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故 정미경 작가의 비보를 접하고 씀.
눈물이 핑 돌았다. 상당히 감정이 무뎌 로봇이냐는 소리까지 들어본 나다. 살면서 눈물 흘려본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몸이 아프거나 억울해서 그랬던 것이지, 타인의 슬픔에 공감해 울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왜 처음이냐고 물어본다면 글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작년의 한 사건 때문일 것이다.
그 사건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굉장히 소중한 사람을 먼저 소개하고 싶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조부모님께서는 돌아가셔서, 나에겐 외조부모님뿐이었다. 그렇기에 친가보다는 외가 쪽이 나에겐 더욱 고향 같았고, 수많은 친척이 있지만 외할아버지는 내게 할아버지 그 이상의 의미였다.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이셨던 나의 우상, 외할아버지께 그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물어보면 한사코 거부하기 일쑤이셔서 어머님께 듣는 수밖에 없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읜 9남매의 장남이자 소년가장이었던 할아버지는 초등학생 때부터 돈이 된다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렇게 막내 동생까지 전부 대학을 보내고 결혼까지 책임지신 그는 언제나 형제자매간의 우애를 강조하셨다.
군 복무 중이었던 2015년 추석, 이번에는 중대 발표가 있으니 꼭 휴가를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배산임수의 명당이었지만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 잡초와 잡목으로 무성했던 부지를 단신으로 개간하여 선산으로 만드셨다는 것이다. 덕분에 경남 창녕 도처에 흩어져 있던 조상 묘를 한 군데에 이장할 수 있게 됐고, 그 완공을 기념하여, 대형 전세버스가 2대나 동원됐다. 그마저도 인원수가 많아 몇 집은 자가용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당시 버스를 타고 선산으로 이동하며 하셨던 말씀이다.
‘우리 형제들이 이렇게 전부 모인 모습을 보니 감개무량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번 가족사업 과정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다 잊고, 새 출발하는 마음으로 서로 다투지 말고 무탈한 정(鄭)씨 가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 해를 넘기고 난 직후, 완치된 줄로만 알았던 췌장암이 재발했다. 지독한 항암치료를 수차례 견뎌내셨지만 지난번에 비해 쇠약해진 몸 탓이었을까. 독한 약물은 결국 기억까지 갉아먹었다. 9월 즈음이었을까, 한창 편입 준비로 바쁘던 와중에 잠시 시간을 내어 입원해 계신 대구의 한 병원을 찾아갔다. 혈혈단신으로 매년 5000평가량의 논밭을 일구시던 그 남자는 온데간데없었고, 간병하시던 외할머니 뒤에서 숨어 나를 보시곤 무서운 사람이 왔다고 겁내하는 그 앙상한 노인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12월 6일, 편입 시험이 코앞까지 다가왔고 학원에서는 매일같이 기출고사를 치렀다. 그 날의 모의시험 시작 3분 전, 어머니께 전화가 걸려왔다. 시작을 하면 출입을 통제하였기에 전화가 길어질까 걱정되어 받지 않았다. 말없이 끊으면 시험 중이니 그렇게 아시라고 이미 말씀을 드렸기에 재차 전화가 걸려오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휴대폰 진동은 멈추지 않았다. 제발, 아니길 바랐다.
시험 시간 1시간은 영겁(永劫)의 시간처럼 흘러갔다. 끝나자마자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40분 만에 연결이 됐다. 차라리 연결되지 않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직감은 그대로였고, 수화기 너머에서는 사람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통곡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생전 마지막 기억이 어째서 그래야만 했는가. 증손자가 보고 싶으시다더니, 뭐가 그리 급해서 팔순에 고작 26일을 남기고 가셔야만 했는가. 그렇게 가문의 버팀목은 고작 한 줌의 재가 되어 당신께서 직접 만드신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대하며 나쁜 기억은 금방 털어내던 나였지만 유일하게 이것만은 아직도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故 정미경 작가의 문학 인생을 읽는 내내, 할아버지의 일대기를 보는 듯 했다. 농부와 작가. 농업과 예술. 비교하기엔 너무 거리가 먼 직업일 터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내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자신을 끊임없이 전장으로 내몬다. 정경수의 서서 쓰는 책상은 고추밭의 부목이었으며, 정미경의 논밭은 방배동 반지하 원룸 R이었다. 작가는 낫 대신 펜을, 농부는 펜 대신 낫을 쥔 것뿐이다. 작품을 수확하고, 벼를 써내려간다. 언제나 그렇듯, 일천 번이라도 더.