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설악이 나를 부른다
설악은 내게 오래전부터 부름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쓸쓸해지고,
그 산의 능선 하나가 인생의 굽이처럼 느껴졌다.
언젠가 그곳을 걷게 될 거라 믿었지만,
혼자서는 늘 겁이 났다.
공룡능선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그 길은 나에게 너무 높고 먼 세계 같았다.
일상에 지치고, 마음이 조금은 헛헛하던 초가을,
문득 설악이 떠올랐다.
아마도 마음이 먼저 산을 그리워한 걸지도 몰랐다.
그래서 한동안, 설악을 향한 마음은 계획의 형태로만 남아 있었다.
지도를 펼치고, 루트를 찾고,
대중교통 시간표를 확인하며 혼자 갈 준비를 했다.
‘혼자라도 가보자.’
그 마음 하나로 며칠을 설레며 정보를 모았다.
그러나 출발을 앞둔 그날,
남편이 말했다.
“내가 같이 가줄게.”
예상치 못한 동행이었다.
늘 혼자 걷던 길에 누군가 함께한다는 것은
낯설고 조금 불편한 일.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 작은 안도감이 일었다.
‘그래, 이번엔 함께 가보자.’
그렇게 우리는 차를 몰고 밤길을 달려 설악으로 향했다.
어둠 속 도로 위로 헤드라이트 불빛이 길게 흘렀다.
차 안엔 말이 없었지만,
창문 너머로 스치는 바람이
우리 마음의 거리를 천천히 좁혀주고 있었다.
백담사에 닿는 새벽,
오랜만에 설악의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봉정암으로 오르는 길,
그 길은 낯설지 않았다.
15년 전,
작은아이가 고등학교 진로를 앞두고
가족이 함께 오르던 그 길이었다.
그때 아이를 잃어버리고
남편과 나, 둘 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서로의 이름을 부르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야 알았다.
아이도 우리를 잃어버린 줄 알고
혼자 봉정암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는 것을.
그날, 셋이서 지쳐 내려오던 그 길이
이렇게 다시 시작이 될 줄은 몰랐다.
길은 언제나 우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우리가 잊고 있었을 뿐.
오랜 시간의 굴곡 속에서도
설악은 한 번도 나를 놓은 적이 없었다.
모든 길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순간,
산은 또다시 시작을 알려주듯 나를 불러 세웠다.
이번에도 산이 먼저 나를 불렀다.
그리고 나는 그 부름에 응답하듯,
다시 설악에 섰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