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산이 나를 부르다

지리산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지리산을 다녀온 뒤에도
마음은 늘 산에 남아 있었다.
몸은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생각은 여전히 산길을 걸었다.

처음 종주를 마친 날,
나는 분명히 다짐했다.
“이제 끝이야, 다시는 안 올 거야.”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말이 점점 흔들렸다.

지리산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한 번 더 와라,
이번엔 진짜 너로 와라.’


며칠을 망설였다.
퇴근길 버스에서,
집으로 가는 골목에서,
자꾸만 그 산이 떠올랐다.

결국, 나는 결심했다.
고민하지 말자.
하고 싶은 건, 그냥 하자.


이번에는 혼자 가보기로 했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가벼운 배낭 하나, 단단한 마음 하나.

부산서부터미널에서 구례로 가는 첫 버스를 탔다.
창밖으로 여명이 번지고,
버스가 출발하자
그때 알았다.
이미 나는 다시 지리산으로 가고 있었다는 걸.


화엄사에 도착했을 때,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풀 냄새, 흙냄새,
그리고 바람의 결이 달랐다.

첫날 길은 길고 고요했다.
혼자 걷는다는 건,
누구에게 의지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온전히 나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누군가 말했다.
“산은 사람을 단련시키지 않는다.
다만, 그 사람 안에 있는 단단함을 꺼내줄 뿐이다.”

맞다.
지리산은 나를 시험하지 않았다.
그저 내 안의 용기를 꺼내주었다.


내 마음속 지리산이 말했다.
“괜찮아,
조금 늦어도 돼.
천천히 와도 돼.”

그 목소리에
나는 다시 발걸음을 내디뎠다.


지리산은 멀리 있지 않았다.

언제나 내 안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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