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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Nov 06. 2023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스토킹을 정당화하는 방법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삼다니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인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라는 드라마가 드디어 공개됐습니다. 아마도 한국 최초로 정신병을 대대적으로 다루는 드라마가 아닐까 싶습니다. 굳이 한국을 기준으로 잡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신병원이 메인으로 나오는 드라마는 흔치 않습니다. 보통 미국에서 병원을 다룰 때는 외과를 다룹니다. 칼질로 수술을 할 때의 긴장감을 연출할 수 있고, 수술이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오는 짜릿함도 없지 않죠. 수술이 성공했다고 밝히는 주인공을 보여주고, 거기에 감격하는 환자의 친지들을 보여주면서 한 에피소드에서 감동을 이끌어내기도 쉽구요.

미국 드라마인 <하우스>는 다른 접근을 하긴 했습니다. 이 드라마는 병원 안에 있는 진단의학과를 다루죠. "병"이라는 미지의 빌런이 존재하고, 주인공들은 그 빌런의 정체를 찾아나가는 형사의 역할을 취합니다. 배경이 병원일뿐, 사실상 형사물에 가깝죠. 범인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범인이 에피소드 중간 중간에 '범죄'를 저지르며 환자를 괴롭힌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전통적인 형사물에서 범인은 에피소드 중간중간에 사람을 계속 죽이고 다니죠. 그래서 형사물에서는 연쇄살인마가 주로 메인 빌런으로 등장합니다. 희생자가 한 명이어선 극을 유지하기가 힘들거든요. 

미드 <ER>, <그레이스 아나토미>, <하우스> 등이 배경을 병원으로 잡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병원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오거든요.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오는 공간이니 작가는 그 새로운 인물들로 계속해서 새로운 에피소드를 써내려갈 수 있습니다. 시즌제 드라마들이 병원을 배경으로 삼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죠. 희로애락과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몇 안되는 곳이니까요. 

정신병원 역시 배경으로서 훌륭한 곳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곳에도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오는데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각각 다른 사연을 가지고 오죠.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만 봐도 '모'의 집착적인 사랑 때문에 본인이 혼자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게 된 사람, 대기업에서 수많은 업무를 떠맡다보니 공황 장애를 가지게 된 퇴사자, 상사의 가스라이팅 때문에 세상에서 본인의 역할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게 된 사람, 워킹맘으로서 너무도 힘든 삶을 살아오다보니 치매끼가 온 사람, 시험에 계속 떨어지다가 현실을 도저히 마주할 수 없게 되어 망상에 빠진 공시생 등이 등장합니다. 정형외과나 대장항문외과가 배경이었다면 이렇게 다양한 환자들을 드라마 에피소드에서 다룰 수 없었겠죠. 물론 작가의 역량에 따라 배경과 상관 없이 훌륭한 에피소드를 풀어낼 수는 있겠지만요.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좋게 평가하고 싶은 이유는, 이 드라마가 대놓고 정신병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정신병이나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가진 입지를 생각할 때, 정신병을 단순히 의지의 부족이라고 여기는 한국의 흔한 정서를 고려할 때, 이런 드라마가 나오는 건 높이 평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용기가 가상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넷플릭스가 아니면 이런 드라마는 나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구요. 

정신병에는 섬세하지만, 로맨스에는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정신병을 다룬다는 부담 때문에서인가,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로맨스가 들어있습니다. 원작 웹툰에 로맨스가 있는지는 모르겠고,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차하면 얼마든지 원작과 다르게 갈 수도 있는 부분이니까요. 그런데 이 드라마는 굳이 로맨스를 넣어서 대중성을 확보하려고 한 듯 보입니다. 정신병을 다룬다는 것에서 용기를 부리면서 살짝 앞으로 나아갔으나, 잠시 주춤하면서 뒷걸음친 결과가 이 로맨스가 아닌가 합니다.

이 드라마에서 박보영과 박보영의 친구와 대장항문외과 남의사는 삼각관계를 가지는데, 이 전형적인 삼각관계는 드라마에서 빠져도 전혀 문제될 게 없습니다. 또, 다른 플롯에서도 러브러브한 관계가 있습니다. 박보영의 과외선생이었던 의사 한 명은 박보영과 같은 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데, 이 역시 드라마에 그다지 잘 달라붙는 느낌이 아닙니다. 게다가 이 되도않는 로맨스를 다루면서, 드라마는 정신병을 다룰 때의 섬세함을 완전히 잃어버립니다. 정신병을 다룬 작가가 따로 있고, 로맨스를 다룬 작가가 또 따로 있었거나, 작가 안의 두 개의 자아가 다투다가 나온 게 이 전형적인 한국 드라마의 한남 로맨스가 아닐까 합니다. 아니면 연출가가 문제를 만들었을지도 모르죠. 정신병만 가지고는 드라마가 성립이 안된다면서 억지로 로맨스를 끼워넣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박보영을 욕망하는 두 남자의 삼각관계에 대해서는 그다지 코멘트할 게 없습니다. 이들 사이에서는 우연이 남발하는데, 우연이 남발하는 거야 한국 드라마의 종특이니 뭐 그러려니 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제가 문제 삼으려는 의사와 간호사의 관계 역시 다른 드라마에서 꾸준히 등장했던 문제적 장면들의 반복이긴 합니다. 하지만, 시대가 좀 변하지 않았나 싶어서 문제를 삼으려고 하는 겁니다.



