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언제나 나를 부른다
언제부터였을까.
멀리 보이는 산 능선만 봐도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 건.
누군가는 길을 걷는 일을 단순한 운동이라 말하지만
나에게 길은 늘 ‘삶의 또 다른 언어’였다.
길 위에서는 아무 말이 없어도 대화가 된다.
발걸음이 문장이 되고, 바람이 쉼표가 된다.
그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지리산 둘레길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그 길이 얼마나 길고 험한지조차 몰랐다.
그저 마음 한편에서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걸어보라, 네가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움직였다.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채, 나는 배낭을 꾸렸다.
그리고 어느 봄날, 낯선 마을의 흙길 위에 첫 발을 내디뎠다.
길은 나를 시험하듯 오르막을 내주었고,
때론 품듯이 안아주었다.
길 위의 나날은 쉽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멈춤’과 ‘기다림’을 배웠다.
그리고 ‘혼자’라는 말이
결코 외로움이 아니라는 것도.
지리산의 숲길을 걸으며 나는 수많은 마음을 만났다.
나를 걱정해 주던 사람들의 눈빛,
스쳐 가는 인연의 따뜻한 말 한마디,
그리고 고요한 숲이 들려준 오래된 위로들.
길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내가,
그 부름에 응답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야 안다.
길은 단지 어딘가로 향하는 선이 아니라,
내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또다시 길을 떠난다.
다시, 나를 만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