빻지 않은 영화보다 빻은 영화들이 더 많다.
한국 영화에는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가 희소하다. 얼마나 희소하냐면 필자의 경우,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할 때 떠오르는 캐릭터가 11년 전에 개봉한 2006년작 <타짜>의 정마담뿐이다. 정마담이 나올 당시엔 한국에 그런 캐릭터가 전무했다. 정마담은 아름다웠고, 능력은 출중했고 엔간한 사람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업계에 처음 발을 들이는 신입-고니에게 외제차를 선물하는 장면도 흔히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업계 신입에게 비싼 선물을 해주는 역할은 대체로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먼저 고니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 것도 정마담이다. 유혹을 기다리는 여성 캐릭터가 주류를 이루던 당시에 먼저 유혹을 뻗치는 누님의 등장이었다. 정마담 같이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이후에 나왔나, 하면 잘 모르겠다. <타짜>이후 최동훈 감독이 만든 <도둑들>의 김혜수 캐릭터는 퇴보했고, 전지현 캐릭터는 이뻤지만 매력적이진 않았다.
이후에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려는 노력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만 그다지 기억에 남는 캐릭터는 없다. 필자가 기대했던 작품 중 하나는 정병길 감독의 <악녀>다. 감독을 보고 기대했다기보다는 제목 때문에 꽂혔었다. 그런데 이 작품 속 여성 캐릭터는-영화와 마찬가지로-처참할 정도로 매력이 없다. 주인공인 여성 캐릭터는 자신을 감시하던 남성에게 손쉽게 사랑에 빠지고, 그 와중에 자신이 한 때 사랑했던 남자 때문에 흔들리고, 자식을 잃은 슬픔 때문에 각성한다. <악녀>의 악녀를 요약하자면, 남자에 쉽게 흔들리면서도, 한 때 관계했던 남자를 잘 잊지 못하고, 모성애가 가득한데, 칼을 잘 휘두르는 사람이다. 빻은 남성들이 좋아할만한 여성상을 다 박아놓고 정병길 감독은 그 여성에게 "악녀"라는 라벨을 붙였다.
칼 좀 휘두르고 사람 많이 죽인다고 악녀가 되는 게 아니다. 액션을 베이스로 한 영화에서 살인정도는 악한 일이라고 보기도 어렵지 않은가. 특히나 아동납치 및 살인을 한 사람들을 죽이는건데? 이 영화에 자경단에 대한 어떤 성찰의 흔적이라도 있으면 "악한 자를 살인하는 것은 옳은가"라는 맥락이라도 찾아내서 그녀의 살인을 '악한 일'로 분류할 수도 있겠으나, 영화에 그런 성찰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어처구니 없이 어설픈 영화다. 참고(라 쓰고 표절이라 읽는다)도 어마무시하게 많이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거의없다 아조씨가 잘 다룬 영상이 있으니 그것으로 대신하겠다.
한국 영화에서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발굴하는 것은 한국 영화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사치스러운 작업이다. 정상적인 여성 캐릭터조차 찾기가 힘든 게 지금 한국 영화판의 현실인데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찾으라니? 일단 정상적인 여성 캐릭터부터 요구하는 게 왠지 순서가 맞는 것 같다.
요즘 한국 영화들에서 여성들은 알몸을 보여주고 신음을 기깔나게 내며 또 죽음으로써 남성을 각성시키고(<리얼>), 시체이자 성범죄 피해자로서 남성에게 업무를 부여하고(<VIP>), 환자이자 정신이상자이자 매드사이언티스트로 등장하기도 하고(<유리정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남자에게 도움받기 위해 존재하기도 한다(<부산행>). 요는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여성 캐릭터를 찾기가 힘들다는 거다. 요즘 한국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욕심도 야망도 의욕도 없다. 아직 보지는 않아서 조심스럽지만, 평들을 보아하니 <미옥>도 비슷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 글은 한국의 영화 감독들이 여성을 어떻게 활용하는 지를 다룬다. 한국 영화 속에서 여성들은 빌런이 얼마나 쓰레기인지 보여주기 위해 희생되거나, 서비스신에서 알몸을 보여주기 위해 전시된다.
