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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Aug 25. 2023

연극 <영월행 일기>

2022년. 극단 좋은사람들 봄(여름) 마흔두 번째 정기공연.


취미가 연극이라 하셨는데, 그렇다면 어떤 역할을 연기해보고 싶으세요?


이런 질문을 받았던 적이 있다. 왠지 '살인마'라든가 '사기꾼'과 같은 대답을 기대하나 싶어, 아예 다르게 대답했었다.


음.. 글쎄요. 등장인물이 극 중에서 극적으로 변화해서, 극이 끝날 무렵엔 시작할 때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네요.


임기응변으로 이렇게 답해놓고 속으로 만족했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연극에 등장하는 주요 배역은, 거의 예외 없이 극 중에서 변화를 겪는다. 그러니 내 대답은 그냥 뻔한 대답이었다.


연극을 하는 사람들은 연극 안에서 배역이 되어 변화하는 것뿐 아니라, 연극을 반복 연습하고 공연하는 과정을 통해 현실에서의 스스로도 함께 변화하길 원한다. 사람과 세상에 대해 더 이해하고, 그로 인해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연극을 통해 가능하다고 믿는다.


<영월행 일기>는 바로 그런 연극쟁이들을 대변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 안에는 극중극이 두 개나 나온다. 하나는 조당전이 김시향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영월행 일기를 함께 연극으로 체험하는 것이고, 하나는 조당전이 신숙주의 하인으로서 조정의 상황을 실감 나게 겪기 위해 고문서 동우회 학자들로 하여금 해안지록을 연극으로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학자들의 연극은 학자들에게 단순히 연극 체험 이상의 것을 남긴다. 이동기는 한명회를 읽으며 한명회에 이입하고, 부천필은 신숙주를 읽으며 신숙주에 이입한다. 극중극에서 한명회와 신숙주의 대립은, 극에서 이동기와 부천필의 대립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그러는 사이 동우회장인 염문지가 세조에 이입함은 당연스럽다.


이동기가 한명회가 될 수 있고 부천필이 신숙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애초에 필연적으로 각각이 닮아서가 아니다. 이동기는 한명회를 맡았기에 한명회가 되었고, 부천필은 신숙주를 맡았기에 신숙주가 되었다. 이는 연극이 가진 힘이다.


나는 그 힘을 이번에 개인적으로도 체험했다. 배우로 합류하기 전 이 희곡을 한 번 스윽 읽었을 때와 비교하면, 갑자기 이동기 역으로 중도 합류하게 되어 이동기를 중심으로 희곡을 재차 삼차 읽고 외우고 궁리하면서는 새삼 달라지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어쩌면 텍스트를 가장 밀접하게 체감하는 방법은, 바로 그 텍스트를 연극으로 체험하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조당전은 김시향에게 <영월행 일기>의 연극적 체험을 제안한다. 자유를 꿈꾸는 신숙주의 하인이 되어, 한명회의 여종을 함께 해방시킬 심산으로. 그러나 현실은, 아니 연극은(이는 사실 극과 극중극을 이른다. 극중극은 이렇게 현실과 연극의 경계를 허문다.) 또한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영월을 다녀온 신숙주의 하인은, 마침내 바라던 자유를 얻자마자 다른 하인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그것을 본 한명회의 여종, 아니 영월행 일기를 체험한 김시향은 자유를 찾아 떠나기보다 주인에게의 종속 안에서의 안전을 택한다. 그렇게 연극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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