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관계 속 종교 문제를 중심으로
비종교인 애인에게 종교를 전파하는 문제
한 커플이 있다. 커플 중 1인은 종교를 가지고 있고 굉장히 종교에 열성적이다. 커플 중 나머지 1인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앞으로도 가질 일이 없을 거라 말하고, 종교에 비판적이다. 종교인 갑은 비종교인 을을 사랑하고, 을이 잘되길 바란다. 그리고 을이 잘되길 바라기 때문에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고있는, 혹은 자신의 존재를 충족시켜주는 종교를 을에게도 전파하고자한다. 적어도 갑의 입장에서 이는 건강에 좋은 음식을 사랑하는 이와 나눠먹는 것과 크게 차이는 없다.
하지만 종교와 건강에 좋은 음식 간의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갑은 을이 건강에 좋은 음식을 거부하면 그 선택을 존중하고 별로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을이 종교를 거부한다면? 이는 좀 더 무거운 문제가 된다. 종교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근원이고 '나'를 존재하게 해주는 근원이기에 종교와 갑을 떼어놓을 수는 없다. 반면에 건강에 좋은 음식과 갑은 얼마든지 분리가 가능하다.
갑의 입장에서 종교는 '좋은 것'이다. 그렇기에 신을 믿지 않는 을을 그 상태로 두는 것은 갑의 입장에서는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을이 종교라는 좋은 것을 누리지 않는 상태에서 계속 삶을 살고 있는 것 혹은 종교라는 좋은 것을 누리지 못하는 '불행한 상태'에서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그저 지켜만 보는 것은 갑의 입장에서 비윤리적인 행위일 수 있다. 그렇기에 갑이 을을 '더 나은 상태' 혹은 '불행하지 않은 상태'로 만들어줘야한다는 생각을 품는 것은 자연스럽다. 사랑하는 이가 더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랑인가 집착인가? 사랑에 가깝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집착이라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종교에 열성적인 사람들은 갑의 종교 권유를 사랑이라 여길 수도 있고, 종교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이들은 '집착'이라 여길 수 있다. 그리고 갑의 입장에서 이는 '사랑'일지라도 을의 입장에서 이는 '사랑'이 아닌 '집착'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한편, 갑의 종교 권유 방법론에 따라서 사람들의 판단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종교인 애인에게 무교를 전파하는 문제
위의 이야기는 종교인이 비종교인에게 종교를 전파하는 문제다. 그럼 반대로 비종교인이 종교인에게 무교를 전파하는 이슈는 어떨까? 비종교인 을은 종교인 갑을 사랑하고, 갑이 잘되길 바란다. 그리고 갑이 잘되길 바라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기에 비논리적이고 말도 안되는 종교를 을이 믿는 것이 '잘못'이며 '불행으로 이끄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을은 갑이 종교를 버리게 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이 갑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사랑인가 집착인가? 자신이 무교인 자는 을에 공감할 수도 있고, 종교를 가지고 있는 자는 이를 '집착'이라 여길 수도 있다(아닐 수도 있다). 또한 앞서 다룬 사례-비종교인에게 종교를 전파하는 사례-와 마찬가지로 무교를 권유하는 방법론에 따라 사랑과 집착을 가리는 사람들의 판단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여자친구의 통금 문제
종교를 빼고 다른 이슈를 생각해보자. 이는 종교에 대한 친밀감이나 거부감을 떼어놓고 연인에게 관여하는 문제를 다른 차원에서 생각하게 도와줄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여성의 통금을 다룰텐데, 통금에 대한 개개인의 생각들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 이슈에서도 앞서 다뤘던 종교 이슈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가지고 있던 관념이 우리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최대한 그런 선입견들은 제거하고 이 글을 읽는 것을 권유한다. 대체로 통금이 있는 것은 여성이기에 이 부분에서는 병을 남성으로, 정을 여성으로 정했음을 밝힌다.