1. 남성 빌런의 악함을 보여주기 위한 피해자로서의 여성
<VIP>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여성은 납치된다. 이 여성은 알몸인 남성 넷에 둘러쌓여 성적으로 농락당한 뒤 살해되는데, 감독은 그 과정을 생략의 과정 없이 일일이 다 보여줬다. 그 디테일한 연출은 이종석이 연기한 사이코패스가 얼마나 개또라이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감독이 채택한 전략인 건데, 연출적으로 딱히 효과적이지 않고 불필요했으며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다 보여주는 식의 연출이 효과적이지 않은 이유는 몇가지가 있다. 일단 그런 식의 연출은 지금까지 우리가 많이 봐왔던 것이다. <악마를 보았다>(2010)에서도 김지운 감독은 살인-강간 장면을 일일이 다 보여죽, 권형진 감독은 <함정>(2015)에서 강간 장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다 보여주는 연출은 흔하디 흔해서 관객에게 신선한 감흥을 주지 않는다. 더 적나라하고 더 잔인하게하면 뭔가 특별해보일거라고 착각하는 것 같은데, 네버다. 이런 식의 연출을 극리얼리즘으로 쳐줄 수도 없는 게, 영화는 또 조올라 현실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악마를 보았다>의 최민식이 솔까 인간계냐고.
또, 여성에게 성적 학대를 하고 살인하는 살인마 역시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캐릭터다. 그런 흔한 캐릭터를 영화에서 보여주려면 신선한 연출로 보여줘야 한다. <세븐>의 그 살인마는 살인과 강간을 일삼았지만, 그가 직접 범행하는 장면은 1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범죄 현장을 통해, 범죄 현장을 담은 사진과 기괴한 음악을 통해, 그리고 그 캐릭터의 연기를 통해 그 살인마가 리얼 미친 또라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연출의 힘이다. <양들의 침묵>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 후반으로 가면 한니발 렉터가 결국 경비의 코를 뜯어먹으며 괴물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이기 전에도 그는 일반적인 인간으로는 보기 힘든 아우라를 풍긴다. 역시나 연출의 힘이다. 한니발 렉터를 연기한 명배우 안소니 홉킨스와 명배우이자 성범죄자인 케빈 스페이시의 연기력도 한 몫했겠지만, 감독들의 기깔나는 연출이 없었다면 그들이 연기력을 뽐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2. 남성의 성적 쾌락을 충족시켜주는 나체로서의 여성
<클레멘타인>과 함께 향후 최소 10년간은 언급될 수준의 명작이자 망작 <리얼>에서 이슈가 되었던 것은 두가지다. 하나는 영화의 퀄리티고 나머지 하나는 송유화로서 연기한 설리의 노출신이다. 나는 영화 제작에 참여한 인물들이 설리의 노출로 노이즈 마케팅을 하려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영화에서 설리의 몸은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하게 노출되고,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불필요하게 쩝쩝대며 시끄럽게 남주의 피너스를 빨기 때문이다. 여자 알몸 보려고 관객들이 영화관에 올 것이라는 모자란 계산을 했으니 불법 유출된 노출신이 인터넷에 돌아다닐 때 기겁하며 아는 기자 몇 불러다가 법정대응할거라 온 동네방네 떠들지 않았을까? 아님 말고 ㅇㅇ
송유화 외에도 또다른 여성 캐릭터가 있는데, 그 여성 역시 알몸으로 등장해서 가면 쓴 오토튠 새끼와 섹스하는 역할이다. 그녀의 신음소리는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일본 포르노의 그녀들처럼 불필요하게 격하다. 방울을 단 놈은 따로 있던 것 같은데, 오토튠 새끼도 뭔가 피너스에 장난질을 한건가? 중요한 건 영화 속 그녀들의 노출이나 시끄러운 사까시나 격한 신음이 불필요하다는 거다. 그것들은 스토리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영화를 이런 식으로 비판하는 건 뭔가 웃기기도 하다. 영화가 워낙 혼돈의 카오스인지라 불필요한 장면과 필요한 장면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개연성을 지적하려면 완결된 스토리가 존재해야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 완결된 스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즉, 모든 부분에서 개연성이 실종된 상태이기 때문에 특정 부분을 언급하며 "이 부분은 개연성이 없다"라고 말하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 영화의 노출신이 불필요했다는 거다. 왜? 없어도 영화 전개에 전혀 문제가 없거든.
