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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Oct 07. 2017

<청춘시대>가 귀한 한국 드라마인 이유


JTBC가 2시즌까지 이어오고 있는 이 드라마는 한국의 흔한 드라마들과는 가는 길이 다르다. 한국의 흔한 드라마들은, 안 그러던 tvN까지 합세해서 비슷한 물건들을 공장처럼 찍어내고 있다. 작가들이 하나의 원칙을 만들어놓고 합의라도 한 마냥.


<청춘시대>가 귀한  '한국 드라마'인 이유, 하나

우선, 한드의 성의 없는 편리한 연출을 문제 삼을 수 있겠다. 여기서 편리하다는 건 드라마의 상황을 알려주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장치를 도입한다는 의미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편리한 장치로는 혼잣말을 들을 수 있다. 한국 드라마의 캐릭터들은 드라마에서 혼자 있을 때 유독 혼잣말을 많이 한다. 드라마의 상황이나 캐릭터의 감정을 어떤 연출로서 설명하지 않고 오로지 혼잣말로 처리한다. 이게 왜 편리한 연출이냐면, 작가 입장에선(한국 드라마의 연출 파트는 사실 있으나마나한 존재이니 이 글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지 않겠다) 어떤 고민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미장센을 생각할 필요도 없고, 거기에 맞는 음악을 고민할 필요도 없다. 대사로 다 때워버리면 되니까.


어떤 상황이나 감정을 보여주고 싶을 때 한국 드라마의 작가들은 캐릭터에게 스토리나 감정선을 대사로 처리한다. 예를 들어 저 남자가 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보여줄 때 한국 드라마는 남자에게 대사를 준다. 그런 식으로 하면 스토리가 전달은 된다. 저 남자가 저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 자체는 시청자에게 전달된다. 그런데 이런 식의 스토리텔링은 캐릭터에게 감정 이입하기 어렵게 만든다. 작가가 그저 떠먹여 주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시청자 입장에서 당황스럽다. 어 정말? 쟤가 쟬? 알았어..너가 그렇다는데 그런 거겠지..


게다가 배우의 눈빛이나 행위로 보이지 않는 사랑이 대사만으로 때워질 때 그런 사랑은 별로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사랑이 언제부터 말만으로 전해지는 것이었나? 혼잣말로 확인되는 어떤 캐릭터의 사랑은 작가와 관객 간의 합의가 있기에 드라마에서 성립된다. 레슬링 선수들이 표 팔려고 게임하기 전에 서로 으르렁대는 것을 보는 시청자의 입장과 비슷하다. 우리 모두는 쟤네 둘이 으르렁대는 게 마케팅을 위한 구라란 걸 알지만 그럼에도 속아준다. 하지만 감정이입이 쉽진 않다.


게다가 혼잣말로 처리해버리는 스토리텔링은 비단 시청자만을 모독하지 않는다. 이건 작가가 배우 따위 하찮은 존재들과는 협업할 생각이 없다는 강력한 선언과 다름없다. 한 캐릭터를 담당하는 배우에게 연기할 기회는 주지 않고, 그저 작가가 주는 대사 몇 줄만 읊게 만든다는 건 배우 입장에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배우는 상대역에게 사랑을 담을 눈빛을 전할 기회를 얻어 꽁냥꽁냥 할 기회가 주어져야 캐릭터로서 어떤 종류의 사랑을 시청자에게 공감시킬 수 있다. 그런데 혼잣말은 배우가 연기할 기회를 날려버리고 더 나아가 관객이 이입할 기회도 날려버린다. 어디서 본 듯한 스토리와 대사를 자기 고유의 것인 양 뽐내는 작가에 의해 배우의 연기는 발휘되지도 못하고 휘발되고 시청자는 드라마의 스토리에 이입하기보다는 학습하게 된다. 뭘 위해서? 편하잖아. 대사로 때우면 완전 편하다고.



대사만으로 퉁치는 식의 연출은 비단 캐릭터의 감정을 보여주는 데에만 쓰이는 건 아니다. tvN의 <명불허전>에서 김남길이 연기한 허임이 얼마나 뛰어난 한의사인지를 밝힐 때 작가가 가장 먼저 쓰는 건 대사다. 얼마나 뛰어난 한의사인지를 어떤 캐릭터의 대사를 통해서 주입시키는 거다. 그 대사는 불필요한 것이었다. 왜냐면 조금 뒤에 슈퍼히어로 허임이 마블 코믹스 뺨따구 때리는 침술로 사람들을 살려대는 걸 보게 되니까. 