남성인 병은 성인인 여성 정이 통금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 병이 생각하기에 성인이라면 마땅히 자신의 선택이 부모에 의해 좌우되지 않아야한다. 통금은 부모에 의해 성인인 정의 선택이 제약받는 것이기에 병은 통금에 부정적이다. 그렇기에 병은 정에게 "통금을 뭐하러 그 나이 먹어가면서까지 지키냐"면서 정의 행동을 바꿔나가려고 하며, 이는 정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이유로 통금을 지키는 여성 정을 그저 멀찍이서 지켜만 보는 것은 '방치'라고 생각하며, 방치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고 남성 병은 생각한다.
반면에 정은 지금까지 통금을 가지고 살아왔기에 통금에 별로 부정적이지 않다. 통금은 그저 자신의 삶을 이루는 여러 규칙 중 하나일 뿐이며, 성인이 부모의 말에 따르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부모의 말에 따르고 말고는 개인의 선택 문제이긴하다. 병은 병의 선택을 하고, 정은 정의 선택을 했을 따름이다.
그런데 이 때 남성 병이 정의 행동을 교정하려고 할 때, 이는 사랑인가 집착인가? 남성 병은 여성 정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의 행동에 간섭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세상의 모든 행위들은 행위자의 의도만으로 평가받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간섭을 당하는 여성의 입장을 생각해봐야한다.
여성이 그의 행동을 '사랑의 행위'로 여기고 그 남자의 말을 따른다면 딱히 문제될 게 없다. 통금을 주장하는 여성의 부모만을 제외하곤 모두가 행복해진다. 하지만 여성이 그의 행동을 '불필요한 간섭'으로 느끼고 그의 행위에서 어떠한 '사랑'도 느끼지 못한다면? 여성이 남성에게 통금에 대한 간섭을 하지 마라고 확실히 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이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고 계속 쿠사리를 넣으면 두 남녀의 관계는 급격히 식을 것이다.
관계가 먼저인가 '옳은 것'이 먼저인가?
한 때 무한도전에서 육아 전문가가 나와서했던 말은 여전히 내게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 그 육아 전문가는 건강에 좋은 음식을 거부하는 아이에게 음식을 '억지로' 먹여서 부모와 아이간의 유대감이 깨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런 음식을 먹지 않게하더라도 부모와 아이간의 유대감이 유지되는 것이 아이의 건강은 물론 부모와 아이간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부모가 '건강에 좋은 음식'이라는 '옳은 것'을 아이에게 강요한다면 부모와 아이간의 관계에는 금이 갈 것이다. 부모가 '너한테 좋은거야'라면서 아이에게 쉴 시간도 없이 '학원'을 무진장 다니게 하면 부모와 아이간의 관계는 또 한번 금이 갈 것이다. 요즘 인터넷을 보면 부모를 향해 "죽여버리고 싶다"라고 무섭게 말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이는 부모와 아이간의 유대감이 깨진 상황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뒤주에 갇혀졌던 것은 아닐까?)
부모와 아이간의 관계가 가지는 특수성은 분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에 있다. 그렇기에 한쪽이 한쪽을 증오할 수는 있을 지언정, 관계를 끝장낼 수는 없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여느 관계와 동일하게 차가워질 수는 있다. 남녀 관계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와는 다르게 분리가 가능하며 이를 '이별'이라고 한다(부모와 자식간의 '이별'을 표현하는 단어는 없다). 관계가 차가워지고 더이상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헤어지고 새로운 사람을 찾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부모 입장에서는 '어차피 그래봐야 니가 내 자식이지'하면서 '옳은 것'을 강요해도 표면적인 관계는 유지될 수 있으나, 남녀 관계에 있어서는 '이별'이라는 개념이 있기에 '옳은 것'을 강요할 때(input) 이별이라는 결과가 도출(output)될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한다. 강요는 필연적으로 관계에 금을 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서 다룬 '사랑이냐 집착이냐' 문제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나'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가 원치 않는 어떤 행위를 강요한다면 관계에 금이 갈 것이기에 누가 어떤 행위를 무엇으로 규정하는 지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결국 상대에게 '어떤 것을 하라'라고 할 때 '나'가 취하는 방법론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나'가 '그 사람'을 '그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존재하기를 원치 않게될 때 그리고 '나'가 그 사람'을 '나'가 원하는 방식으로 존재하기를 원하게 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은 상대와 상대가 존재하기를 원하는 방식을 존중해주는 것이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기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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