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청춘시대 #데이트폭력
참 좋은 드라마인데 보는 사람이 없네?
<청춘시대>란 드라마가 정말 괜찮은 드라마라고 생각하는데 시청률이 1%도 안나오는 이 시점에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글을 쓴다. 난 이 드라마를 더 많은 이들이 봤으면 좋겠다. 단순히 내가 좋아해서라기보다는 훌륭한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드 <Desperate Housewives>와 <청춘시대>
내가 보기에 <청춘시대>가 벤치마킹한 드라마는 미국의 <Desperate Housewives>(이하 <위기의 주부들>)다. 각자의 개성들이 있는 여성들만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거기에 미스테리와 섹스와 인생 이야기를 담아놓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위기의 주부들>에선 어떤 집안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암시를 주면서 드라마를 시작하고, <청춘시대>의 한 여성 캐릭터는 "나는 사람을 죽였다"라면서 미스테리, 아니 떡밥을 던져놓는다.
다만 <위기의 주부들>과 이 드라마의 차이가 있다면 <위기의 주부들>은 중년 여성들이 주인공이었고, <청춘시대>의 주인공은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20대 청춘의 여성들이라는 것. 그런데 20대 청춘 여성들의 이야기가 시장에서 먹히느냐...하면 그건 아닌 거 같다. 이 글을 보강하기 위해 사전에 쓴 글이 있으니 아래를 참고하시라. (이 글을 쓰다가 저 글을 시작해 완성하고 다시 이 글을 쓴다(...))
<청춘시대>가 특별한 이유
이 드라마가 한국의 드라마 시장에서 특별한 이유는 지금까지 젊은 여성들의 입장에서 여성들의 삶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드라마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영화도 얼마 없다. 장진영이 출연했던 <싱글즈>가 그나마 여기에 해당될까?
<청춘시대>의 강이나는 남성의 스폰서를 받는 여성으로 등장하는데, 이런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 자체로 파격이다. 많은 영상매체에서 이런 인물들은 '스폰녀' 따위로 치환되며 소비되며 비난과 조리돌림의 대상이 될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비난의 대상이 될 때 불륜을 저질렀던 남성이나 스폰을 준 남성은 어디론가 증발해있다.
남성에겐 로맨스, 여성에겐 폭력
흔히 한국드라마에서 로맨스로 표현되는 남성들의 행동들이 있다. 그리고 그 행동들은 실제 현실에서도 남성들에의해 로맨스로 포장된다. 그 행동들은 대부분의 한국 드라마에서 남성의 입장에서 로맨스로 포장되지만, <청춘시대>에서는 여성들의 입장에서 그려진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한 남성이 자신이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여성의 집 앞에서 기다리는 행위
이 행위는 많은 한국 영화, 드라마에서 로맨스로 포장된다. 주로 다음과 같은 루틴을 따른다. 어떤 여성을 정말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연출되는 남성은 여성의 집 앞에서 여성을 기다린다(1), 기다리는 시간이 넘나 길다. 시침들이 마구 움직이며 페이드인, 아웃된다(2), 아깐 낮이었는데 어느덧 밤이다(3), 여성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집 앞에 있던 남자를 본다(4), 남성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감동받는 여성(5), 둘이 연애(6).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감독 유하)에서 한 남자(이정진 연기)는 한 여자(한가인 연기) 집 앞에서 그녀를 기다린다(1). 어이쿠, 비가 온다(2). 기다림이 빡세다(3). 그녀가 온다(4). 남자는 뭐라뭐라 말한다(5). 여자는 거부하는 느낌이다(6). 남자는 멀쩡한 벽에 주먹질을 하며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된 것인지를 보여준다(7). 여자는 그와 사귄다(8). WTF.
<말죽거리 잔혹사>는 그저 빙산의 일각인 교보재일 뿐, 위와같은 묘사는 한국 영상 매체에 완전 많다. 정유미, 에릭의 <연애의 발견>에서 에릭은 헤어진 여자친구의 작업실 앞에서 캠핑을 하곤 한다. 그리고 여성은 전남친이 매일 밤 자기 작업실 앞에 찾아오는데 공포를 느끼기보다는 아련한 느낌을 받는다.
