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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Nov 01. 2019

‘타다’의 혁신(?)은 누굴 위한 것인가?


이 글은 일간 박현우 14호, 5월 29일 수요일자로 배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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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발전과 그에 따르는 노동 환경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뜨거운 감자가 된다. 누가 직접 움직이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이는 컨베이어벨트는 대량으로 생산하면 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소위 규모의 경제를 가능하게 만들어줬다. 컨베이어벨트 덕에 기업가들은 더 적은 노동자-더 적은 비용으로 비슷한 혹은 더 많은 매출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기업가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겠지만, 와중에 공장에서 쫒겨난 사람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컨베이어벨트는 비단 노동의 양을 줄이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노동자는 한낱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컨베이어벨트는 노동자들이 한 번에 하나의 업무만을 하게 했다(링크). 똑같은 일을 반복하니 노동자들은 그 일에서만큼은 숙련되었고 그 덕에 공장은 더 많은 물건을 찍어낼 수 있게 되었지만, 노동자들은 자신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만들어내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저 나사를 조이거나 볼트를 조이기만 할 뿐 완성품을 보지는 못했으니까.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에서 소외됐고, 기계처럼 비슷한 일을 무한히 반복하며 인간성도 잃어갔다(링크). 이 점은 “자본론"을 쓴 막스와 “도덕감정론"을 쓴 애덤 스미스로부터 동시에 지적됐다.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면 그에 따르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기업가들이 생각하는 혁신이 노동자들에게도 혁신으로 다가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한국 기자들이나 경영학과에 소속된 교수 아저씨들은 ‘혁신’을 이야기할 때 기업가들의 입장에서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상한 건 아니다. 언론은 광고로 먹고 사는데 그 광고를 주는 건 노동자가 아닌 기업가들이고, 경영을 하는 건 기업가지 노동자가 아니니까. 


최근 택시-타다 논쟁에서 SBS-비디오머그 채널에 출연해 택시 기사에게 질문한 아저씨도 경영학과 소속이었는데 이 아저씨는 택시 기사들이 우버나 타다 등에 반발하는 것을 기계 파괴 운동으로 여겨지는 러다이트 운동과 유사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링크). 그는 이 과정에서 대단히 경영학과적이었다. 빵 하나 사먹기도 벅찬 임금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벌인 계급 투쟁 노동 운동인 러다이트 운동을 ‘신기술을 받아들이지 못한 노동자들의 철지난 몸부림' 정도로 퉁치고 넘어갔으니까.


본론으로 가보자. 택시 기사들이 타다 등 카풀에 반발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규제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길에서 볼 수 있는 개인택시를 몰기 위해서는 개인택시 면허를 구입해야한다. 가격은 대체로 1억에서 결정됐었는데, 기사들은 1억을 내서 택시를 운행할 권리를 구입하고 택시를 운행했었다. 은퇴할 때는 다시 면허를 팔아서 택시 운행 권리를 또다른 누군가에게 넘겨줬고. 일종의 보증금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타다 등 카풀이 등장한 이후로 면허 가격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택시와 달리 타다를 운행하기 위해서는 이렇다할 면허가 필요하지 않다. 면허가 필요한 택시를 운행할 바엔 싼 값에 타다를 운행하는 게 나으니 택시 면허를 구입하기보다는 타다를 운행하는 거다. 기사들 입장에선 억울할 수 밖에 없다. 본인들은 택시를 운행하기 위해 거액을 지불했는데 타다를 통해서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언젠가 택시 면허를 팔고 은퇴할 생각이었던 택시 기사들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1억이었던 보증금이 6~7000만원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는데 타다 등의 서비스가 더 대중화되면 팔리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택시 기사들이 본인들의 몸을 태우며 항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문제는 비단 한국에서만 터지고 있는 게 아니다(링크). 뉴욕, 파리, 로마, 요하네스버그, 케이프타운, 런던 등에서 동일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런던의 택시 기사들은 면허를 얻기 위해 수 년 동안 교육받고 수천 파운드에 달하는 돈을 지불한다. 또 이들은 모든 도로를 익히고 택시를 운행할 수 잇는 권리(면허)도 구입해야한다. 하지만 우버를 운행하는 이들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택시’를 운행할 자격을 얻는다. 뉴욕에서 택시 영업 허가(미댈리언)를 얻기 위해서는 2013년 기준 100만 달러를 내야하는데, 이를 갚지 못해 자살한 택시 기사들도 있다. 한국에서처럼 면허는 100만 달러에서 20만 달러까지 급격하게 떨어졌다.


그래서 대안은 뭔가? 서울시는 택시를 감차하기 위해 택시 면허를 직접 사들이고 있지만 여의치 않고, 다른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타다' 같은 업체가 택시 기사들의 면허를 구입해야한다고 주장한다(링크). 그런데 정작 ‘타다'와 ‘쏘카'를 경영하는 이재웅은 ‘타다'나 국가가 면허를 구입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거고, 택시 기사들이 면허를 팔지 않는 이유는 여전히 면허가 그들의 생계를 책임져주고 있기 때문이라 주장한다(링크).


나는 좀 입장이 다르다. 택시 기사들이 지금 면허를 팔고 있지 않는 이유는 가격이 너무 떨어졌기 때문이고, 팔려해도 사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논쟁은 여전히 핫하고, 어떻게 결론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택시 면허라는 그들의 거의 유일한 자산을 파는 건 도박이다. 면허의 가격이 다시 1억쯤으로 뛸 수도 있고, 더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니 결정이 쉽지 않다. 비슷한 조건 때문에 구입하는 자들도 고민이 깊을 것이고.


