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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unemployment Oct 04. 2020

퇴사 2년 후기

첫 회사를 퇴사한 지 2년, 두 번째 회사를 퇴사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첫 회사를 퇴사한 후 공백기에는 별 생각이 없이 그간 미뤄뒀던 것들을 해치우며 신나게 놀았다. 돈은 생각하지 않고 일을 벌였고 앞으로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세상의 모든 직업, 일들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성별, 나이, 인종 불문 다양한 직업인들의 인터뷰를 넘치도록 읽고 봤다. 그리고 그들의 직업을, 인생을 엿보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고 어떤 직업이 나와 잘 어울리는지 콘텐츠를 파고들며 체험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쓸모한 글을 무지하게 많이 썼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점이 있었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니


내가 몇 년간 발 담그고 있던 회사에서 일하는 방식은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았다. 허울 좋은 회사의 브랜드에 숨어서 같은 업무만 하는데 지쳐서 도망쳤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것은 핵심 문제가 아니었다.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분석하자면, 먼저 오래된 회사의 영업직이다 보니 눈감고 넘어가 줘야 관행들이 눈에 보이면 가만 두질 못했다. 무슨 독립투사도 아니면서 나쁜 관행들이 내 일의 범위에서 벌어질 때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팀 막내였기 때문에 나쁜 관행을 쉽게 바꿀 수도 없었다. 차라리 무던해서 뭐가 뭔지 모르면 좋으련만 시장에 만연한 관행들이 눈엣가시처럼 자꾸 나를 괴롭혔다. 관행에 젖어들고 싶지 않았다. 관행을 눈감고 넘어갈 수 없어 좀 고생하더라도 정당하게 돈 벌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세상에 아주 작은 점 같은 가치를 남길지라도 그것을 기반으로 돈을 벌고 싶었다.


두 번째, 회사의 큰 성장을 눈으로 목격하기 어려웠다. 일하는 보람이 없었던 거다. 나는 일에 대한 보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것이 굳이 금전적인 것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므로 기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좋았다. 조직에 속한 사람들도 '이렇게 해서 잘해왔으니, 계속 이렇게 하면 잘될 거야'라는 생각이 만연했다.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려는 회사가 못 견디게 답답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했던 주된 업무는 내 손으로 일구는 대신 남들을 움직여서 성과를 만들어 내는 일이었다. 사실 남들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서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은 모든 직업에 해당된다. 싫다고 피할 수는 없지만 이전 직업은 내가 하는 일 대비 남을 하도록 만드는 일의 비중이 다른 직업에 비해 월등히 컸다. 거의 1:99의 비중 정도였다. 갓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에게 근사한 졸업장이 있다는 이유로 관리자의 업무를 맡긴 것이다.


특급호텔에서 1000명이 넘는 고객을 모셔야 하는 행사를 기획하면서 마케팅 팀원인 내가 하는 일은 APAC에 마케팅 버짓을 받고 행사 업체, 모객을 돕는 업체들에게 돈을 주고 진행사항을 보고 받는 일이 전부였으니, 말해 무엇하겠나. 행사의 포맷도 이전과 동일하게 진행했다. 발표자를 선정하는 부분도 이미 어느 정도 협의가 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하청업체에게 보고를 받고 윗선에 보고하는 일. 그것이 내 주된 업무였다. 계속 이런 상태니 어떤 캠페인을 진행한 후 내게 남은 게 별로 없었다.



물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돼서 지휘대로 움직여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싶었지만 처음부터 남들을 지휘하고 통제하는 일에만 익숙해지다 보니 불안해졌고 두려워졌다. 모래 위에 성을 짓는 기분이었다. 내 시야는 관리자에서 계속 아래로, 아래로, 손에 잡히는 실무를 하는 사람에게로 내려갔다. 반대로 내 실력에 비해 쥐고 있는 권력과 안정적인 연봉을 버릴 수 없었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서 다시 이 좋은 것들을 누릴 수 없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많았다.


업계에 따라 기업 간 hierchy의 모습이 서로 다르겠지만, 내가 있던 업계에서는 처음 어디로 입사했는지가 성골, 진골로 작용했다. 심지어 회사 내 부서 이동에도 어디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는지에 따라 앞으로 갈 수 있는 부서와 갈 수 없는 부서가 나눠졌다. 계급사회가 아닌 21세기 사회에 살고 있지만 회사 내에는 계급과 서열이 엄격했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임원단의 눈에 들지 않으면(거의 운에 속하는 일) 나보다 일을 많이 하고 심지어 더 잘하는 직원은 우리 회사를 감히 넘볼 수 없었다. 넘봤다가 우스운 꼴을 못 면하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사회에서 경험했던 세상의 가치가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였다. 밑으로 내려가자니 다시 지휘권을 가질 수없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업계를 초월해서 보자. 했다. 내가 속한 업계만큼 계급이 엄격해 보이지 않았다. 실력이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내게 허리를 조아리던 내 일을 처리해주던 하청 업체 사장님은 지휘권을 가진 나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다다르니 회사에서 내 손에 쥐어주던 지휘권, 관리권이 조금 덜 아쉬워졌다.



회사 밖에서 알게 된 점



회사 밖에서 나의 친구들을 곰곰이 따져봤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왜 나오는지 알 것 같았다. 멀쩡하게 잘 다니는 회사를 때려치운 나는 또래 집단에서 그저 돌아이였다. 스스로가 돌아이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이전 글에서도 많이 언급했으므로 그만하겠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아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좋은 평가, 칭찬에 익숙했다.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회사를 다니며 내 눈이 높아져만 갔다. 전국에서 성적 1%의 삶에서 시작하다 보니 웬만큼 좋지 않으면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다. 이미 내편인 것 같은 세상을 깨고 나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좋은 회사를 다녀도 재산은 상위 1%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거만했던 나의 시선을 다시 세팅할 수 있게 됐다. 성적이 아닌 재산으로 평가받는 사회라면 굳이 현재 사회가 내게 주는 정의나 평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돈은 나중에 벌어도 돼.


퇴사 후 콘텐츠를 파고들다 보니 브랜딩은 애플, 혁신은 넷플릭스 크리쉐 같은 공식이 깨졌다. 이미 성공한 궤도에 오른 글로벌 대기업보다 현재 브랜드를 일궈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작은 기업들을 관찰했다.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워가는 기업들의 콘텐츠를 보면서 처음부터 잘된 사람은 없다는 사실에 조금 안심하게 되었다. 시장에서 나라는 자산을 필요로 하는 BEP를 넘는 지점까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것을 넘어서기만 하면 다른 세상을 펼쳐질 것이다. 지금을 희생하면서 실력을 쌓으면 분명 BEP를 넘는 지점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생겼다.


처음에는 몸빵을 하면서 실력을 쌓아야 하는데, 매번 지름길로만 향하던 내 발은 고생이란 걸 몰랐다. 한마디로 나는 게을렀다. 앞으로는 어떤 것을 시작할 때 가장 밑바닥에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겠다. 당장 실력을 보여줄 수 없다면 재고 따질 것 없이 포트폴리오를 쌓는 요량으로 대가 없이 노동력도 기꺼이 제공하겠다. 눈을 낮춰 내가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기꺼이 몸빵을 하면서 공부하겠다. 게으름은 죄악이다.(유노윤호 마인드네. 역시 내 뮤즈다.) 내 시선을 바꾸고 마음가짐을 바꾸는데 2년이나 걸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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