집앞에서 기다리는 남성들의 '작업' 행위 ver.<청춘시대>
<청춘시대>의 '집 앞에서 기다리는 남자'시퀸스는 다음과 같다. 정체불명의 남자가 창문에서 보인다(1), 다음 날에도 보인다. 의심스럽다(2). 어느 날 한 여성(화영 연기)이 집 앞에 오자 그 남자는 그 여자에게 접근해서 자신의 마음을 받아달라고 한다(3). 여성은 그 남자가 누군지도 모르며 감동받지도 않고 경계한다(4). 그녀는 다시는 오지말라고하고 전화도 하지말라고 한다. 정체불명의 번호가 그녀의 폰에 계속 찍혔었다(5).
다른 날, 남자는 다시 나타난다(6), 남성은 여성에게 사랑하는데 왜 마음을 받아주지 않느냐면서 고백(?)을 한다(7).
여기에서 그려지는 남성은 '내가 널 사랑한다면 너는 날 받아주는 게 맞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다. 보통 이쯤되면 흔한 한국 드라마에선 여성이 남성의 고백에 감격하고 그의 사랑(?)을 받아준다. 여기에서 여성에겐 그닥 선택권이랄 게 없다. 남자가 자신을 사랑(?)해주면 여자는 그걸 받는 존재일 뿐이다.
이와는 대비되게 <청춘시대>의 여성은 '너가 날 좋아한다고 내가 널 받아줘야할 이유는 없다'라고 받아친다(8). 그러자 그는 왜 자신의 사랑이 진심이라는 걸 이해해주지 못하냐면서(이해해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새끼야) 그녀의 내밀한 비밀을 사람들 앞에서 공공연히 떠든다. 여성은 남성들에게 스폰을 받고 그들과 잠을 자는데, 그녀가 공공연히 밝히고 싶어하지 않을 게 뻔한 비밀을 소리 내어 떠드는 것이다. "지금 이나씨가 하고있는 건 매춘입니다!"라면서 그는 그녀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며 구원해주려 한다. (그는 어떤 훌륭한 연애칼럼가가 쓴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서도 흔한 한드였다면 그녀는 자신을 구원해주려하는 남성에게 감동받고 그 구원의 손길을 잡았을 것이나, <청춘시대>의 그녀는 구원의 손길을 거부한다(9). 그녀에겐 선택권이 있다. 남자가 자신을 좋아하건말건.
아래 링크를 들어가며 해당 장면을 볼 수 있다.
남성이 여성을 놀리는 행위
"남자는 좋아하는 여자들을 괴롭힌다"라는 말은 흔하게 돌아다닌다. 그리고 이 말은 괴롭힌 남자를 변호할 때 "걔가 널 좋아해서 그래"라는 식으로 쓰이고, 괴롭히는 당사자도 "널 좋아해서 그래"라는 식으로 자신을 변호할 때 쓴다. 그리고 남성들이 여성을 유혹하기 위한 이런 식의 '장난'들은 드라마에서도 흔히들 쓰인다. 우연을 가장한 채 실실쪼개면서 여자의 앞에 등장하거나 갑자기 밥을 같이 먹자면서 들이대는 경우가 여기에 포함될 수 있을 게다. 어떻게든 여성의 위치를 알아내고 찾아가는 거 보면 제이슨 본 뺨다구 수백번 때릴 수준이다.
<청춘시대>에서 한 남성 복학생이 신입생 여성에게 접근한다. 딱봐도 그는 그녀를 좋아하는 듯이 연출되는데, 그 때문인지(?) 그는 신입생을 괴롭히고, 놀리고, 밥을 먹는 데도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왜 콩을 안먹냐면서 계속 말을 건다. 그런데 정작 신입생 여학생은 그의 놀림을 좋아하기는 커녕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하고, 학교 선배에게 "대학에도 왕따가 있나요?"라고 물어보기에 이른다. 내가 뭔 말을 하는 지 알겠나?
다시, 남성에겐 로맨스, 여성에겐 폭력
<청춘시대>는 남성들의 판타지를 다루지 않고,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하는 폭력에 대해 다룬다. 여기에서 중요한 지점은 남성들은 자신들이 휘두르는 게 폭력인지 모른다는 것이고, 대부분의 한국 드라마들도 그게 폭력인지도 모르고 판타지를 양산하는 반면, <청춘시대>는 여성의 관점에서 그 행위들의 폭력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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