만약 결국 타다가 승리해서 택시 산업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면 어떨까? 이때 가장 기부니가 좋은 건 타다다. 개인 택시는 일종의 자영업이다. 개인이 노력하고, 개인이 운행한만큼 챙긴다. 물론 벌이에 따라 세금도 낸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택시를 버리고 타다를 통해 ‘택시'를 운행한다면? 타다는 기사들에게 10시간 노동을 시키고 10만원의 일당을 준다. 타다를 통해 일당을 받기는 하지만, 이들이 타다에게 고용된 건 아니다. 타다는 명목적으로 렌터카 업체라서 기사를 고용할 수 없다. 그래서 타다는 기사를 외주업체를 통해 구하는데, 정작 외주업체도 기사들을 ‘고용'하지는 않는다. 용역업체는 또다른 플랫폼으로서 기사를 타다에게 제공할 뿐이다. 많은 돈이 움직이지만 타다는 그 누구도 고용하지 않았기에 지는 책임은 제한적이다.


외주를 통해 인력을 운용하기 때문에 타다는 노동자(?)들에게 4대 보험을 보장하지 않아도 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해고할 수 있다. 가령, 타다는 사고를 냈거나 평점이 낮은 운행자를 언제든 내칠 수 있다. 근로계약서를 쓴 것도 아니기에 운행자는 군소리하기도 힘들다. 또, 타다는 카니발로 운행되는데, 만약 사고가 나면 운행자는 최소 50만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해야한다. 타다와 운행자가 사용자-노동자 관계였다면 사고시 발생하는 비용은 타다가 부담해야 하지만, 타다는 이런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 왜? 누구도 고용하지 않았으니까. 타다는 ‘명목적으로는' 운전자와 승객을 연결시켜주는 일을 할 뿐이니까(6월 10일, 타다는 사고시 부담을 운전자에게 전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냈습니다(기사)).


타다는 소비자들에게 좋은 서비스로 여겨진다. 성장 속도가 상당히 빨라 관련 서비스는 더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또, ‘기사는 승객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는 정책은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는 남성 택시 기사들에게 시달렸던 수많은 여성들에게 돈을 더 지불하고도 타다를 이용할 동기가 된다. 다만, 타다가 만들어내고 있는, 또 앞으로 만들 불안정한 고용 형태는 결과적으로 사회를 병들게 만들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안정적인 정규직은 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필수요소이자 복지다. 그런데 타다는 정확히 반대 지점 향해 달려가고 있다.


택시 기사들의 면허를 국가나 민간업체가 모두 구매하는 건 답이 아니다. 면허를 판매한 택시 기사들이 택시 대신 더 질 나쁜 형태의 직업으로 옮아간다면 이게 어떻게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겠나? 국가나 기업은 질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게 해야지, 질 나쁜 일자리로 사람이 모이게 해선 안된다.


타다는 렌터카 업체도 기사를 고용할 수 있게 법이 바뀌어야한다고 말한다. 만약 그렇게 되면 타다는 외주업체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고용을 할까? 난 잘 모르겠다. 왜 모르겠냐면, 타다와 같은 플랫폼 업체들이 직접 고용을 한 일을 그다지 본 적이 없다(링크). 타다가 다른 기업들과 달리 굉장히 선한 기업이어서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기사를 고용할까? 마음대로 자를 수도 없고 보험도 보장해줘야하고 사고나면-지금과 달리-본인들이 책임져야하는데? 한국에서 법으로 금지된 우버로부터 교훈을 얻어 법을 우회해 차량 공유 서비스를 만든 대단히 자본주의적인 타다가, 렌터카 업체도 기사를 고용할 수 있게 하면 경제적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기사를 고용할까? 정말? 내가 너무 의심이 많나? (일간 박현우 14호, 5월 29일 수요일자로 배포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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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지 5개월 정도가 지난 시점에 검찰이 타다를 기소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무면허사업자 또는 무허가사업자가 면허, 허가 대상 사업을 수행하는 경우 정부는 법령에 따른 단속 및 규제를 할 의무가 있다”“여객자동차운송사업의 면허 제도를 규정하고 있는 현행 법령상 타다가 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해 기소하게 된 것”. 기소가 완전히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제적이라고 해도 검찰이 칼을 쉽게 빼들면 안된다는 입장이니까. 법적인 해결은 마지막 수단이 되어야 한다. 


다만, 검찰 입장도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다. 정부는 이 문제에 있어서 너무 소극적이었다. 나름 검찰 입장에서는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질러버린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타다에게 어떤 자정을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타다는 어떻게든 사업을 하겠다는 집념으로 11인승 카니발을 구해다가 사람 한 명을 실어나르는 기묘한 형태의 사업을 하고 있다.


문 정부를 어떻게든 엿 먹이려고 이런 선택을 했을 가능성도 있기는 하지만, 검찰이 여러 수를 보고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보는 건 검찰을 너무 완벽한 존재로 보는 견해가 아닐까 싶다. 한국 남성 택시 기사들이 워낙 빻은 짓을 많이 해놔서 여론은 타다의 편이다. 검찰이 정말 여론을 등에 업고 문 정부를 저격하려 했다면, 타다를 공격하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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