 의존의 무게가 느껴지는 순간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래서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는 스스로 파괴적인 행동을 통해 균열을 만들어 냈다. 그의 잦은 여성 관계는 정서 조절에 실패한 사람이 반복적으로 선택한 방법이다. 한 사람에게서 충분히 안정되지 못한 감정은, 다른 관계로 옮겨 가며 잠시 진정될 뿐이었다.
알코올 역시 마찬가지다. 불편한 감정을 잊기 위한 도구였다. 술은 불안과 수치심을 마비시켰고, 고통의 감각을 차단했다. 이는 불안으로 인한 선택이다. 나쁜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 감정의 마비를 꾀했다.
그에게 잔느는 특별한 존재였다. 그녀는 그의 예술을 진정성 있게 바라봐 주는 사람이었다. 그의 불안정함을 통제하려 들지 않았다. 잔느는 ‘어른아이’로 있던 모디를 있는 그대로 품어 주었고, 어른아이를 안은 모성의 증거이다. 그래서 그는 아이를 위해 혼인신고를 하러 시청으로 향하고, “오늘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그가 처음으로 사랑을 책임으로 전환하려 시도한 순간이다. 그러나 그 시도는 너무 늦었고, 그의 내부 구조는 이미 그 무게를 견디기엔 지나치게 소진된 상태였다.
영화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소년은, 그를 마지막으로 붙들고 있던 핵심이다. 소년은 사정하고, 매달리고, 붙잡는다. 그리고 눈 오는 날, 폭력으로 쓰러진 모딜리아니를 안고 말한다.
“It’s wonderful.”
이 말은 삶에 대한 찬가가 아니다.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을 잃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도달했다는 환희와 가깝다. 내면아이와 자아가 하나로 합쳐지는 이 순간은 성숙이 아니라, 항복을 통해 얻은 평온함이다. 그는 끝내 현실 속에서 사랑을 지키기보다, 사랑을 상상 속에서 완성하는 길을 택한다.
영화 〈모딜리아니〉는 예술가의 전기다. 하지만, 사랑받고 싶었으나, 사랑을 유지할 내적 구조를 갖지 못했던 한 인간의 심리 보고서와도 같다. 모디는 많은 여자를 만났지만, 사실 그가 원한 것은 언제나 같았다. 안정, 인정, 그리고 “너는 충분하다”는 위로의 말이었다.
그의 비극은 정서적 불안정이 방치된 채 재능만 소비된 삶에 있었다. 잔느는 그가 마지막으로 도달한 애착의 자리였다. 그 자리를 지키기까지 그는 너무 오래 혼자 버텨왔다.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천재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영화는 조용히 답하는 것 같다.
“그 누군가를 끝까지 지킬 수 있는 이는 내면의 힘이라고.”
“인간의 핵심 요소를 즉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내면아이와의 접촉을 시도하는 것이다.”
(John Bradshaw,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오제은 역, 학지사, 2015, p.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