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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라디오 Jay Radio Mar 17. 2022

기록의 시작 : 나은이라는 이름으로부터

아직은 동의를 구하지 못했지만 일단은 시작

나는 딸아이의 이름을 나은이라고 정했다.  

아이의 이름에 아름다울 나(娜)라는 한자가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이의 이름을 내가 마음대로 정한 것이 되지만(사실 맞다), 와이프도 그랬고, 양가의 부모님도 내 뜻에 따랐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고민 끝에 이름을 정했다. 


사실 이름이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은 아니라서,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나은이라는 이 아이의 이름이 아름답게 불리고, 사랑을 받는 인생이 그 이름 속에 녹아들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뜻하게 달콤하게 사랑이 녹아들어 가기를 바란다. 


나는 이 아이이가 자라는 모습을 기록해 주기로 약속했다. 나는 많은 면에서 게으른 사람인데, 다행히 사진을 찍는 심심한 취미가 있어 아이의 모습을 사진과 글로 남겨줄 수 있는 바지런을 조금은 떨 수 있을 것 같다. 


이 기록의 시작에  앞서 스스로 꼭 기억해 놓을 게 하나 있다. (반드시 기억하자!)


"나은이는 내가 이렇게 기록하는 일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서 (공개된 페이지를 운영하는 것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든 이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이 활동을 멈출 예정이다. "


어떤 형태로든 존중해 주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기록들을 모아 선물을 해 주고 싶다. 


사랑을 담아 나은이 에게



2020년 4월 10일 나은이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작고 빨갛고 머리털이 조금 있다.

이마가 톡 튀어나와 있고(이건 날 닮았다. 나는 독일 사람처럼 이마가 톡 튀어나와 있다.), 눈썹이 또렷하게 나 있다. 

2020년은 본격적으로 코로나 19가 심해지기 시작해  모두가 어떻게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몰라 어려움을 겪을 때였다. 


유리 너머로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밝고 어두운 정도밖에는 구분하지 못한다고 했다.


고생한 와이프에게 그녀의 엄마는 찾아올 수 없었다. (코로나로 모두의 방문이 금지되는 시기였다.)

오늘 태어난 아이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와이프는 나와 결혼해서 고생을 많이 했다. 그게 어떤 것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다 고생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와이프는 나은이를 보러 가고 싶어 했다. 

힘든 몸을 이끌고 찾아가면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나은이를 우리 쪽에 옮겨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다. 

하품을 하기도 하고 까닭 없이 울기도 했다. 가끔 토를 하면 우리는 다급하게 선생님들을 찾아야 했다. 


모든 게 다 작다. 입도 작고, 코도 작고.

그리고 다 있다. (축복이다.)


다 있다 라는 게 이렇게 고마운 일이라니!

나는 결혼을 하면 어른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곤 했다. 

막상 결혼을 해보니 한 번에 어른이 되지 못하고 칭얼대기만 했다. 와이프에게 불평불만을 더 늘어놓을 뿐이었다. 

나은이가 태어나고 나니 지금보다는 조금 더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좀 추스르고 조리원으로 옮겨왔다. 

회사일이  한창 바쁠 때여서 함께 시간을 보내지는 못하고 출입이 허락될 때마다 짐을 챙겨 다녀오곤 했다. 가끔 퇴근이 늦으면 조리원 창문 앞에서 인사를 하고 지나가기도 했다. 이때 창문으로 나를 보며 와이프는 울기도 했는데 나중에 말하기로는 이때가 천국이었다고 했다. (사실이었다.) 


요 며칠 사이에도 나은이는 커갔다. 


코로나로 외부인의 출입도 없고, 마땅한  프로그램도 운영되지 않았다. 

나은이가 건강하게 태어난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감사한 나날들이었다. 


동시에 아직은 많은 것들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마땅히 미리 준비할 수도 없었지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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