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에서 노고단으로 가는 길

— 그는 말했다, 산은 공평하다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지리산 종주의 시작은 구례 화엄사에서부터다.
그래서 나는 구례행 표를 끊었다.

하지만 도착 시간을 확인해 보니 조금 애매했다.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찾아보니
‘구례 터미널에서 화엄사로 가는 버스가 있다’는 글이 있었다.
그 말을 믿고 그대로 탔다.

버스에 오르니 앞 좌석에 남자 한 분이 앉아 있었다.
등산복 차림에 편안한 표정이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죄송하지만, 혹시 지리산 가시나요?
구례 화엄사까지는 어떻게 가세요?”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 이 버스가 화엄사까지 갑니다.”

네? 정말요?
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 버스가 종점까지 가는 줄 몰랐던 것이다.



구례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기사님이 나를 보며 물었다.
“안 내리십니까?”
“죄송해요. 화엄사까지 가야 하는데 몰랐어요.”

기사님은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단디 좀 봐야지.”

나는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하고
다시 교통카드를 찍었다.
그렇게 나는 화엄사로 향하는 버스에 다시 올랐다.



화엄사 근처 슈퍼에서 라면을 사려했지만
없었다.
부산 터미널에서도 팔지 않아 ‘여기서 사야지’ 했는데,
버스가 금방 출발해 사지 못했던 것이다.

당황한 내 표정을 보고
같은 버스에 타고 있던 그 남자가 말했다.

“뭐, 지리산 대피소에서는 서로 나눠 먹죠.”

그 한마디가 참 넉넉하게 들렸다.
그의 여유로움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풀렸다.


그는 백패킹 수준의 큰 배낭을 메고 있었다.
며칠 동안 지리산에 머물 계획이라고 했다.
나보다 훨씬 준비된 모습이었다.
그도 노고단 대피소까지 간다고 했다.

“평일이라 혼자일 줄 알았는데요.”
“그러게요, 동행이 생겼네요.”

그는 웃었다.
그 웃음이 묘하게 든든했다.



화엄사에서 노고단 대피소까지의 길은
생각보다 훨씬 험했다.
오르막이 이어지고,
발바닥이 돌에 닿아 아팠다.

“사람들은 이런 길을 새벽에 무박으로도 오른다던데요?”
내가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게요, 그렇게 무리할 필요 없는데요.
이렇게 좋은 풍경도 느끼며 걸어야 하는데.”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다시 말했다.

“산은 공평하잖아요.
여긴 높은 지위도, 낮은 위치도 없어요.
그저 모두 같은 길 위에서
자기 발걸음으로 오를 뿐이죠.
얼마나 공평해요, 그게.”

그의 말이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그래, 그렇지.
산은 누구에게나 같은 경사를 내어주고,
누구에게나 같은 바람을 보낸다.
결국 오르는 건, 내 발걸음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걸음으로 걷기로 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바람처럼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걸었다.

그의 배낭은 무거워 보였다.
내일 만날 일행들의 먹거리를 챙겨 온 듯했다.
내 배낭도 가볍진 않았지만,
그의 무게를 보니 괜히 민망해졌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식량이 좀 부족해서요.
라면이랑 제 망고주스 바꿀까요?”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죠. 지리산에서는 나눔이 제일 큰 맛이니까요.”

그 한마디가,
이 긴 오르막보다 더 따뜻했다.



은 공평하다.

하지만 그 길을 걷는 마음만은,

각자의 삶처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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