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은색 빛깔 미끄럼틀과 기업가정신

세 살배기 아들이 최고의 사업 스승이다

끼익, 끼익 꽈당~ 주르륵~... 아빠 재미떠여~



야밤에 놀이터에 나온 세 살 아들은 신나게 미끄럼틀을 타고 노는 중이었다. 그런데 타고 노는 모양이 조금 이상하다. 좀 더 큰 아이들이 타고 노는 높고 경사가 심한 미끄럼틀을 타는데, 그 경사를 겨우 겨우 올라가다가 꽈당하고 엎어지면서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이다. 


밑에서 3 발자국 정도까지는 성큼성큼 올라갔다. 거기까진 올라갈만한 경사인가 보다. 그다음부터는 미끄럼틀 양쪽 틀을 잡고 끙끙 올라갔고, 그러다가 힘이 빠져서 끝까지 올라가지도 못한 채 은색판 미끄럼틀에 엎어져서 주르륵 내려오는 것이다.


짜증내지 않고, 계속 올라가는 시도를 하는 게 기특해서 초반에 올라갈 때 슬쩍 엉덩이를 밀어줬다. 미끄럼틀 꼭대기까지는 너무 높아서 밑에서 밀어주기가 어려웠고, 사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혼자서 올라가는 맛을 아들이 느꼈으면 했기 때문이다. 




한 20번쯤 그렇게 반복했을까? 그래도 끝까지 못 올라가고, 엎어져 미끄러져도 아들은 깔깔 거리고 좋아했다.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제대로 미끄럼틀을 타고 똑바로 앉아 내려오지도 못하는데
뭐가 그리 즐거운 걸까?


아들에게 미끄럼틀 꼭대기는 목표 지점이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기도 했다. 꼭 도달해야 할 지점이기도 했지만,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상관없는 곳이었다. 거기까지 가다가 미끄러지는 그 어느 지점 역시 아들에게는 중요한 목표 지점이었다. 


과정을 즐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들이 미끄럼틀을 타는 모습을 보면서 체감하고 있을 때쯤 아들은 정말 힘들었는지 미끄럼틀 아랫머리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놀이터 전체 설계를 살피며 어둠 속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저기 멀리 계단이 있었다. 그 계단을 올라가면, 아주 높은 판을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그다음은 흔들다리가 있다. 그리고 그 높은 미끄럼틀 시작점이 있는 곳까지 어둠에 둘러싸인 다리가 있었다. 


아들은 씨익 웃더니, 그 계단을 향해 달려갔다. 두 팔을 양옆으로 뻗고 균형을 잡으며 계단을 아장아장 올라갔고, 가슴 턱까지 올라오는 높은 판을 꾸역꾸역 기어올랐다. 어둠 속에서도 아들의 눈빛은 반짝거렸다. 그다음 흔들 다리에 조심스럽게 한발 한 발을 맡겼다. 


아빠를 닮아 겁이 많은 아들은 어둠 속에서 용기를 내어 긴 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하고자 했던 그 높은 미끄럼틀 꼭대기에 서서 승리의 미소를 보였다. 나는 계단 밑에서 그런 아들의 모습을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멀리서 비추는 가로등의 빛으로 확인했지만, 세 살 아들은 확실히 중요한 이치를 깨달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아빠 내려가요~"하면서 은색 빛 미끄럼틀을 순식간에 타고 내려와서 나에게 안겼다. 터질듯한 행복감과 동시에 한아름 깨우침도 아들은 내게 안겨줬다. 




높은 목표 지점을 향해서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시도했던 아들, 넘어지면서도 웃고 즐기는 것을 잃지 않았던 아들. 그리고 휴식하면서 몸에 힘을 뺐을 때, 주변을 둘러보게 되고 멀리 돌아가지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발견한 아들.


단기간에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지름길만 파고들다가 지쳐서 나가떨어지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봐왔는데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여기에 다 담겨있었다. 


분명 지름길은 있다. 그리고 도전해볼 만하다. 하지만 당장 도달하지 못한다고 해서 실망하지 말자. 엎어져도 그 순간을 즐기자. 

충분히 시도했다가 힘이 빠졌으면 좀 편하게 쉬자. 힘을 빼고 주변도 한번 둘러보자. 처음엔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인다.

시간이 걸리고 멀리 돌아가더라도 지금 당장 본인이 무리하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해서 가보자. 

그렇게 돌아가는 길을 여러 번 가다 보면, 다리에 힘도 세질 것이고, 팔에 힘도 길러질 것이다. 

그때, 다시 지름길에 도전해보자. 처음에 즐겼던 마음을 잊지 말고..


내가 과거에 조급한 마음에 했던 실수들, 스스로를 자책하는데 시간을 다 보냈던 실수들, 그것을 반복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멘토링을 하면서도 반복되는 그들의 실수들 그리고 그것을 줄이기 위한 접근법. 그들에게 필요한 기업가 정신.


아들은 그 밤에 내 앞에서 굳이 미끄럼틀에서 엎어져 미끄러지면서 이것을 알려주려고 했던 것 같다. 세 살배기 아들이 최고의 사업 스승이다. 



구독해주세요! 기업가정신으로 접근한 신선한 기업가 정신을 배달해드릴게요!


무한대 부의 근원..


홈페이지에서 무자본 창업 가이드, 무료 뉴스레터 받기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거미 그리고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