여자 간호사는 남자 의사에게 반복적으로 말합니다. 싫다구요. "NO"하는 거죠. 그런데 의사새끼는 계속해서 구애를 합니다. 자기가 싫은 이유를 제대로 말해달라면서 계속 따라 붙고, 귀찮게 하죠. 어느 날, 의사는 간호사를 집까지 태워주고, 간호사는 자기 집으로 초대합니다. 가난한 간호사는 자신이 왜 부잣집 도련님인 의사를 만날 수 없는지 보여준다면서요. 그러면서 자기 집에서는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에, 남자는 갑자기 밖으로 나가더니 찬 물을 자기 몸에 들이붓습니다. 찬물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뭐 그런 의미로 한 거 같은데, 남자가 유치하게 구니 여자는 남자쪽으로 향합니다. 옷이 다 젖은 상태니까요. 그러자 남자는 자기에게 가깝게 온 여자를 끌어안고 키스를 합니다 여자는 수용한다는 듯이 손을 들어올려 남자 허리춤에 올립니다.

나열한 장면들의 문제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누가봐도 명백히 남자쪽에서 일방적으로 좋아하고 있는데, 남자는 그게 마치 로맨스라는 듯이 '거부'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매달립니다. 그리고 여자는 그 일방적인 남자의 차에 타기까지 하죠. 이는 남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행위입니다. 뒤에서는 자신에게 계속 따라붙는 남자에게 자신의 집 위치까지 알려주는데, 이 부분 역시 너무 이상합니다.

현실이었다면 여자는 남자의 집착에 공포를 느꼈을 겁니다. 집까지 태워주겠다는 남자의 차에 타지도 않았을 거고, 자신의 집까지 직접 초대도 하지 않았을테죠. 집에 도착한 뒤로는 남자가 자신의 몸에 찬 물을 끼얹은 뒤 갑자기 몸을 강제로 끌어와서 키스를 해대는데 여기에 거부를 하지도 않습니다. 현실에서 이랬다면, 과연, 어떤 여자가 이걸 그냥 받아주고 있었을까요? 나중에 이 남자는 여자가 초대하지도 않았는데 대뜸 집에 찾아옵니다(아래 이미지). 호러 그 자체죠.

이런 문제적 로맨스는 한국에서 고질적입입니다. 한국 드라마의 남자들은 집착적으로 여자에게 들이대고, 여자가 거부해도 또 들이댑니다. 한드의 여자들은 거부하지만, 남자가 집착하면 집착할 수록 여자의 마음이 흔들린다는 듯이 연출됩니다. 마치, 방 안의 바퀴벌레처럼 말이죠. 아래의 짤은 한국 드라마 남자들의 정수를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최근에 제가 본 한국 드라마 중, <사랑의 이해>도 이런 구조를 취했습니다. 항상 한국 남자를 연기하는 유연석이라는 배우는 이 드라마에서도 한국 남자를 연기했는데, 이 남자는 문가영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이 남자는 문가영네 집 앞에서 뻗치기를 하죠. 마치 그게 사랑이라는 것처럼요. 유연석은 이런 뻗치기 덕분에 다양한 정보를 얻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남자 주인공의 뻗치기는 게으른 작가의 게으른 태도의 발현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떻게든 어떤 정보를 남주한테 떠먹여줘야 하니까, 정보가 있는 곳에 남자를 떡하니 갖다놓는 거죠.


흥미로운 사실은 유연석을 제외하고도 다른 남자도 여주 집 앞에 뻗치기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문가영 입장에서는 두 남자가 자기 집 앞에서 뻗치기를 하고 있는 건데, 놀랍고 신비하게도 문가영은 전혀 놀라는 눈치를 보이지 않습니다. 공포를 느끼지도 않죠. 이 역시 스토커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연출입니다. 한국 드라마에는 이런 연출이 가득합니다. <또 오해영>에서도 이런 연출이 많았죠. 에릭이 연기하는 남자 주인공은 뭐만하면 여주 집 앞에 차를 대놓고 국정원 요원마냥 여자를 감시했습니다. 하지만 오해영을 연기한 서현진은 전혀 공포를 느끼지 않았죠.

많은 여성들이 스토커 때문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스토킹 때문에 공포를 느낍니다. 그런데 정신병을 다루는 드라마에서 스토킹 문제에 이렇게 나이브하게 접근을 해버리니, 그저 어이가 없을 따름입니다. 정신병을 다룰 때의 섬세함은 왜 로맨스를 다룰 때 사라진 걸까요? 역시 저는 다른 작가나 연출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분명히 누군가가 "연애가 빠지면 이 드라마는 너무 노잼이 된다"면서 작가를 압박하면서 억지로 되도않는 로맨스를 끼워넣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웹툰 작가가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를 반복했을 것 같진 않고, 전 연출가를 의심하게 되는 군요. 분명히 남자일 겁니다. 찾아보니, 이재규와 김남수가 연출을 했는데, 이재규 같은 경우 한국 드라마를 많이 만든 사람이군요. 역시 전 이 사람을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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