순서가 바뀌었어야 했다. 허임의 행동으로 시청자를 한 방에 설득시킨 뒤에, 그다음 대사라는 양념을 쳤어야 했다. 그런데 뭐 보여준 것도 없으면서 대뜸 "쟤 존나 위대한 의사임 ㅇㅇ"하는 건? 작가의 근거 없는 주장이다. 설득력이 없다. <본 아이덴티티>는 제이슨 본이 얼마나 싸움을 잘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본을 벤치에 재운다. 무장 경찰 둘이 그를 깨우고, 당황한 본은 그들을 순식간에 제압한다. 게임 끝이다. 제이슨 본은 존나 짱쎄다. 감독 덕 리만은 존나 짱 쎈 제이본을 일단 보여준 뒤 그다음 대사로 양념을 쳐준다. 국가에서 겁나 투자해서 만들어낸 병기라는 식으로. 최근에 개봉했던 <베이비 드라이버>는 어떤가? 우선 베이비가 기깔나게 운전하는 걸 보여준 뒤에 대사를 친다 "쟤 운전 개잘함 ㅇㅇ" 물론 양념이 없어도 우리는 걔네들이 싸움 잘하고 운전 잘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양념 덕에 그들의 능력이 왜 뛰어난 지 알 수 있게 되고, 예전부터 한 가닥 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그들의 능력을 더욱 높이 평가하게 된다. 이는 차후에 있을 그들의 활약을 더욱 설득력있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청춘시대>엔 혼잣말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거의'라고 하는 이유는 혼잣말하는 캐릭터를 봐서라기보다는 내 기억이 정확치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단 내 기억 상으론 <청춘시대>의 캐릭터가 혼잣말을 하는 장면은 없다. 혼잣말은 없지만 한 캐릭터가 자신의 생각을 나레이션이라는 형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이 나레이션은 앞서 언급한 한국 드라마의 혼잣말과는 전혀 다른 기능을 한다. 스토리의 전달이나 캐릭터의 감정 설명은 오로지 배우와 연출에 의해 이루어진다. 나레이션은 모든 일이 마무리된 뒤 그에 대해 캐릭터가 의미부여를 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일종의 교훈을 주거나 시청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식이다. 이전에 <청춘시대>에 대해 쓴 글에서 <청춘시대>가 미국 드라마 <Desperate Housewives 위기의 주부들>의 플롯을 따왔다고 했는데 이 나레이션도 같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위기의 주부들>에선 이미 죽은 사람이 네 명의 주부들의 에피소드에 대해 코멘트를 한다는 점이 다르다.  


<청춘시대>가 귀한  '한국 드라마'인 이유, 둘

우리는 지금 한국 드라마의 성의 없는 연출을 다루고 있다. 계속 가보자. 한국 드라마는 우연이 남발한다. 우연 빼면 스토리가 진행이 안될 정도다. 한 예로 한국 드라마에서 한 인물은 어디만 갔다하면 아는 사람이나 아는 사람의 지인을 만난다. 두 인물이 만나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까? 어딘가에서 우연히도 그 장소에 있던 누군가가 그를 본다. 아무도 안갈 것 같은 어떤 공간에 주인공이나 누가 가면, 신기하게도 또 아는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은 인연이 된다. 우연과 우연이 겹치니까 지들끼리 사랑에 빠지지 않을 재간이 없다. 나라도 그럴 것 같다. 어딜 가기만 해도 아는 사람을 만나면 인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재간이 있나? 


<명불허전>을 다룬 김에 계속 다뤄보자. <명불허전>에서 두 인물 중 하나가 죽을 위기에 처할 때 조선시대와 대한민국 시대(?)를 이동하는 건 뭐 드라마 설정이 그렇다고 하니까 지금 이 글에서는 문제 삼지 않겠다. 그거 아니어도 깔 건 넘친다. <명불허전>의 우연 남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조선시대에서 넘어온 한의사 양반이 화장실을 찾지 못해 한 주택의 벽에 오줌을 쌌는데 그 집이 하필이면 우연히도 한의원이다. 그런데 그 한의원이 아까 우연히 마주친 최연경(김아중) 아빠가 하는 한의원이다. 그런데 그 아빠는 우연히도 그 허임을 아는 사람이다. 초반 몇화만봐도 이 정도다. 뒤로가도 우연이 남발하는 스토리의 경향은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우연 남발은 한국 드라마의 DNA라고봐도 무방할 정도.


그런데 이런 종류의 우연 남발도 <청춘시대>엔 없다. 이 드라마엔 5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5명의 등장인물들의 동선은 정해져있다. 이들은 엉뚱한 곳에 가지 않는다. 윤진명(한예리 연기)은 직장에 가거나, 해체된 아이돌 그룹의 멤버 집을 가거나 하는데, 거기엔 항상 있어야될 인물들이 있다. 사원들이 있고, 아이돌 멤버가 있다. 직장에 갔는데 우연히도 엉뚱한 인물이 "어?"하면서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이나 주인공이 아닌 인물들은 있어야할 곳에 있다. 윤진명만 그런 게 아니다. 다른 인물들의 동선도 정해져있고, 거기에서 드라마가 발생한다. 한승연이 연기한 정예은도 볼까? 정예은은 대학을 가거나 친구들과 카페를 간다. 그리고 대학에선 대학에서 있을 법한 일이 발생하고, 친구들과 있을 때는 친구들간의 드라마가 발생한다. 같은 카페에서 계속 작업하는 결벽증 너드 남성과의 만남도 우연성이 약하다. 결벽증 너드 남성은 항상 거기 그 자리에 있으니까. 엉뚱한 인물이 개연성도 없이 들이닥쳐서 드라마가 전개되는 일은 <청춘시대>엔 없다.


