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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unction Dec 18. 2020

누가 본다고_시작

독서일기를 빙자한 잡글과 푸념 1


2020.10.10.


서문


그러니까, 2020년 여름과 가을 중간쯤이었던 거 같다. 아내와 전세 등등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를 뒤질 때였다. 그때는 주중에 2일 정도 내 재택과 아내의 수업이 있었고, 재택일에는 으레 내가 점심과 저녁을 커버하곤 했었다. 주말엔 집 앞 작은 공원에 나가 풀멍과 독서, 음식 섭취를 즐기곤 했다. 집에 읽을만한 책이 떨어져 가던 차에 회사 자료실에서 20여 권 되는 책을 차례로 빌려와 나눠 읽으며 주말 실탄을 장착하여 서로 뿌듯해하곤 했었는데... 그때 아내가 글을 한번 써 보라고 권해줬었다. “나름 글을 잘 쓰니 한번 써 보는 게 어떻겠냐.”라며 말이다.


천성이 게으른지라 “나 말고도 글 잘 쓰는 사람은 많다.”라고 지나가는 말로 대놓고 거절을 했으나, 나름 소싯적 키보드 워리어로의 활약상도 있었고, 오그라드는 싸이 시절의 장문 경험도 있던 터라 그냥 썩히긴 조금 아까운 재주인 글쓰기를 어쨌든 해 보는 게 나을 거란 생각이 조금은 들었다. 단순하게 개발새발 읽은 글 발췌 정도로만 끝내자니 그게 남을 것 같지도 않고, 만년필 잉크와 종이만 하릴없이 낭비되어 어느 구석에 처박히다 끝날 내 독서의 흔적도 좀 아깝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그래서 누가 보는 것과는 상관없이 서평 비슷한 것을 해보려 했다. 문제는 뭘 쓸것이냐인데... 단순한 책 요약이나 발췌문, 서평으로는 그다지 의미가 없어 보였다. 정보글 혹은 누군가의 대학 과제 표절용으로는 괜찮겠으나, 내게 의미 있는 것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그러던 차에 구석에 처박아 뒀던 책 한 권이 보였다. 섬광이 비치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어쨌든 제목은 꽤 섹시하게 뽑은 것이 <히틀러의 비밀서재: 한 독서광의 기이한 자기계발>(티머시 W. 라이벡 저, 글항아리)이었다. 문자 그대로 세상을 나쁘게 뒤흔든 한 인간의 생각을 사로잡은 책들과 그의 사고체계를 풀어본 글이라 생각이 드는데-아직 읽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나란 인간을 반추해볼 수 있는 좋은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 또한 이런 방식을 차용해 보면 어떨까 했다. 물론 앞으로의 썰은 전기식으로 풀진 않겠지만 말이다.


아마 나란 인간을 구성할 수 있는 여러 주제, 혹은 해시태그와 읽은 책의 내용 등을 엮어서 썰을 풀게 되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깊이 있는 글을 남길 것도 아니고, 나 자체가 심각한 인간도 아닌 데다, 뭔가를 전문성 있게 풀만한 깜냥이 있는 것도 아닌지라 그냥 재미로 책 좀 읽고, 읽을 때의 단상이나 감정, 그리고 그 시점과 연결된 무언가를 엮어서 노가리를 까는 방식으로 글을 남기지 않을까 싶다. 당연히 누군가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하지는 않겠지만, 의도치 않게 약간씩은 노출되어 그들의 사회적 평판에 조금의 기스는 갈 수도 있겠다. 허나 어쩌겠는가. 내 글이 브런치 같은데 올라간다한들 누가 본다고(그런데 정말 올리게 되었다.).



누가 본다고


2015년 초였을 거다. 시보를 갓 뗀 시점이었는데, 경리계장으로 K사무관이란 양반이 2014년 12월에 왔었다. 온 지 한 두 달 남짓도 안된 양반이 갑자기 사무실로 쳐들어와서는 “왜 책을 내지도 않았는데 돈을 줬냐.”라고 쿠사리를 주고는 사라졌다. 뭔 소리인가 하면, 전년도에 예산 지출은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책이 나오지 않아 우선은 가제본을 하고 진짜 책을 만드느라 용을 쓰던 상황에서 그가 실물이 나오지 않아 그걸 가지고 시비를 건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사람이 무슨 대의명분을 갖고 그런 것이 아니라 원래 뭔가 틈이 있으면 그걸 빙자해서 한번 야부리를 털고 야지를 놓은 다음 다른 콩고물을 원하는 게 버릇이었던 사람이었던 건데... 그걸 내가 몰랐다. 참고로 내 사업은 아니었다. 입사 동기 K모 선생이 연말에 병으로 입원하는 바람에 부서에서 지출처리만 대충 해 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사무실을 헤 집어 놓으면서 가제본 된 책을 흔들었는데, 그때 이 말을 남겼다. “이걸 누가 본다고.” 그러면서 그냥 책이나 내지 뭘 그렇게 열심히 하느라고 일정을 지연시키냐 라는 요지의 말을 남기며 슬리퍼를 끌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덧 7년 차 공무원이 된 지금, 나는 요즘도 그의 말을 되새기며 글을 남겨본다. “누가 본다고.”


나도 보고, 또 나를 사랑해주는 몇 명은 보겠지만, 사실 널리 퍼질만한 것은 아닐 거라 본다. 그래서 좀 더 편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래, 누가 본다고.



의식의 흐름대로


아직 과문하여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지는 못했다. 다만 소위 ‘의식의 흐름 기법’ 만큼은 뭔지 이해가 안 됨에도 뻘소리를 쓰기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 또한 1인칭 시점으로 글을 써 나가긴 하겠지만 글을 쓰다 막히면 언제든지 의식을 초탈해가며 흐름에 맡기면서 썰을 풀어 나가지 않을까 싶다.


석사논문도 그렇지만, 내가 쓴 글이나 추진했던 사업들의 특징은 전체적으로 ‘용두사미’였다. 논문도 서론만 읽어보면 이런 대학자가 없지만, 본론에선 1차 자료 숙지가 안되어 갈 길을 잃었고, 결론은 본문 요약은 고사하고 제언이나 시사점도 못 찾게 되는 용두사미는 고사한 용두충미의 지경이었으니 뭐 할 말이 있겠는가. 그래도 이왕 시작은 했으니, 한번 신나게 썰이나 풀어보련다. 박사는 돈이나 체력 등의 문제로 쉽진 않을 테고, 이거로라도 뭔가를 정리해 보는 것도 스스로에게 정리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얼마나 시간을 내어서 써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40대에 시작하는 새로운 부캐 하나가 추가되는 것에 의의를 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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