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난 길, 다시 지리산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혼자 떠난 길, 다시 지리산

새벽 2시, 눈을 떴다.
창밖은 아직 어둡고 세상은 잠들어 있었다.

밥을 하고, 빨래를 걷고,
보리차를 끓여 보온병에 담았다.
손끝이 따뜻했다.
그 온기를 품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지리산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보니
부산서부터미널에서 구례로 가는 첫차가 8시 30분이었다.
혹시라도 자리가 없을까 봐
가능한 한 빨리 도착하기로 했다.

지하철 첫차를 탔다.
텅 빈칸,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이
조금 낯설었다.
설렘이 가슴을 두드렸다.

집에서 터미널까지는 약 한 시간.
그 짧은 시간 동안
마음은 여러 번 산을 올랐다가 내려왔다.


매표소 직원이 말했다.
“8시 반이 첫차예요.”

시계를 보니 아직 한 시간이 넘게 남았다.
잠깐 당황했지만,
이 시간마저 괜찮았다.
떠나기 전의 여유, 그것도 여행의 일부니까.

터미널 안 도넛가게 불빛이 반가웠다.
따뜻한 커피를 시켰다.


지리산 종주 관련 글을 다시 읽고,
동호회 밴드의 사진을 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커피 향이 천천히 퍼졌다.
시간도 그 향처럼 부드럽게 흘렀다.


버스 안엔 승객이 다섯 명 남짓.
조용했다.
앞 좌석의 남자는 등산복 차림이었다.
지리산으로 가는 듯했다.

“기사님, 구례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구례는 무조건 세 시간입니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창밖으로 빛이 번졌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이제 정말, 지리산으로 간다.


밤새 설레어서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버스 안에서 자야지 했지만
눈을 감을수록 생각이 또렷해졌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들,
그리고 내가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의 자리.

지리산이 내게 묻는 것 같았다.
“이번엔, 진짜 너로 올 수 있겠니?”


지리산으로 향하는 길은 어쩌면, 나를 향해 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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