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가슴속에나 료코는 살고 있어요.
그날 밤 저는 료코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료코를 처음 만난 날, 희한하게도 제게 찍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증명사진 한 장을 건네면서
"잊지 마."라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신에게 료코는 남자일 수도, 여자일 수도 있습니다.
열다섯 일 수도 , 스물다섯 일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굳이 이런 구분이 중요할까요? 모르겠네요.
여하튼, 그날 밤 저도, 당신도 료코를 기다리고, 검은 밤하늘에 료코를 그렸습니다.
료코는 항상 강한 척을 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을 즈음의 나이었던 것 같은데 망설이는 나와는 달리 미래에 대한 꿈과 계획을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어요.
자세히 보면 료코도 스스로 확신이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다 계획이 있다는 듯이.
한 번은 료코의 수첩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따금씩 아주 작은 글씨로 꾹꾹 눌러서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기록해 두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는 가끔씩 그 글귀들을 종이에 옮겨 적어 제게 건네기도 했어요.
지금은 저는 모두 잃어버렸지만,
아마 료코가 눌러쓴 그 글들 속에는, 저에게 건네었던 증명사진 한 장 속에는
저를 기다린 료코가 아닌, 료코를 기다리고 있었던 저의 마음을 언제까지나 기억해 달라는 이야기가 담겨있었던 것 같아요.
날이 밝고 료코를 기다렸던 밤조차 아주 오래전에 흩어졌지만,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료코는 항상 그랬듯이 그 순간을 살고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