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단순한 동경이나 로망이 아니었다.
사실, 그 시절의 나는 여러모로 벽 앞에 서 있었다.
근무하던 회사는 처음엔 수직 기관이 아니었다.
모두가 수평적인 조직이었다.
그런 점이 좋아서 경력직으로 공채 지원했었다.
중간에 기관의 성격이 조금 바뀌면서 조직 체계가 바뀌었다.
위계와 직급이 생기고 서열이 명확해졌다.
경력직으로 들어왔던 나는 늘 한 발짝 뒤에 서 있었다.
승진에는 관심 없다 했지만
동기들이 하나둘 올라가는 걸 볼 때마다
마음 한편이 흔들렸다.
‘이제 여기까지인가…’
그런 생각이 들던 시기였다.
일에 대한 자부심은 여전했지만,
현실은 그 마음을 꺾어 놓았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때, 아침마다 받아보던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가 실렸다.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가야 할 길.’
그 문장이 나를 붙잡았다.
나는 그 길을 통해
내 안의 답답함을 비워내고 싶었다.
남들은 산티아고를 걷기 위해
국내에서 여러 길을 연습하고 간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준비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길 위에 섰다.
때로는 낯선 사람들과 나란히 걷고,
때로는 혼자가 되어 길게 이어진 길을 걸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묵묵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걷는 동안
세상에 향했던 시선이
조금씩 내 안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그 여행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 승진 소식을 들었다.
그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길 위에서 마음을 비워냈기에
다시 채울 수 있었던 결과였다.
산티아고는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놓았다.
그 이후로 나는 ‘길’에 끌리기 시작했다.
해파랑길, 지리산 둘레길, 남파랑길…
걷는 일이 어느새 나의 삶이 되었다.
그 길들은 모두
그때 산티아고에서 시작된 여정의 연장선이었다.
이제 나는 퇴직을 앞둔 시점에서
다시 그 길을 떠올린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귀한 인연
길 위에서 흘린 눈물과 웃음
그리고 나를 다시 믿게 만든 순간들.
산티아고는 나에게
‘버킷리스트의 길’이자
‘나를 다시 세운 길’이었다.
언젠가 또다시 그 길을 걷게 된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깊이,
나의 발걸음을 느껴보고 싶다.
그 길은 내게 여전히
그리움이자, 위로이자,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한 첫 번째 길이기 때문이다.
산티아고는 끝이 아니라, 내 인생의 쉼표였다.
그 쉼표 덕분에 나는 다시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나는 그 길 위에서 나를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