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나를 걸다

– 모든 오름의 끝에서 나를 만나다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모든 여정이 끝난 지금,
나는 다시 그 바위를 떠올린다.


차가운 바위 위에서
손끝으로 느꼈던 생의 온기.
처음에는 가늘게 내리던 안개비가
점점 굵어진 빗줄기로 변해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올랐다.
바위 위엔 빗물이 고여
물바위가 되어 점점 미끄러웠지만,
그 길에는 나를 이끌어 주는 리더가 있었고
뒤에서 조용히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두려움은 여전했지만,
그 속에서도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서로의 자일이 단단히 연결된 채,
우리는 함께 오르고 있었다.
두려움 속에서 피어오른 그 따뜻함 —
그것이 바로 생의 온기였다.


이제는 사진 속 풍경보다
그날의 공기, 그날의 숨결이 더 또렷하다.
등반 중에 들리던 자일의 마찰음,
손끝을 스치던 바위의 감촉,
함께하던 사람들의 “괜찮아요”라는 그 말들.
그 모든 것이 아직도 내 안에서 울린다.


나는 이제 안다.
등반은 단지 ‘오름’이 아니라
‘내려옴’까지 포함한 완전한 여정이라는 것을.
정상에 서는 일보다
하산하며 돌아본 산의 품에서
나는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산은 늘 나를 가르친다.
조급할수록 한 걸음 물러서라 하고,
두려울수록 발끝을 믿으라 한다.
그리고 외로울 때면,
하늘을 보며 ‘괜찮다’고 속삭인다.


돌이켜보면, 설악의 바위 위에서 배운 것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균형’이었다.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법,
미끄러져도 스스로를 다독이는 법.
그것이야말로 등반이 내게 남긴 선물이다.


삶 또한 그렇다.
누군가 앞에서 길을 열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혼자서 매달린 채 견뎌야 한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순간이 나를 단단히 세운다.


이제 나는 안다.
산은 단지 오르는 곳이 아니라,
내 마음을 묶어두는 자리라는 것을.
그 바위 위에서 나는
두려움보다 믿음을,
망설임보다 용기를 배웠다.


오늘도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일 하나를 매단 채,
삶이라는 벽을 천천히, 그러나 단단히 오르고 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비로소 나를 만난다.
흔들리더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그것이 내가 걸어온, 그리고 걸어갈
‘나를 걸다’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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