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자 걷기의 시작, 그리고 마음의 첫 발자국
— 혼자 걷기의 시작, 그리고 마음의 첫 발자국
지리산 둘레길.
그 이름은 오래전부터 내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동호회 게시판에 올라온 한 글 때문이었다.
“지리산 둘레길, 함께 걸을 분을 찾습니다.”
그 문장을 본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길을 찾아보고, 구간 정보를 정리해 보며
언젠가 꼭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혼자라는 이유로,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 후로도 지리산 둘레길은 내 안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일상 속에서도 그 이름이 자꾸 떠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지리산 둘레길 홈페이지에서 ‘길 친구를 찾습니다’라는 공지를 보았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오래 묵은 꿈이 다시 깨어났다.
처음의 시작은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였다.
함께 걷는 길은 즐거웠지만,
곧 알게 되었다.
이 길은 소리 많은 길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길이라는 걸.
그래서 다음엔 친구와
그다음엔 혼자
마지막 구간은 남편과 함께 걸었다.
여럿이 함께한 길도 좋았지만,
가장 깊이 남은 건 혼자 걷던 시간이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비로소 ‘나의 속도’를 알게 되었다.
2020년 5월 1일.
처음으로 받은 장기 휴가,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던 아침이었다.
길 전문가인 친구를 믿고, 아무 준비도 없이 산청 터미널로 향했다.
버스 창밖으로 흐르는 봄빛이 유난히 따뜻했다.
그때 걸려온 전화 한 통.
“미안해, 일이 생겨서 오늘은 못 갈 것 같아.”
순간, 온몸의 힘이 빠졌다.
왠지 불안했던 예감이 현실이 되었다.
‘이제 어떡하지? 다시 돌아가야 하나?’
터미널 벤치에 앉아 한참을 망설였다.
그때 떠올랐다.
예전에 구례 구간을 걸을 때 알게 된 지역 대표님의 말.
“지리산은 혼자 걷는 길이에요.
겁먹지 말고, 용기 내어 걸어봐요.
힘들면 언제든 전화해요.”
그 말이 이상하게 힘이 되었다.
나는 배낭을 다시 메고, 뜨거운 햇살 아래 첫발을 내디뎠다.
잠시 후,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친구랑 잘 만났어?”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웃으며 대답했다.
“응, 잘 만나서 같이 가고 있어.”
착한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 한마디로 마음이 조금은 단단해졌다.
친구 따라 걷던 나는 이제
오롯이 내 발걸음에 집중하며 걷기 시작했다.
누구의 속도도 아닌, 나만의 속도로.
길 위의 바람이 속삭였다.
“이제 진짜 너의 길이 시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