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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자서전 Mar 18. 2017

모멸감을 덜 느끼고  당당하게 사는 방법

《모멸감》

모멸감을 덜 느끼고 당당하게 살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 구조적인 차원의 접근이 요청된다.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압축적으로 경험했다. 헐벗고 굶주리는 절대 빈곤을 기적적으로 벗어났고,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가능한 시스템을 이룩함과 동시에 인권 탄압과 고문이 크게 줄어든 세상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생존자체가 다시 버거워진 탓도 있다. 의(依)와 식(食)은 상당부분 해결되었지만 주(住)는 오히려 훨씬 힘들어졌고, 최저생계비를 버는 수준의 일자리조차 구하기 어려워졌다.

절대 빈곤 그리고 실업은 그 자체로 인간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겨준다. 최소한의 품위를 갖출 수 없는 것, 자신이 무능하고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은 엄청난 모멸감을 불러일으킨다.(중략)


평범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기본적인 생계를 꾸릴 수 있도록 ‘괜찮은 일자리들이 많아져야 한다. 날로 심화되는 불평등지수가 개선되도록 분배의 틀을 리모델링하고, 너무 높은 부동산 가격 때문에 생활이 허덕이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정치의 몫으로 수립되고 그것을 촉진하기 위한 사회운동의 과제가 제기된다.


둘째, 문화적인 접근을 생각해야 한다. 

특정한 기준으로 인간의 귀천을 나누는 의미체계가 모멸감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로 학력에 대한 위계의식을 들 수 있다. (중략)

인간의 격을 위아래로 나누는 서열 관념은 학력이외에도 여러 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경제적 거주지, 가장 환경, 피부색, 외모, 나이 등

외형적인 차이를 절대화하면서 차별하고 멸시한다. 고위직에 있는 사람은 주어진 지위를 남용하여 부당하게 지배하려 든다.(중략)


저마다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잠재력이 개발되고 꽃피울 수 있는 기화가 열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나를 있는 그대로

승인해주면서

도전과 성취를 북돋아주는

관계의 공동체가

다양하게 형성되어야 한다



셋째, 개인의 내면적인 힘을 키워야 한다. 

삶의 자리에 모멸이 만연하는 까닭은 스스로의 품위를 잃었기 때문이다. ‘생존’과 ‘정의’의 문제를 어느 정조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자존’의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고 할까. 수억 원을 받는 대기업의 임원이 예전의 가난한 농부가 구멍가게 주인보다 못하다. 일류대학생들의 자존감이 웬만한 중학생만도 못한 듯하다. 명품에 골프 그리고 성형까지 품위 유지비는 날로 높아지는데, 품위는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다.

그래서 결핍을 타인에 대한 군림으로 보상받으려 한다. 타인의 인정을 통해서만 자신의 가치를 찾는 사람이 생긴다. (중략)



자기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너그러운 성품에서 격조 있는 삶이 가능하다.

높은 것에 사로잡혀 삶을 창조하기에 자기를 돌볼 줄 안다.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자신을 자각하며
스스로 채워진 마음이 타인에게 스며들기에 품위 있는 관계가 형성된다.

그러한 위엄과 기품이 사회적 풍토로 자리 잡을 때, 모멸감의 악순환도 줄어든다. 그 길은 자존의 각성과 결단에서 열린다. (307쪽)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 불가피하게 되지 않은 한

체념의 철학을 따르기를 원치 않았다.


나는 인생을 깊게 살기를,

인생의 모든 골수를 빼먹기를 원했으며,  

강연하고 엄격하게 살아,

삶이 아닌 것은 모두 때려 엎기를 원했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에서 (3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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