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터 람스 다큐멘터리를 보고
얼마 전, 삼성에선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 S20’과 ‘갤럭시 Z 플립’을 발매했다. S20은 1억만 화소까지 지원하는 초고화질 카메라를 통한 100배 줌 기능이 있으며, Z 플립은 마치 과거 폴더폰처럼 접힌다. 차이점이라면 키패드와 액정의 접합부가 접히는 대신 디스플레이가 통짜로 접힌다 정도. 기술의 발전 곡선은 그 어느 때보다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2000년과 2010년의 차이보다 2010년과 2020년의 차이가 더 크다. IoT니 AI니 하는 것들이 더 이상 공돌이들 실험실 안에서나 존재하는 단어가 아니다. 체감이 안된다면 시리나 빅스비한테 날씨 좀 알려달라고 해 보시길.
“우리는 풍요로움 속의 비문화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디터 람스는 말했다. 번역투라 그런지 어딘가 어색한데, 나는 저 문장을 ‘신상 작작 좀 사라’ 정도로 이해했다. 핸드폰 카메라의 100배 줌 기능, 정말 필요해서 태어났을까. 외계인 납치해온 듯한 삼성의 기술력 자랑에 필요했다면 인정, 실생활에서 사용할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구매 초기에야 한두번쯤 신기해서 줌을 땡겨보겠지, 주위 친구들이 보여달라 해서 잠깐 쓰겠지. 아무리 좋은 스마트폰 사 봤자 결국 쓰는 건 전화, 카톡, 페메, 인스타, 유튜브 쯤으로 귀결될 거다. 액정이 접힌다거나 화질이 어마어마하게 좋다거나 하는 것들은 ‘보다’ 편한 것이지, 그런 기능이 없다고 해서 ‘불편’하지는 않다. 둘의 차이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
누가 제일 빠르냐를 겨루는 F1 레이싱에서도 재정비를 위해 피트인을 한다. 빨리 가려면 견고해야 한다. 문득 전기자동차가 떠올랐다. 전기자동차. 말 그대로 전기로 움직이는 자동차다. 기존 디젤이나 LPG 차들과의 차별점이라면 역시 소음이다. 주행 소음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저속 주행 시엔 조용해도 너무 조용해서 보행자가 차가 접근하는지조차도 인지하지 못할 수준. EU에서는 이러한 문제 때문에 작년 7월에 전기차의 소음 발생 장치 의무화를 시행하기도 했다. 정말 좋아 보이는 것이라도 어딘가에서 문제는 생긴다. 운전자들이 추구하던 저소음, 지구에 도움이 되는 친환경적 연료, 완벽해 보여도 무결점은 없다. 전기차의 발명, 당연히 혁신적이다. 디테일하지 못했을 뿐이다. 디터 람스의 관점에서 전기차는 좋은 디자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테크놀로지의 발전 속도는 현실 속 인프라가 쫓아가지 못할 정도로 빨라졌다. 디자인은 혁신과 함께여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전기자동차처럼 사용자들에게 의도적으로 불편을 느끼게 해 줘야 편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기술적으론 이미 생활하기에 무리가 없다. 피트인할 때가 왔다.
디터 람스는 ‘나무를 다듬는 일도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꼭 나무와 같은 유형(有形)이 아닌 무형(無形)의 무언가라도 ‘다듬기’만 한다면 그것을 ‘디자인’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소비도 ‘Less, but better’의 관점으로 디자인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은 대접받고, 충분히 괜찮은 물건이라도 구시대에 만들어졌다면 구닥다리 취급하기 일쑤다. 고쳐쓰기보단 새로 사는 게 현명한 소비처럼 여겨지는 현실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걸 그대로 사용하는 게 정말 불편한가? SNS에 저 사람은 신형이 나왔다 하면 전부 바꾸는데, 나는 구형인 게 불편한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불편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