여성의 알몸이 영화에 등장하는 게 엄청나게 나쁜 일이며 금기시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필요하면 여자 가슴도 나올 수 있고, 남자 곧휴도 나올 수 있어야한다. 최근에 개봉한 <나의 엔젤>에서도 여성 주인공의 가슴이 나온다. 투명인간인 남주는 급격하게 성장한 여주의 몸을 신기하다는 듯 쳐다본다. 그 장면을 딱히 지적하지 않은 이유는 그 노출에는 개연성이 있었으며 알몸으로 등장하는 여성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받는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성적으로 대상화되기보다는 성숙한 여성으로서 가슴을 내보인다. 두 인물이 섹스를 할 때도 카메라는 여성을 섹시하게 잡으려하기보다는 오랜만에 만나 관계를 가지는 두 인물의 관계에 초점을 잡는다.
그런데 한국 영화 속에서 여성이 섹스하는 장면이 나올 때 감독의 시선에서 그런 종류의 존중은 찾기 힘들다. <순수의 시대> 속 안상훈 감독의 카메라는 강한나의 몸매를 강조하며 관음하고 <방자전>, <후궁>, <인간중독>에서 두 여배우에게 노출신을 준 김대우도 비슷한 짓을 했다. <강남 1970>을 찍은 유하 감독도 마찬가지다. 이런 케이스는 너무 많아서 다 언급할 수도 없을 지경이다.
빌런이 미친 싸이코패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살인 과정을 일일이 보여준 감독들을 위에서 언급했다. 그들은 빌런을 '악마'로 보여주기 위해 그런 한심하고도 직설적이면서도 불편하지만 정작 효과도 없는 연출을 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감독들은 두 인물간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섹스라는 소재를 선택한다. 흥미로운 건 여기서도 연출에서 디테일(?)을 추구한다는 거다. 살인했다는 사실만 전달하기보다는 그 과정을 빠짐없이 다 보여주듯, 여자를 벗기는 감독들은 두 남녀가 섹스를 할 때 어떤 체위로 섹스를 했는지, 여성의 몸매는 얼마나 아름다우며 어떤 신음 소리를 내는 지를 조온나 집중적으로 조온나 길게 보여준다. 여기에 열 올릴 시간에 시나리오 디밸롭이나 처했으면 아카데미 수상도 따놓은 당상이었을텐데 영화를 사랑하는 1인으로서 적잖이 아쉬운 대목이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할 때 그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섹스를 하는 것까지는 딱히 나쁘지 않다. 앞서 언급한 <나의 엔젤>에서 두 인물이 섹스를 하는 것도 그런 의미다. 덜 성숙했던 두 남녀는 몇년 간 보지 못했고, 어른이 되어 처음 만난 뒤 어른의 일을 한다. 그런 의미의 섹스다. <나의 엔젤>의 정사신에는 하늘을 찌를듯한 신음 소리도 없고, 쩝쩝거리는 사까시도 없고, 여성의 팬티에 들어가는 손승헌의 손을 조올라 유심히 보여주는 <인간중독> 식의 변태 카메라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해, 연출력이 빈곤한 감독들이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섹스를 남발한다는 이야기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이 문제적 장면을 제하더라도 딱히 좋게 평가받지 못하는 이유는 악함을 살인으로, 사랑을 섹스로 표현하는 감독들의 빈곤한 연출력이 영화 전반에 묻어나기 때문이다. 빈곤한 연출력으로 무장한 영화가 잘 뽑혀나올 리가 있나. 감독들의 연출이 개선될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새로운 감독이 발굴되길 기다려야겠지. 다만, 이 빻은 영화들을 보고 "날 사랑한다면 나랑 섹스해줘"라고 말하는 빻은 인간들이 만들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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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문제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격한 걸 보여줘야한다는 감독들의 강박.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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