<청춘시대>가 귀한  '한국 드라마'인 이유, 셋


마지막으로 이 드라마가 귀한 진짜 이유를 밝히고 싶다. 젊은 여성들의 삶을 이토록 진솔하게 담아냈던 TV 드라마는 지금까지 없었다(72초 TV의 <오구실>이 있긴하다만 웹드라마니까). 이 드라마에는 20대의 여대생들과 직장인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이 드라마에서 겪는 문제들 역시 여성들이 주로 겪는 것들이다. 스토킹, 낙인, 데이트 폭력, 납치, 직장 내 성희롱 등등. 그리고 이런 것들을 다루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드라마는 이 소재들에 대해 더 없이 훌륭한 성찰들을 보여준다. 특히 시즌1에서 윤진명이 레스토랑 사장에게 성희롱을 당할 때의 윤진명을 다루는 <청춘시대>의 세심함은 다른 드라마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무엇이다.


한국 드라마들은 대가족을 이끄는 가장이나 가장의 와이프의 고충을 다루거나, 대기업을 운영하는 회장님이나 그 자식의 고충을 주로 다룬다. 그게 아니면 뭔가 있어보이는 직업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의사, 변호사, 검사, 방송PD, 연예인, 뉴스 앵커 등등. 그나마도 저 프로페셔널한 직업들 끌어와서 시키는 건 연애다. 작가들이 저 직업들에 관심이 있어서 쓴다기보단 그저 장사하기에 좋기 때문에 쓴다는 강력한 증거다. 직업에 대한 연구도 안하고 각본을 써재끼니 정작 드라마가 나오면 직업은 그다지 의미 없는 무언가가 된다. 그러다보니 정작 스토리나 캐릭터가 눈에 띄는 드라마는 찾기가 힘든 실정이다.



장담컨데 <명불허전> 역시 드라마에 젠더 요소를 넣으려는 시도를 했다. 이게 페미니스트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김아중의 영향인지, 작가의 입김인지는 알 수 없다. 김아중이 연기한 최연경은 여자란 이유로 의사로 불리지 않아서 지겹도록 "전 의사입니다."를 내뱉는다. 그런데 그게 끝이다. 이 드라마는 지겹도록 이 점을 강조한다. 여자도 의사일 수 있다능!



이 전문직 여성은 의사이기도 한데 타이트한 힌 티를 입고 클럽도 드나드는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는 여성이란 것을 끊임없이 어필한다. 이 의사가 클럽을 가는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설정이고, 2017년인 지금에 와서 "여자도 의사일 수 있다" 말하는 건 설득할 필요도 없는 무엇이다. "여자는 의사이면 안된다"라고 말하는 꼰대들을 비판 대상으로 상정해서 드라마를 만들었다면 전략을 잘못 짰다고 밖에. 


게다가 누가봐도 이쁜 김아중을 의사로 내걸고 이쁘게 치장시킨 뒤에 클럽에 내보내는 것은 미모에 대한 강박으로 보이기까지도 한다. 드라마 상에서 최연경은 이쁘지 않아도 되는 캐릭터다. 그리고 김아중으로 배우를 채택한 이상, 그의 미모는 굳이 강조될 필요도 설명될 필요도 없다. 그런데 그를 클럽에 보냄으로써 그의 미모는 강조된다. 정작 강조는 되지만 스토리에 있어서 그의 미모는 아무런 기능도 하지 않기에 왜 굳이 강조되었어야하는 지 의문이 든다.


이따위로 젠더 요소 어설프게 섞으면서 정의로운 척 할거면 아예 하질 않는 게 좋다. 더군다나 전문직 여성이 클럽가는 장면은 별로 새로운 장면도 아니다. 16년 전인 2001년에 SBS에서 <로펌>이란 드라마를 방영했는데 거기에서도 서정이 연기한 전문직 여성이 1화 때(어이쿠 똑같네?) 클럽인지 나이트인지에 가서 춤을 췄다. 왜 갔냐고? 모르겠다. 뜬금없었다. 두 드라마의 두 인물이 클럽에서 춤을 춘 것은 스토리에 어떤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이다. 뭔가 있어보이게 캐릭터를 만드는 거. <명불허전>의 어떤 한의사는 심지어 검도를 한다. 역시나 스토리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 솔까 멋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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